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밤에 얽힌 이야기
잊혀진 계절
박건호 작사
이범희 작곡
이용 노래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구월의 마지막 밤
일찍이 '영원의 디딤돌'이란 시집을 출간하고도 이름 앞에 '시인'이란 타이틀보다는 '작사가'로만 알려져 왔던 박건호 씨. 그가 가사를 쓰고 이범희 씨가 곡을 붙인 '잊혀진 계절'은 이용 씨가 불러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가을 노래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체질인 그가 소주 두 홉짜리 한 병을 거의 다 비운 것은 어느 해 9월부슬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그는 그 동안 만났던 여성 가운데 유일하게 대화가 통했던 그녀와 헤어지기로 속마음을 다지고 나온 터였기에 그날 밤의 비는 더욱 공허했다고 한다. 만나면 항상 버릇처럼 '쓸쓸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할 무렵 그는 '오늘밤 그녀와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면서 대취했다는 것이다.
"이분 흑석동 종점에 내리게 해주세요..."
그녀는 취한 박건호 씨를 버스에 태우며 안내양에게 이렇게 당부하더란다. 그러나 그는 다음 정거장에서 바로 내려 버렸다.
"여긴 흑석동이 아니에요."
안내양의 제지를 뿌리치고 그는 버스가 오던 길로 내달렸다. 뭔가 '할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말도 하지 않고 헤어진다는 것에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자책감도 들었다. 동대문에서 창신동으로 꺾어지는 지점쯤에서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뛰어온 그는 숨도 고르지 않은 채 그녀 앞으로 달려가 '마라톤 평야의 전령'처럼 외쳤다.
"정아 씨! 사랑해요."
그 한마디를 던지고 오던 길로 다시 뛰었다. 왠지 쑥스러웠고, 그녀의 그 다음 말이 두려웠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쉬운 이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1982년 초가을 무렵, 박건호 씨는 '그날의 느낌'을 새겨 넣은 가사를 이범희 씨에게 넘겼다. 그가 이 가사를 쓸 무렵은 마음이 몹시도 춥고 외로웠다고 한다. 그에겐 차라리 '잊고 싶은 계절'이었다. 젊음의 열병과 사랑의 시련. 그리고 현실적인 장벽이 그의 섬세한 감성을 한없이 짓밟았던 것이다.
이 노래는 당시 무명의 신인 가수였던 이용 씨가 취입해 그를 부동의 스타로 올라서게 했고, 작사가였던 그에게는 그 해 KBS 가요대상(작사부문)과 가톨릭 가요대상(작사), MBC최고 인기상 등 상이란 상을 모두 휩쓰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은 사실 구월의 마지막 밤 상황을 레코드 발매 시기에 근접시키느라 그렇게 꾸민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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