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불관언(吾不關焉) ㅡ 내 알 바 아니다
옛날, 화용월태의 미모로 뭇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이며, 큰 돈을 모은 기생이 은퇴한 후, 풍류객 기둥서방에게 여생을 맡길 양으로
“내 詩에 짝을 맞춘 사람에게 몸을 의탁 하겠노라.” 한즉,
먼저 기생이 문제로 내놓은 詩 한 수.
吾家有一酒 大甁小甁 二十四甁 (집에 술 하나, 큰 병, 작은 병 스물네 병이라)
金氏飮許之 李氏飮許之 (김 씨도 이 씨도 마시려 하면 허락하지만)
飮之以後 醉不醉 吾不關焉 (마신 후 취하고 안 취하고는 '내 알 바 아니다.')
그러자 약방의 감초처럼 의원님이 대뜸 내놓은 시 한 수.
吾家有一藥 大貼小貼 二十四貼 (내 집에 약 하나, 큰 첩, 작은 첩 스물네 첩이라)
金氏病服之 李氏病服之 (김 씨 병에도, 이 씨 병에도 먹이지만)
服之以後 效不效 吾不關焉 (먹고 난 후 효험 있고 없고는 '내 알 바 아니다.')
다음, 심산 유곡의 스님의 시 한 수
吾家有一佛 大佛小佛 二十四佛 (내 집에 부처 하나, 큰 부처, 작은 부처 스물넷 부처라.)
金氏願禱之 李氏願禱之 (김 씨 소원도 이 씨 소원도 기도하지만)
禱之以後 福不福 吾不關焉 (기도한 후 복이 오고 안 오고는 '내 알 바 아니다.')
그 다음, 맨 끝으로 거지가 내놓은 시 한 수.
吾家有一瓢 大瓢小瓢 二十四瓢 (내 집에 쪽박 하나, 큰 쪽박, 작은 쪽박 스물넷 쪽박이라)
金氏宴乞之 李氏宴乞之 (김 씨 잔치에도 구걸하고 이 씨 잔치에도 구걸하지만)
乞之以後 廢不廢 吾不關焉 (구걸 후 잔치 파하고 안파하고는 '내 알 바 아니다.')
기생 가라사대,
"의원, 스님은 제 직분에 충실치 못했으나 아무렴 그렇지! 거지가 얻어 먹었으면 그만이지, 잔치가 파했든 말았든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거지는 기둥서방 이후, 잘 먹고 잘 살았다는데,
사실은 나도 '내 알 바 아니다.'
끝으로, 여기에 2008. 4. 9 총선에 즈음한 유권자의 시 한 수.
吾家有一票 大家小家 二十四票 (내 집에 표 하나, 큰 집 작은 집 스물 네 표라)
金氏乞許之 李氏乞許之 (김 씨도 달라면 주고, 이 씨도 달라면 다 준다지만)
投票以後 當不當 吾不關焉 (투표 후에 당선되고 안 되고는 '내 알 바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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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생긴 대로 찍히고, 도장은 새긴 대로 찍히고,
당선은 찍은 대로 뽑히나니, 찍고 나서 찍소리도 못하고
발등 찍고 후회하는 '吾不關焉'은 천부당 만부당인 줄 아뢰오."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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