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청명과 한식의 세시풍속

難勝 2009. 4. 4. 05:07

청명(淸明)

 

24절기의 다섯째. 음력 3월 절기이며, 양력 4월 5. 6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도 있다.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다.

이날에 식목일 겹치는 것이  

보통인데, 날이 풀리고 화창하여 일년 중

식목에 가장 적당한 시기이기 때문에

식목일을 청명과 같은 날로 잡은 듯하다.

 

 

옛 사람은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로 세분하여,

①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②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③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날 省墓(성묘)를 간다.

우리 조상들만큼 성묘를 자주 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일년에 네 번,

 

그러니까 봄에는 淸明(청명), 여름에는 中元(중원, 음7월 15일),

가을에는 秋夕(추석), 겨울에는 冬至(동지)날,

눈길을 밟으며 찾아 뵙고 산소위의 눈을 쓸어 내렸다.

 

봄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논 밭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품앗이로 행한다.

 

한식과 청명 - 또한 寒食(한식)과도 겹친다.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속담이 생겼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청명(淸明)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친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 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寒食(한식)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동심일체를 다지고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던 것이다.

 

꺼지기 쉬운 불인지라

한식 날 온 백성이 한 불을 나누어 갖기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내는데

그 불씨통은 뱀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나 목화씨앗 태운 재에 묻어 운반했던 것이다.


바로 그 신성한 새 불을 일으키는 날이 청명이요,

이 새 불을 온 백성이 나누어 가짐으로써 동심일체의 한 백성임을 재확인하는

날이 바로 한식날이다.

청명과 한식은 한국적 내셔널리즘의 민속적 구현이랄 수 있다. 


청명주(淸明酒) - 청명절이 든 때에 담근 술. 춘주(春酒)라고도 한다.

찹쌀 석 되로 갈아 죽을 쑤어 식힌 다음,

누룩 세 홉과 밀가루 한 홉을 넣어 술을 빚는다.

다음날 찹쌀 일곱되를 깨끗이 씻어 쪄서 식힌 다음,

물을 섞어 잘 뭉개어서 독 밑에 넣고 찬 곳에 둔다.

7일 후 위에 뜬 것을 버리고 맑게 되면 좋은 술이 된다.

 

나무 심기

청명, 한식이면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 장가 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한다.

 

내나무 노래

'한식 날 심은 내 나무 금강수(金剛水) 물을 주어

육판서(六判書)로 뻗은 가지 각 읍 수령(守令) 꽃이 피고

삼정승(三政丞) 열매 맺어...'하는

 

 <내 나무 노래>를 부르며 내 나무에 인생의 꿈을 실어 애지중지 길렀던 것이다.

연정(戀情)을 품은 아가씨가 있으면 그 아가씨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니 내 나무는 낭만이 깃든 사랑의 매체(媒體)이기도 했다.

되살리고 싶은 나무의 민속들이 아닐 수 없다.


나무 타령 한 귀절

`청명(淸明) 한식(寒食)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아무 데나 아무 나무...'

 

 

 

한식(寒食)

 

한식(寒食)은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가 되는 날이다.

음력(陰曆)으로 2월과 3월에 걸쳐서 드는데,

 

또한 절기(節氣)로 청명(淸明)과 한식(寒食)날이

전후해서 있어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도 있다.


【寒食茶禮(한식차례) 】
 

 - 명절 날 조상의 산소에 가서 묘사(墓祀)를 지내는 날은

설날, 한식, 단오(端午), 추석(秋夕)

 등이지만 절사(節祀)로 가장 성하게 지내는 날은 한식과 추석이다.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祭享)을 지내고,

민간(民間)에서도 조상의 묘전(墓前)에

술, 과일, 포(脯), 식혜(食醯), 떡, 국수, 탕(湯), 적(炙) 등의

제물(祭物)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한식차례(寒食茶禮)

라고 한다.

 

후에 명절제사인 절사(節祀)는 동지(冬至)가 추가되어

다섯 절사(節祀)가 되었다.

이 날은 성묘(省墓)를 하고,

식목(植木)을 하거나 헐은 분묘(墳墓)에 떼를

다시 입히는 개사초(改沙草)를 하는데,  

3월에 한식이 든 해는 사초(沙草)를 하지 않는다.

 

이는 '삼구부동총(三九不動塚)'이라 해서 '3월과 9월에는

묘소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 데서 연유한다.

 

물론 그 이유는 3월은 이미 봄이 되어 싹이 나왔기 때문이고,  

9월은 이미 겨울에 접어들어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는 한식의 의미로는

이 날은 풍우(風雨)가 심해서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다고 하거나, 고사에서 연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본래는 고대(古代)의  

종교적(宗敎的)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 불{신화(新火)}을 만들어 쓸 때

그에 앞서 어느 기간 동안 구화(舊火)를 일체 금하던

예속(禮俗)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 한식의 시초는 중국 당(唐)나라에서 전래되어

신라(新羅)때부터 전해지는데,

고려시대(高麗時代)에는 대표적 명절로 숭상되었고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서는

그 민속적 권위가 더욱 중시되었다.


 농가에서는 이 날 농작물의 씨를 뿌리기도 한다.


【한식날음식】
 
 성묘는 일 년에 네 번으로 정초, 한식, 단오, 중추에 한다.

 

제물은 술, 과일, 포,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이다.

중국에서는 한식을 냉절(冷節)이라 하는데 그 유래로 인하여

 

우리도 이 날은 미리 장만해 놓은 찬 음식을 먹고 닭싸움,

그네 등의 유희를 즐기며 불을 쓰지 않는다.

중국의 춘추시대 때 개자추(介子推)라는 진나라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문공(文公)을 모시고 있었다.

그러나 충성을 다하여 망명 19년까지도 모셨지만

그에게 오해를 받아 산속에 숨어 살았는데,

나중에 문공이 잘못을 뉘우치고 산에서

 

나오기를 권했지만 나오지 않아 불을 질렀는데

늙은 홀어머니와 함께 버드나무 아래서 타 죽었다.

그래서 이 날은 버드나무를 대문에 꽂기도 하고,

개자추의 죽음을 아파하여 불을 쓰지 않고

찬밥을 먹으니 냉절이라고 한 것이다.

 

대개 양력 4월 5, 6일경이다.

이 날은 조상의 무덤에 떼를 다시 입히고 민간에서는 이 날을 전후하여

쑥탕, 쑥떡을 해먹었다.  한식날 먹는 메밀국수를 한식면(寒食麵),

한식날 무렵 잡은 조기를 한식사리라 한다. 
 

●쑥떡
 
찹쌀가루에 어린 쑥을 절구에 부드럽게 찧어서

함께 섞어 버무린 다음 시루에 안쳐서 푹 쪄낸다.

켜켜로 안칠 때는 사이에 팥소를 얹어 찐다.
 

●쑥단자

 

찹쌀가루를 찜통에 쪄서 뜨거을 때,

데쳐서 다진 쑥을 넣고 절구에 비취색이 나도록 찧어서 판판하게 펴고,

 

그 위에 꿀로 반죽한 팥소를 넣고 돌돌 말아,

꿀을 바른 양손으로 늘여 가며 밤톨만하게 끊어 흰 팥고물을 묻혀 낸다.

●쑥탕
 
펄펄 끓는 물에 된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조개를 씻어 넣고 펄펄 끓인다.

어린 쑥을 깨끗이 씻어 넣고 마지막에 실파를 넣고 한소큼 끓인다.

 

●개사초
 
자손들이 저마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높고 큰 은덕을 추모하며 제사지낸다.

조상묘 앞에 과(果-과실), 적(炙-구운 고기),

병(餠-떡)을 차려 놓고 한식차례를 지낸다.

조상 묘의 풀을 베는 사초를 하거나 새잔디를 다시 입히기도 한다.

이를 개사초라 한다.
 
【한식날 풍속】
 
한식은 어느 해나 청명절 바로 다음날이거나 같은 날에 든다.

이때는 양력 4월 5, 6일쯤으로 나무심기에 알맞은 시기이다.

우리나라에서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여 나무를 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비가 내리는 한식을 ‘물한식’이라고 하며,

한식날 비가 오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이날 나라에서는 종묘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술, 과일, 포, 식혜, 떡, 국수, 탕, 적 등의 음식으로 제사지낸다.

 

이를 명절제사, 곧 절사(節祀)라 한다.

또한 여러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성묘하고,

조상의 묘가 헐었으면 봉분을 개수하고 주위에 식수도 하고 사초(莎草)도 한다.

만일 조상의 묘가 멀 때에는 묘지기가 대리로 제향을 올려준다.

 

이날 성묘하는 풍속은 당대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며,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신라 때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에는 한식이 대표적 명절의 하나로 중요시되어

관리에게 성묘를 허락하고 죄수의 금형(禁刑)을 실시하였다.

 

조선시대 내병조(內兵曹)에서는 버드나무를 뚫어 불을 만들어

임금에게 올리면 임금은 그 불씨를 궁전 안에 있는

 

모든 관청과 대신들 집에 나누어주었다.

한식날부터 농가에서는 채소씨를 뿌리는 등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든다.

 

흔히, 이날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만 아니라

국가에 불상사가 일어난다고 믿어 매우 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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