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달한 사람(達士)
꼭 제 눈으로 직접 보아야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를 보고 열을 알고, 열을 알아 백을 헤아리는 지혜가 툭 터져야 한다.
처음 보는 것도 낯설지 않고, 처음 듣는 것도 겁날 게 없다.
이 사물을 미루어 저 사물을 헤아리니,
나는 그저 이것과 저것을 이어주는 가교일 뿐 그 사이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그러니 언제 어떤 상황에 놓여도 두렵지 않고, 익숙히 아는 일처럼 척척 처리해낸다.
이런 사람을 달사(達士), 즉 통달한 선비라 한다.
제가 본 것만을 믿겠다 하고, 제가 알고 있던 것과 조금만 다르면 가짜라 하며 팔을 걷고 덤빈다.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려 하고, 오리의 다리가 짧다며 늘이려 한다.
백로의 흰 것이 고결하니 까마귀의 검은 것을 침 뱉는다.
학은 학대로 긴 다리로 편안하고,
오리는 오리대로 짧은 다리가 불편하지 않은데,
공연히 제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제 생각대로, 저 아는대로 해야 그제야 수긍하고 납득한다.
이런 사람은 속인이다.
달사(達士)
통달한 사람은 괴이한 바가 없지만 속인은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이른바 본 것이 적고 보니 괴이한 것도 많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통달한 사람이라 해서 어찌 사물마다 눈으로 직접 보았겠는가?
하나를 들으면 눈앞에 열 가지가 떠오르고,
열을 보면 마음에서 백 가지가 베풀어져,
천 가지 괴이함과 만 가지 기이함이
도로 사물에 부쳐져서 자기와는 간여함이 없다.
때문에 마음은 한가로워 여유가 있고 응수함이 다함이 없다.
그러나 본 바가 적은 자는 백로를 가지고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가지고 학을 위태롭게 여긴다.
사물은 절로 괴이할 것이 없건만 자기가 공연히 화를 내고,
한 가지만 같지 않아도 온통 만물을 의심한다.
달사(達士)
達士無所怪, 俗人多所疑. 所謂少所見而多所怪也. 夫豈達士者, 逐物而目覩哉.
달사무소괴, 속인다소의. 소위소소견이다소괴야. 부기달사자, 축물이목도재.
聞一則形十於目, 見十則設百於心, 千怪萬奇, 還寄於物, 而己無與焉.
문일칙형십어목, 견십칙설백어심, 천괴만기, 환기어물, 이기무여언.
故心閒有餘, 應酬無窮.
고심한유여, 응수무궁.
所見少者, 以鷺嗤烏, 以鳧危鶴.
소견소자, 이로치오, 이부위학.
物自無怪, 己迺生嗔, 一事不同, 都誣萬物.
물자무괴, 기내생진, 일사부동, 도무만물.
- 박지원(朴趾源, 1737-1805), 〈능양시집서(菱陽詩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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