사람사는 이야기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설화)

難勝 2008. 3. 2. 04:47

신라 백월산 산자락 마을에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친한 친구로 인물이 뛰어나고 마음도 착했습니다. 그러던 중 둘은 지나가는 걸인들을 보고서 가진 것이 없으면 탐욕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은 산속에서 불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노힐부득은 머리가 몹시 아팠습니다. 온종일 끙끙 앓던 노힐부득은 잠깐 잠이 들었다가 이상한 꿈을 꿨습니다.

서쪽하늘에서 흰 빛줄기가 내려오더니 그 빛줄기 속에서 황금빛 손이 나타나 뜨겁게 달아오른 노힐부득의 이마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노힐부득이 잠에서 깨자 신기하게도 머리가 아프지 않고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노힐부득은 달달박박을 찾아가 꿈 이야기를 말했지요. 그러자 달달박박이 자신도 똑같은 꿈을 꿨다고 말했습니다. 둘은 부처님을 알현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둘은 심지를 굳게 세우고 가족들과 헤어져 떠나기로 했습니다.


가족과 헤어진 두 사람은 백월산 깊은 골짜기인 무등곡으로 들어갔습니다. 입산 후 3년이 지났을 때 아름다운 여인이 달달박박의 오두막으로 찾아왔습니다.

여인은 하룻밤만 묵게 해달라고 청했지만, 달달박박은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습니다.

달달박박에게 거절당한 여인은 이번에는 노힐부득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여인의 애처로운 청에 노힐부득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노힐부득은 곧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노힐 부득은 정성껏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희미한 등잔불 아래에서 염불을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불경을 외는 노힐부득은 여인이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급한 목소리로 노힐부득을 찾았습니다. 노힐부득이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인이 아랫배를 감싸 쥐고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산기를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노힐부득은 마른 풀을 모아 아이 낳을 자리를 마련했고, 여인은 노힐부득의 도움을 받아 긴 시간 끝에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노힐부득은 쩔쩔매면서도 자리를 치우고 아이를 목욕시켰습니다. 여인의 몸도 씻어줬습니다. 그러자 신묘한 일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여인의 몸에서 향기가 나면서 목욕통 속의 물이 황금빛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노힐부득은 놀란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여인은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때 허공에서 메아리처럼 울려퍼졌습니다.

“나는 본래 관세음보살인데 이곳에 와서 스님을 도와 깨달음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날이 밝자 달달박박이 노힐부득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달달박박은 노힐부득을 차마 눈 뜨고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노힐부득이 찬란한 금빛의 미륵부처로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달달박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수행에 매진해 나중 아마티부처가 됐다고 합니다.


이 설화에서 달달박박은 수행에 엄격한 수도승의 모습이며, 노힐부득은 인자한 바라밀승의 모습이다. 율법은 본래 바르게살기 위해 만든 계율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모든 계율이 포승줄이 되어 자승자박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달달박박의 예가 그러할 것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도 결국은 중생제도에 목적을 두는 것인 만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은 대구를 이룹니다. 안으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밖으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게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만약 중생을 제도하는 것보다 개인의 깨달음이 우선한다면 애초 상구보리만이 있을 것입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의미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이 세상의 근본적인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 갈대다발의 비유로 연기사상을 설파한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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