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지장보살

難勝 2008. 8. 18. 04:04

지장(地藏) Ksitigarbha(범어):

묘당(妙幢), 무변심(無邊心)이라고도 한다.

도리천에서 석가여래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도리천에 머물면서 매일아침 선정에 들어 중생들의 근기를 관찰하면서 석존이 입멸후부터 56억7천만년후 미륵부처님이 출현 하실때까지 몸을 6도(六道)에 나타내어 27천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데 대자대비한 보살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세계인 사바세계 사람이 아닌 도리천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았으므로 도리천 천상계에서 주석하며 존재하시는 보살


밀호(密號):비원금강(悲願金剛)형상은 천관을 쓰고 ,가사를 입고 왼손에 연꽃을 들고 바른손으로 시무외인(施無畏印)을 만들고 있다.

혹 윈 손에 연꽃을 쥐고 바른손에 보주를 들기도 한다 .

이것이 지장보살의 정식의 형상인 것인데 후세에 위경(僞經)인 연명 <지장경>이 나오면서 부터 석장(錫杖)을 짚은 사문 모습의 형상이 생기고, 또 그 뒤에는 동자를 안은 지장, 육지장(六地藏). 승군지장(勝軍地藏)등의 형상이 생겨지게 됐다


지장보살상은 김교각이라는 신라 스님의 모습으로 신라의 어느 왕의 아들인데 정확한 왕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24세에 출가하여 AD794년 99세로 열반하셨는데 불법을 공부하러 당나라로 들어가서 말년에 구화산의 주지로 있게 되였다


주지로 있으면서 어느 날 남릉으로 갔을 때 어떤 청신사가 써주는 사대부경(四大部經)을 가지고 구화산에 돌아와 석실에 모시고 눈을 감고 관법을 닦으면서 바위틈에 있는 흰흙을 쌀과 섞어 삶아 먹으면서 지냈다 산밑에 사는 마을사람들이 스님이 고행 하는것을 보고 큰절을 지어주고 780년경 장공암(張公巖)이 화성사(化城寺)의 현판을 옮겨다 달아주었으며 당시부터 신라에서 김교각 스님의 수행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803년 대중들에게 사바세계 인연이 다하였다고 작별을 고하고 항아리로 된(과거 혜능 스님때부터 스스로 전신사리가 될 분들이 앉아서 입적할때 사용하던 일종의 질그릇 관이라 할수 있다) 함에 가부좌로 앉아서 입적을 하였는데 3년이 지나도록 시체가 산사람같이 화색이 있어 손을 못대다가 3년이 지난후 육신그대로 위에 금을 입혀 모셔왔는데 중국인들이 지장보살의 화현이라고 칭송 하는것이지 석존으로부터 부촉을 받은 지장보살로 연관지을 수는 없는것이다.

지장보살로 칭송을 받을 만큼 소행이 특출나고 아주 드문 예지만 불교사에 6조혜능대사 이하 김교각 스님등 열손가락에 꼽는 온몸 전체가 전신사리로 화한 수행력이 대단한 스님이였는데 근년에 한국 조계종단내 대각회 서해 흥교 큰스님께서 중국정부와 협의하에 바로 그 김교각스님의 육신이 등신불로 화한 실체를 한국으로 운구해서 큰 법회를 열 계획도 있었는데 중국의 문화부에서 국보로 모시는 김교각스님의 등신불을 혹시나 훼손이나 손실을 우려해서 어느 누구도 손을 못대게 더욱 깊은 지하에 모셔서 엄중 관리를 하고 있으니, 중국 안휘성 구화산 화성사 육신보전에 등신불로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