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가 이렇게 화창한 걸 보니 고기가 많이 잡힐 것 같군. 자네는 기분이 어떤가?』
『글쎄, 나도 오늘은 꼭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으이.』
신라 진덕여왕 3년(649) 4월. 강화 보문사 아랫마을 매음리 어부들은 새봄을 맞아 출어 준비를 하며 만선의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었다.
준비를 마친 어부들은 풍어를 기원하면서 앞바다로 나갔다. 4월의 미풍은 바다 내음을 싣고 와 피부를 간지럽혔고, 고기잡이에 알맞게 출렁이는 물결은 봄햇살 때문인지 여느 때보다 더욱 풋풋하고 싱그러워 보였다. 그물만 넣으면 금방이라도 고기들이 가득 담겨 올라올 것만 같았다.
어부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큰 그물을 바닷속에 던졌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부들이 그물을 올리려고 보니 바다는 숨을 쉬지 않는 듯 고요했다.
『여보게. 우리가 그물을 올리려고 하니 어쩜 바람 한 점 일지 않네 그려.』
『그도 그렇지만 대단히 큰 고기가 걸린 모양일세.』
『그러니까 그물이 이렇게 묵직하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거울 리가 있겠나.』
자 어서들 힘을 모아 끌어올립시다.
어부들은 난생 처음보는 대어가 올라올 것을 기대하면서 그물을 끌어올렸다.
그물이 서서히 물 위로 오르자 갑판에는 순간 긴장의 빛이 감도는 듯했다. 무게로 봐서 대단히 큰 물고기일 거라고 생각한 어부들은 가슴이 조마조마함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막상 그물을 올려놓고 보니 펄떡펄떡 뛰는 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물 속에는 고기 대신 인형모양의 돌덩이들을 즉시 바닷속에 쏟아버리고 새로 그물을 쳤다.
『날씨가 너무 좋아 일진이 좋으려나 했더니 돌덩이라니, 오늘 점 잘못친 거 아닌지 모르겠군.』
구레나룻이 많은 털보 김씨가 바다를 향해 「퇴퇴퇴」침을 3번 뱉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점심때가 좀 기울어 어부들은 다시 그물을 걷어 올리려 했다. 이상스럽게도 바다는 다시 잠잠해졌고 그물은 앞서와 다름없이 굉장히 무거웠다.
『혹시 또 돌덩이가 걸린 건 아닐까?』
『아무튼 끌어올려나 보세.』
어부들은 다시 있는 힘을 다해 그물을 올렸다. 역시 또 22개의 돌덩이가 담겨 올라왔다. 어부들은 다시 인형처럼 생긴 돌덩이를 바닷속에 버리고는 그만 뱃머리를 뭍으로 돌렸다.
『아무래도 무슨 조심인 것 같군. 돌덩이가 그것도 22개씩 똑같이 두 번이나 걸리다니. 오늘 은 해도 기울고 했으니 그만 돌아갑시다.』
어부 중 제일 나이가 지긋한 박씨의 의견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빈손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한결같이 그날 밤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얀 수염의 노스님이 나타나 하는 말이,
『그대들은 어찌하여 귀중한 것을 두 번씩이나 바다에 던졌느냐. 내일 다시 그물을 치면 그 돌덩이들이 또 올라올 테니, 그들을 명산에 잘 봉안하라. 그러면 길상이 거듭될 것이니라.』
이튿날 꿈 이야기를 주고받은 어부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꾸었음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 어제 그 장소로 다시 나갔다.
돌 인형은 어제와 다름없이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어부들은 노승이 일러준 대로 그 돌들을 신령스런 산에 봉안하기 위해 정성껏 마을로 모셔왔다.
『우리 마을에선 보문사가 있는 락가산이 제일 명산이니 그곳으로 모시고 가서 적당한 자리를 찾아봅시다.』
락가산으로 돌덩이를 옮기던 어부들이 보문사 앞 석굴 부근에서 잠시 쉬고 다시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돌은 더 무거워진 듯 꼼짝도 안했다.
『예가 바로 신령스러운 곳인가 보오. 이곳 굴 속이 비었으니 여기에 모시도록 합시다.』
그렇게 해서 스물 두 분의 인형 돌덩이를 굴 속에 봉안하니 이들이 바로 오늘까지 현존하는 보문사 굴법당 3존불상과 18나한, 그리고 나반존자이다. 그 후 뱃사공들은 모두 거부가 되었다 한다.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내려와 이곳에 관음도량을 개창하고 산 이름을 락가, 절이름을 보문사라 칭한 지 14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후 이 석굴법당은 많은 신통스런 영험이 일었다 하여 일명 신통굴이라고도 불리었다.
보문사 법당에는 옥등잔이 있었다.
참기름을 준비한 사미 스님이 옥등잔을 갖고 굴법당으로 갔다. 등잔에 기름을 부어 불을 당기고는 올려놓다가 그만 잘못하여 등잔을 깨뜨렸다. 놀란 사미승은 겁이 나서 방에 들어가 울고 있었다. 대중 스님들이 연유를 물었다. 사중(寺中) 보물인 옥등을 깨뜨렸다는 사미승의 말을 듣고 대중 스님들은 굴법당으로 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깨졌다던 옥등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옥등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어느 날 보문사에 도둑이 들어 향로, 다기, 촛대 등 유기그릇 일체를 훔쳐 달아났다. 무거운 유기그릇을 한짐 지고 끙끙거리면서 밤새 도망친 도둑은,
「이제 아무리 못 와도 70∼80리는 왔을 테니 좀 쉬어 가도 잡히지 않겠지.」
하고는 짐을 내려놓고 조금 쉬려니 바로 발 아래서 새벽 범종소리가 울렸다.
「밤길이 어두워 내가 겨우 도망친다는 게 다른 절로 온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난 도둑은 얼른 일어나 다시 도망치려고 짐을 지려는데 뒤에서 누가 목덜미를 탁 잡는 것이 아닌가.
『이 녀석, 어디서 무슨 짓을 못해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성물을 훔쳐 가느냐?』
『아이구 스님, 잘못했습니다. 밤새 걸었는데 보문사 경내를 벗어나지 못했다니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모두가 나한님의 신통력 때문이니라.』
새벽에 도량석을 하려고 나왔던 스님에게 잡힌 도둑은 그 후 착한 불제자가 되었다 한다.
3개의 홍예문을 지닌 이 천연동굴 법당은 지방문화재 제57호로 석실 면적 320㎡에 높이 8m 규모. 내부에는 반월형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撑柱)를 설치, 그 사이의 21개 감실에 높이 30cm 정도의 나한님과 석불을 모셨다.
보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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