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찾아 가는 길

전북 변산 내소사 창건 설화 - 호랑이 선사

難勝 2009. 3. 7. 05:06

 

『스님, 이제 그만 들어가시지요. 이렇게 나와서 1년을 기다려도 목수는 오지 않으니, 언제 대웅전을 짓겠습니까? 내일은 소승이 좀 미숙해도 구해 오겠습니다.』

『허, 군말이 많구나.』

『그리고 기다리실 바엔 절에서 기다리시지 하필이면 예까지 나오셔서….』

『멍청한 녀석. 내가 기다리는 것은 목수지만 매일 여기 나오는 것은 백호혈(白虎穴)을 지키기 위해서니라.』

노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늙은 호랑이가 포효하며 노승 앞에 나타났다.

호랑이의 안광은 석양의 노을 속에 이글거렸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노승이 주장자를 휘저으며 호랑이 앞을 지나려 하자 대호는 앞발을 높이 들고 노승을 향해 으르릉댔다.

『안된다고 해도 그러는구나. 대웅보전을 짓기까지는 안돼.』

노승은 주장자를 들어 소나무 허리를 때렸다.

「팽」하는 소리가 나자 호랑이는 「어흥」하는 외마디 울부짖음을 남기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날 저녁 타 버린 대웅전 주춧돌에 앉아 산을 내려다보던 노승은 사미승을 불렀다.

『너 일주문 밖에 좀 나가 보아라. 누가 올 터이니 짐을 받아 오도록 해라.』

『이 밤중에 어떻게 일주문 밖을 나가라고 하십니까?』

『일주문 밖과 여기가 어떻게 다르기라도 하단 말이냐?』

마지못해 대답을 하고 간신히 일주문에 다다른 선우의 가슴은 철렁했다.

무슨 기다란 동물이 기둥에 기대어 누워 있지 않은가.

입 속으로 염불을 외우며 다가서니 누었던 사람이 일어났다. 나그네였다.

『어서 오십시오. 스님이 마중을 보내서 왔습니다.』

나그네는 아무 말 없이 걸망을 둘러메고 걸었다.

『손님, 짐을 저에게 주십시오. 스님께서 짐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나그네는 묵묵히 걸망을 건네주었다.

『손님은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이 짐 속엔 뭣이 들었길래 이리 무겁습니까? 노스님과는 잘 아시나요?』

나그네는 대꾸가 없었다.

그는 다음날부터 대웅전 지을 나무를 찾아 기둥감과 중방감을 켜고 작은 기둥과 서까래를 끊었다. 다음에는 목침만한 크기로 나무를 자르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목수는 말없이 목침만을 잘랐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노승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어언 다섯 달. 목수는 비로소 톱을 놓고 대패를 들었다.

목침을 대패로 다듬기 시작한 지 3년. 흡사 삼매에 든 듯 목침만을 다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보 목수양반, 목침 깎다가 세월 다 가겠소.』

선우의 비웃는 말에도 목수는 잠자코 목침만을 다듬었다. 선우는 슬그머니 화가 나 목수를 골려 주려고 목침 하나를 감췄다.

사흘이 지나 목침깎기 3년이 되던 날. 목수는 대패를 버리고 일어나더니 노적만큼 쌓아올린 목침을 세기 시작했다.

무수한 목침을 다 세고 난 목수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일할 때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절망이 깃들었다.

연장을 챙긴 목수는 노승을 찾아갔다.

『스님, 소인은 아직 법당 지을 인연이 먼 듯하옵니다.』

절에 와서 처음으로 입을 여는 목수를 보고 선우의 눈은 왕방울만큼 커졌다.

『왜 무슨 까닭이 있었느냐?』

노승은 조용히 물었다.

『목침 하나가 부족합니다. 아직 저의 경계가 미흡한가 봅니다.』

『가지 말고 법당을 짓게. 목침이 그대의 경계를 말하는 것은 아닐세.』

선우는 놀랐다. 목침으로 법당을 짓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산더미 같은 목침 속에서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알다니-.

목수는 기둥을 세우고 중방을 걸고 순식간에 법당을 완성했다.

법당에 단청을 하려고 화공을 불러왔다.

노승은 대중에게 엄격히 타일렀다.

『화공의 일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법당 안을 들여다봐서는 안되느니라.』

화공은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밖에 나오질 않았다. 사람들은 법당안에 그려지는 그림이 보고 싶고 궁금했다. 그러나 법당 앞에는 늘 목수가 아니면 노승이 지키고 있었다.

어느 날, 선우는 법당 가까이 가서 목수에게 말했다.

『스님께서 잠깐 오시랍니다.』

목수가 법당 앞을 떠나자 선우는 재빠르게 문틈으로 법당 안을 들여다봤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없는데 오색 영롱한 작은 새가 입에 붓을 물고 날개에 물감을 묻혀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선우는 문을 살그머니 열고 법당 안으로 발을 디밀었다. 순간 어디선가 산울림 같은 무서운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서 새는 날아가버렸다.

노호 소리에 놀란 선우가 어슴프레 정신을 차렸을 때 노승은 법당 앞에 죽어 있는 대호를 향해 법문을 설했다.

『대호선사여! 생사가 둘이 아닌데 선사는 지금 어느 곳에 가 있는가. 선사가 세운 대웅보전은 길이 법연을 이으리라.』

때는 1633년. 내소사 조실 청민선사는 대웅보전 증축 후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다.

변산반도 한 기슭에 자리한 내소사 대웅전(보물 제291호)은 지금도 한 개의 포가 모자란 채 옛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그리다 만 벽화는 날로 퇴색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