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훌륭한 교사였던 부처님

難勝 2008. 12. 29. 05:50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사라나무 사이에 누워 있을 때의 일이다.
수바드라라는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뵙기를 청했다.그는 나아가
120세나 되는 노인이었다.
"나는 오늘밤 부처님이 열반에 들 것이란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부처님을
한 번 뵙고 의심나는 일을 묻고 싶으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자인 아난다는 이를 거절했다.
"부처님은 지금 매우 위중합니다.노인은 부처님을 번거롭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수바드라는 재삼 부처님을 한 번 뵙기를 청했다.
이때 부처님이 아난다를 불러 말했다.
"너는 그 노인을 막지 말라.들어오기를 허락하라.의심을 풀려고 하는 것이니
조금도 귀찮을 것이 없다.만일 그가 나의 설법을 듣는다면 반드시 깨달아
알 것이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지시로 그를 부처님 앞으로 안내했다.노인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상에는 각기 자기가 훌륭한 성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지타 케사캄발리,파쿠타 가차야나,카사파,막칼리 코살라,산자야 벨리타풋타,
니칸타 나타풋다가 그들입니다.부처님께서는 이들을 다 아시는지요?
이들의 가르침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나는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다 안다.다 쓸데없는 것이니 더 이상 그 일은
논하지 말라.그 대신 그대에게 깊고 묘한 법을 일러주리라"
부처님은 그에게 사제.팔정도의 도리를 일러주었다.그는 곧 깨닫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했다.이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종교의 바라문 밑에 있다가 이 교단에 들어오려는 자는 4개월 동안
살펴보아야 한다.모든 위의를 갖추고 실수가 없는 자라야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그러나 이는 필수 조건이 아니다.그 사람의 행이 휼륭하다면 가능하다"
수바드라는 구족계를 받을 수만 있다면 4개월이 아니라 4년 동안이라도
시험을 받겠다고 말했다.부처님은 그날 밤 그에게 출가를 허락했다.
그리하여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최후 제자가 되었다.그는 그 자리에서
아라한이 되었으며 곧 열반에 들었다.부처님보다 먼저였다.
-장아함 4권 2경 <유행경>

부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 분은 무엇보다도 훌륭한 교사였다는 점이다.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보인 열정과 노력과 정성과 인내는 감탄할
지경이다.부처님이 제자를 가르치는 데는 때와 장소가 따로 없다.
녹야원에서 첫 설법을 한 이래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들 때까지 이 스승은
여러 사람이 모인 곳이나 단둘이 만났을 때나,심지어는 목욕을 하면서도
설법을 할 정도였다.이것은 그분이 얼마나 열정적인 교사였는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교사로서의 부처님이 보여 준 여러 가지 에피소드 중에서 다시 한 번
전율하도록 감동적인 장면은 바로 임종 직전에 수바드라를 교화하는
모습이다.경전의 표현을 보면 부처님의 목숨은 경각지간이었다.
더 이상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 있었고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부처님은 당신을 찾아온 노인을 기꺼이 맞아서 그의 질문에
일일이 응답하고 가르침을 베푼다.아무리 그분이 성자라지만 어떻게
죽음을 앞두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할 수도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신 분이다.이런 분에게 어찌 우리가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처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나는 것은 불교의 종교적 목적에 관한
일이다.부처님이 보여 주었듯이 불교는 중생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것을
제일 사명으로 여기는 종교다.만약 이일을 소홀하게 했다면 불교는
오래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졋을 것이다.
현대불교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겨야 할 점은 교화활동이다.
만약 불교수행자로서 이 점을 소홀히 한다면 부처님 제자도 아니고
시주밥 먹을 자격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한국불교의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한 생각이 든다.
포교를 등한해도 너무 등한하고 있기 때문이다.부처님은 돌아가시는 그 순간
까지 설법을 사양하지 않았는데 요즘 수행자들은 무엇이 그리 바빠서
설법하고 전법하는 일에 그렇게 소극적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