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금강경(金剛經) 강의(21) - 19. 法界通化分

難勝 2008. 8. 1. 07:26

                        금강경(金剛經) 강의(21)


19. 法界通化分 (법계를 두루 교화하다)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得福多不 如是 世尊 此人이 以是因緣 得福甚多 須菩提 若福德 有實 如來不說得福德多 以福德 無故 如來說得福德多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 이시인연 득복다부 여시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심다 수보리 약복덕 유실 여래불설득복덕다 이복덕 무고 여래설득복덕다


해석: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해서 받는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매우 많사옵니다.』

  『수보리야, 만일 복덕이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말하지 아니할 것인데 복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래가 복덕이 많다 말하느니라.』


講說(강설): 法界通化分-법계를 교화하다


 칠보를 보시한 인연으로 받는 복덕은 인간세상이나 천상에서 받는 유위적인 복을 말하며, 이에 대해 함이 없는 절대의 복덕은 범부와 성인을 초월하는 통화의 공을 말한다. 그러나 유위(有爲)의 상대적인 복이라 하여 그것을 버리면 공행(功行)을 이루지 못하고 무위법이 비록 참되긴 하지만 그러나 그것에 기대려 하면 성과(聖果)는 증득 할 수 없다. 그러니 기대지도 말고 버리지도 않는 보살만행이라야 이것이 구경의 진리이고 성불하는 법이 된다.

  그러므로 이 법은 현상계와 본체계를 다 통하는 통화의 공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이라 했다.


본문: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得福多不 如是世尊 此人以是因緣 得福甚多

해석:『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 대천세계에 가득 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해서 받는 복이 많겠느냐, 많지 않겠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매우 많사옵니다.』


講說(강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 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 채워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다 보시했다고 하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해서 얻은 복이 얼마나 많겠느냐.』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해서 얻은 복이 심히 많사옵니다.』

  삼천대천이 숫자의 단위라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범망경(梵網經)에 있는 백억화신불(百億化身佛)의 말씀과 견주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삼천대천은 곧 백억이란 말인데 석가모니 한 부처님의 화신의 숫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한 부처님이 성불하시면 색구경천(色究竟天)에 세세생생으로 닦은 과보로 생긴 보신(報身)이 생깁니다.  만 척이나 되는 신장에 삼이상과 팔십종호를 갖춘 <보신>이 나타나는데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보신>의 천백억분의 하나인 회신(化身)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처님이 나시면 연꽃자리가 생깁니다. 연꽃을 불교의 이상화로 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 꽃은 더러운 썩은 물에서만 크지만 그 꽃과 잎은 더러운데 물들지 않으면서 향기가 좋고 깨끗하게 피는 뜻이 깊은 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꽃들은 비 한 번 맞으면 다 시들게 되지만 연꽃이나 잎은 물방울을 또르르 굴려서 떨어뜨립니다. 이와 같이 연꽃은 제일 더러운데서 생겨나서 더러운데 물들지 않고 제일 고귀한 꽃으로 피기 때문에 불보살이 중생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을 구제하지만 중생들의 탐진치에 물들지 않는 이치와 같은 뜻을 지니기 때문에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 부처님이 출현하시면 색구경천 하늘에 만척이나 되는 <보신>이 생기고 연꽃 천 잎에 당신의 일천 화신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천불의 화신을 소집합니다. 범망경(梵網經) 심지품(心地品)에 자세한 얘기가 나와 있습니다. 보신인 노사나불이 천 불의 화신에게 범망경의 보살계 십중 사십팔경계(十重四十八輕戒)를 설법하시면서 이 계를 가지고 가서 천당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 가르쳐 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일천 연꽃의 천 화신불이 또 낱낱이 백억화신이 나타나서 무수한 중생들이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있으니 어서 가서 이 법으로 구제해 주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오신 분 중의 한 분이 실달태자이시니, 일부러 발심 출가해서 육년 고행 끝에 성불하는 것도 보여 주고 실제로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간절히 49년 동안 가르쳐 주셨으니 이것이 방편입니다. 그래서 절에서 예불할 때에도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며, 이렇게 한 부처님이 한 교구씩 맡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바세계를 맡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신 자리에서 마음은 본래 무한대이어서 무한한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공간을 부처님 마음에 비하면 허공에 뜬구름 한 점에 불과합니다. 이런 것을 제자들을 중생하시려니까 삼천대천세계니 아승지니 무량아승지니 하고 말씀하시게 된 것입니다. 길가는 사람에게 물 한 그릇만 떠 줘도 큰복이 되는데 이렇게 많은 천백억 세계를 보물을 가득 채워서 보시했으니 그 복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본문:  須菩提 若福德 有實 如來不說得福德多 以福德 無故 如來說得福德多

해석:『수보리야, 만일 복덕이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여래가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말하지 아니할 것인데 복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래가 복덕이 많다 말하느니라.』


講說(강설):『수보리야, 보배를 아무리 많이 가지고 중생을 위해 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물질적인 복덕이니 그것은 절대적인 복덕이 될 수 없고 마음의 복이 될 수 없다. 물질은 거짓된 것이고 마음의 그림자이므로 물질에 끄달린 복은 엄격한 의미에서는 복이라 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니 수보리야, 만일 그 복이 참으로 있는 것이라면 내가 복덕이 많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 복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복덕이 많다고 하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위 제팔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과 제십일 무위복승분(無爲福勝分)에서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 참말로 있는 복덕이 뭘 가리키는 뜻입니까.  키가 작다 하면 크다 작다 하는 생각에 떨어지는 것이고 많다 적다 하면 우리는 많다 적다는 생각에 그만 구속이 되어 머리가 자꾸 안 돌아갑니다.  여기 많다는 말은 안 많다는 말이고 작다는 말은 크다는 말이고 실제가 그런 것입니다. 복덕이 실로 있는 것이라면(若福德有實)하는 뜻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복덕 일진댄」 그런 뜻입니다. 불생불멸하는 그런 자기 마음이 복이지 진복(眞福)은 복이라고 할 수 없으니 많다 적다는 말도 못합니다. 그래 놓고는 「그 복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또 복덕이 많다고 한다.」하셨으니 앞에 말씀과 전혀 반대로 모순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정반대이면서 같은 말씀입니다. 「복덕이 참말로 있는 복덕이라면 그게 정말 불생불멸하는 복이니까 그것은 진복(眞福)이고 그 진복은 내 마음 밖에 없고 자성자리는 어떻게 많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니 복덕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많다고 한다.」 그런 말씀이 얼른 껍데기 보면 그 뜻이 금방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말씀 같지만 정말 복덕이 아닌 복덕은 진복이고 자성자리이므로 많다고 할 만도 한 것입니다. 이 복은 불생불멸하는 복이고 많다 적다를 초월한 복이며 항상 할 수 있는 복이니 많은 복입니다. 그러므로 많다는 말은 많다고 할 수 없는 많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은 쌀가마니나 돈 보따리처럼 있고 없는 것도 있는 복이 아니라 정말 이런 복덕이 없는 자성자리 입니다. 지금 말 듣고 말하는 이 자리, 온 우주의 주인공 자리, 그게 참 복덕이지 복덕이 아니면 그런 게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정말 복덕이 많다고 할 만하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