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粒粟中藏世界
한 알 좁쌀 속에도 삼천대천 세계가 감추어져 있으니
反升鐺內煮山川
반 되 들이 쇠솥에 산천을 달인다네
香浮鼻觀烹茶熟
그윽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니 차는 이미 익었고
喜動眉閒煉句成
기쁜 마음으로 끙끙거리며 시 한 구절 지어보네
- 태안사 선원 주련 -
▲ 茶詩가 적혀 있는 태안사 선원 주련
태안사의 창건이후 현재에 이르기 까지의 중요한 기록들은 잦은 전란과 화재 속에 모두 사라졌다. 다만 효령대군이 시주한 대바라와 조선시대 초기의 동종등 몇몇 문화재 그리고 부도전에 남아 있는 태안사를 중창한 광자선사 윤다의 부도탑과 부도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부도들이 무리를 지은 부도군이 옛 시절의 영화를 묵묵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눈에 번쩍 띄는 차문화재가 하나 남아있다. 청정탑 아래에 있는 선원(禪院)의 기둥에 구한말의 유명서예가인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가 쓴 4개의 주련이 있다는데, 예서체로 꿈틀거리는 서체로 쓰여진 시의 내용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저절로 움직인다.
또 다른 해석을 붙여본다.
一粒粟中藏世界(일입속중장세계) 한 알 좁쌀 속에 세계가 감추어져 있으니
反升鐺內煮山川(반승당내자산천) 반 되들이 쇠솥에 산천을 달인다네.
香浮鼻觀烹茶熟(향부비관팽다숙) 떠오는 향기에 코가 열리니 차는 이미 익었고
喜動眉間煉句成(희동미간련구성) 즐거이 양미간을 펴며 시 한 구절을 어렵사리 이루네
앞의 두 구절은 <지월록(指月錄)>에 소개된 중국 도가의 팔선인 중에 하나인 여동빈과 황룡선사의 일화에서 따온 것인데 호방하면서도 응축과 확산의 미학이 숨어 있다. 지면상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가 주어지면 하도록 한다. 이 주련이 붙어있는 선원은 1830년대에 지어졌다. 바로 우리 차문화가 꽃피던 시기에 지어진 선원이다. 그 시절 그 이름에 걸맞게 수 많은 선승들이 다화를 꽃피워 내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창암 이삼만, 성당 김돈휘라는 유명 서예가의 글씨가 태안사의 일주문에서부터 배알문, 해회당 그리고 선원 현판과 주련에 이르기까지 자리잡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상을 편안하게 하는 차 한잔의 용광로 속에 승속(僧俗)을 초월한 어울림이 있었던 것이다. 그 어울림은 다음의 다송자 관련 글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대숲에 자라는 오동나무가 천년의 곡조를 품고 태평성대를 알리는 봉황을 깃들이게 하듯, 이제 태안사 대숲에서 자라는 죽로차가 세상을 크게 한번 편안하게 할 봉황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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