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새해맞이는 제자들과 함께 안거(安居) 석 달 마친 뒤에 나이 한 살 씩 더 잡숫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수세(受歲)라고 하는데 안거가 끝나는 7월 보름날에 거행되며 이 때 받는 나이가 바로 법랍인 것입니다.
<증일아함경>(제24권 선취품)에는 새해맞이 행사에 관한 당시의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7월 보름날 밤에 부처님은 아난에게 모든 수행자들을 불러 모으도록 명하셨습니다.
“아난아, 어서 건추를 쳐라. 오늘은 수세를 하는 날이다.”
수행자들이 모여 들자 부처님은 자리에 앉기를 권하신 뒤 이렇게 말문을 여셨습니다.
“나는 이제 수세를 하려 한다. 말해 보아라. 나는 대중에게 허물이 없는가. 또 몸과 입과 뜻으로 범한 일은 없는가?”
허물을 발견하지 못한 이들은 묵묵히 있으면 될 것이고, 허물을 발견하였다면 그 일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똑같은 질문을 세 번 던지셨고 비구들은 다들 고요히 앉아 있었습니다. 이 때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제자 사리불 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비구들은 여래의 몸과 입과 뜻에서 허물이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오늘까지 모든 이들을 제도하시고(중략)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의 이 말로 부처님은 법랍 한 살을 더 얻게 되신 것입니다. 뒤이어 사리불 존자도 부처님과 똑같은 질문을 부처님과 수행자들에게 던졌습니다.
“그럼 이제 여래께 제 자신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저는 여래와 비구중에게 허물이 없었습니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대 사리불은 몸과 입과 뜻에 악한 행위가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그대의 지혜는 아무도 따라갈 이가 없으며 욕심이 적고 (중략) 심정이 조용하여 사납지 않아서 위없는 법바퀴를 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리불은 부처님에게서 이런 말씀을 듣고 난 뒤에 그 자리에 모인 5백 명의 수행자들에 관해서도 여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자기 스스로와 타인에게 있어 티끌만큼의 허물도 없음을 확인 받은 뒤에 나이 한살씩을 더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가장 어른이 먼저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묻고 그들로부터 청정함을 인정받은 뒤 차례로 덕담이 이어지는 과정은 언제 읽어도 큰 감동을 줍니다. 이렇게 하여 나이 한 살을 얻게 된다면 그 숫자는 얼마나 숭고하고 정결하겠습니까. 부처님에게 있어 나이란 것은 그저 밥그릇을 열심히 비우고 주름살만 늘여갔다고 하여 얻게 되는 숫자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스스로 티 없이 맑은지를 돌아보는 일은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사리불이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을 보자면, 죄를 짓지 않은 것에만 그치지 않고 이웃에게 선행을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실천해나간 것을 중요시했음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밝아오는 새해에 이렇게 ‘시간을 잡아서’ 나이를 쌓아간다면 훗날 거친 윤회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은 묵직한 자신의 연륜이 자랑스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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