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추석 제수용 과일에 담긴 의미

難勝 2010. 9. 15. 05:22

추석 제수용 과일에 담긴 의미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 가운데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세 개 있다. 대추, 밤, 그리고 감이 그것이다.

 

다른 과일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없이 제사를 지내면, 그 제사는 무효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 세 가지는 제사상에 필수적이다.

 

왜 우리 조상들은 이 세 가지 과일을 꼭 넣어서 제사를 지냈을까?

이 세 가지 과일 하나하나에는 우리 조상들의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대추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대추나무에 대추가 올망졸망 달리는 것처럼 후손이 번창하라는 뜻일 것이다.

요즈음도 새색시가 폐백을 드릴 때 시어머니가 대추를 던지면 새색시가 치마폭으로 그 대추를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열매가 많이 달리는 것은 비단 대추만이 아니다. 대추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또 한 가지 특성이 있다.

대추꽃은 피었다 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지, 꽃으로서 그냥 지는 법이 없다고 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왔으면, 대추처럼 후손을 적어도 하나는 만들어 놓아야 자기 도리를 다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밤은 무슨 뜻일까?

밤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신비한 특성이 있다. 다른 모든 과일은 씨앗을 뿌려서 싹이 트면 그 씨앗 자체는 썩어서 없어진다. 그러나 밤만은 그 씨앗이 썩지 않고 생밤인 채로 죽을 때까지 보존된다고 한다.

몇십년 된 아름드리 밤나무도 그 뿌리에는 자기 생명의 원천인 씨밤을 소중히 달고 있다.

따라서 밤이 상징하는 것은 조상과 나와의 지속적인 연결이다.

나의 생명의 원천이 조상들이며, 그 조상들은 한시도 나와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님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우리 조상들은 밤을 반드시 제상에 올렸다.

 

 

이제 감이 남았다.

감은 또 어떤 신비한 특성이 있는가? 특히 우리나라 이북 지방에서는 감이 나지 않기 때문에, 이북 사람들은 감을 구하지 못해서 곶감을 써야 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감을 제상에 꼭 올렸을까?

탐스러운 감씨를 심으면 감이 달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무리 좋은 감씨를 심어도 달리는 것은 고욤이다.

고욤은 엄지 손톱만한 과일로 감을 축소해 놓은 모양이다. 다닥다닥 붙어서 열리는데, 생김새만 감과 비슷할 뿐 떫어서 먹기 어렵다.

감을 만들려면 묘목이 삼사 년 쯤 컸을 때 접을 붙여야 한다. 즉 자연 상태 그대로 놓아 두어서는 감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감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해진다. 자식을 놓아서 밥을 먹여 기른다고 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인간 구실을 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교육시키기 데는 접을 붙이기 위하여 가지를 칼로 째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를 지도 모르지만, 참된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임을 감이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제사에 쓰는 과일 하나를 고르는 데도 이렇게 깊은 뜻을 두었다는 것이 경이롭다.

이런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없고, 선생님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또 나이 많은 동네 어른들도 들려준 적이 없다.

100년 전만 해도 상식적인 이야기였는데....

우리 전통을 경시하는 풍조 속에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좋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버린 것 같다.

 

제수용 과일에 담긴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는 제사를 지내기 싫어하는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될 것 같다.

다른 제사 음식에도 많은 좋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차분히 공부를 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