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여래와 불국의 수호신 귀면(鬼面)

難勝 2011. 6. 4. 20:54

 

귀면상

 

잡귀로부터 부처님과 법당을 지킨다

불전.불단 정면에 배치…입에 물고기 물고 있기도 

몸은 없고 얼굴만 묘사…인도 신화에서 유래된 듯

 

법당 정면 문짝의 궁창, 처마 밑, 기둥머리 같은 데서 몸뚱이는 없고 얼굴만 있는 물상을 볼 수 있다.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나있고, 송곳니를 드러낸 모습이 용과 비슷하여 용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있었으나 실은 용이 아니라 귀면이다. 귀면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입에 아무 것도 물고 있지 않는 것, 입에 당초(唐草), 연꽃, 초엽(草葉), 물고기 등을 물고 있는 것, 나무를 조각하여 입체적으로 만든 것 등이 있다. 첫번째 유형은 흔하므로 소개를 생락하거니와, 두번째 유형에 해당 되는 것 중에 예산 수덕사 선방, 동래 범어사 대웅전과 관음전, 금릉 법주사 팔상전, 구례 화엄사 원통전, 김제 금산사 대장전, 연기 비암사 극락보전 등 불전 정면과 불단에 배치되어 있는 귀면이 볼 만하다. 그리고 입체적으로 조각된 것으로는 강화 전등사 대웅전, 강화 정수사 대웅전, 부안 개암사 대웅전 귀면이 있다.

 

귀면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정면관(正面觀)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불화의 경우, 협시 보살이나 권속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본존만은 반드시 정면관으로 그린다. 그 이유는 정면관이 부처님의 권위와 권능을 드러내는 가장 이상적인 묘법(描法)이기 때문이다. 불상이나 불화의 본존을 제외하면 귀면이 정면관으로 묘사된 유일한 것이다. 귀면을 정면관으로 표현한 것은 벽사의 능력과 축귀(逐鬼)의 기개를 과시하기 위함이다.

 

귀면은 건물이나 불단 정면에 주로 배치되는데, 이렇게 한 데는 앞쪽을 경계하여 잡귀로부터 부처님과 법당을 지킨다는 벽사 의도가 숨어 있다. 축귀 능력을 높이는 방법에는 위협적인 인상을 강조하거나 눈매를 무섭게 표현하는 방법, 감시하는 눈의 수를 수효를 많게 하는 방법 등이 있다. 특히 감시의 눈을 많게 하는 방법은 눈의 수만큼 시선으로 장악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사용되었다. 옛날 임금의 행차, 사신 영접, 장례식 등 행사 때에 눈이 넷 달린 방상씨(方相氏)를 앞세우는 풍습이 있었다. 방상씨는 네 개의 눈을 가진 귀면인데, 이것을 앞세워 놓으면 귀신을 빠짐없이 색출하여 행사 장소를 청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다고 옛사람들은 믿었다. 사찰 법당에 장식된 귀면에도 이와 같은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단독 귀면인 경우는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둘 이상인 경우에는 시선의 방향이 다양하게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김제 금산사 대장전의 귀면을 예로 들자면, 법당 정면 오른쪽 문 궁창의 것은 눈을 내리 깔고 아래쪽을 주시하고 있고, 왼쪽 것은 안으로 쏠린 사팔뜨기 눈으로 정면 근접지역을 살피고 있다. 구례 화엄사 경우에 원통전 불단 전면에 3구의 귀면상이 있는데, 가운데 것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그 오른쪽 것은 안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왼쪽 것은 바깥으로 쏠린 사팔뜨기 눈으로 좌우를 동시에 살피고 있다. 이처럼 다수의 귀면상을 법당이나 불단의 정면에 배치하고 시선 방향을 다양하게 처리한 것은 경계 대상의 영역과 범위를 넓혀 벽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절에서 볼 수 있는 귀면은 평면에 그려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나무를 깎아 만든 흥미로운 귀면도 여러 군데서 만나볼 수 있다. 강화 전등사 대웅전, 정수사 대웅전, 부안 개암사 대웅전 처마 밑에 있는 귀면이 그 예이다. 전등사 귀면은 둥근 통나무의 마구리 부분에 귀면을 새겼는데, 눈, 코, 입만 조각도를 댔을 뿐 눈썹이나 입가의 수염, 갈기 등 나머지 부분은 모두 붓으로 그렸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는 모습에서 공격성보다 포용성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귀면이다. 정수사 대웅전 처마 밑의 귀면도 나무를 깎아 만들었는데, 얼굴 윤곽을 대강 다듬고 붓으로 눈썹, 눈, 코, 입을 그렸다. 전등사의 것보다는 좀더 위협적인 느낌을 주지만 공포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이 귀면에서 주목되는 것은 아래쪽을 향한 시선이다. 귀면이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법당 마당의 사귀(邪鬼)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눈동자를 내리 깔아야 했을 것이다. 아래쪽을 향한 경계의 눈초리가 실감나게 표현된 이 귀면은 벽사의 주체로서의 귀면이 가진 성격과 기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입에 물건을 물고 있는 귀면 중에서 이색적인 것은 동래 범어사 관음전의 귀면이다. 물고기 두 마리와 붉고 푸른색의 초엽을 물고 있는 이 귀면은 관음전 정면 중앙의 창방과 도리 사이에 단독 배치되어 있다. 목판에 부조(浮彫)된 형태로 되어 있는데, 짧은 뿔이 머리 양쪽에 나있고, 코는 큼직하고 콧구멍도 크다. 눈썹은 굵고 푸르며, 검은 구슬처럼 둥근 눈동자는 정면을 주시하고 있다.

 

강화 전등사 대웅전 불단 서쪽 측면에도 이채로운 귀면상들이 많이 있다. 모두 날카로운 송곳니와 뿔을 가지고 있는데, 입에 초엽을 물고 있는 것도 있고, 연꽃 봉오리 또는 연꽃이 달린 줄기를 물고 있는 것도 있으며, 박쥐 얼굴을 닮은 귀면이 초엽을 물고 있는 것도 있다. 한편, 법주사 팔상전 화반(花盤)의 귀면상은 입에 문 녹색 초엽 줄기가 주변 여백을 꽉 채우고 있으며, 예산 수덕사 선방의 것은 초엽의 색깔이 황.녹.적으로 되어 있어 화려한 느낌을 주고 있다. 또 활짝 핀 연꽃을 입에 불고 있는 귀면상도 있는데, 김제 금산사 대장전 궁창, 연기 비암사 극락보전의 불단의 귀면상이 그것이다. 금산사의 것은 청색의 연꽃을, 비암사의 것은 붉고 흰 연꽃을 물고 있다. 이처럼 입에 어떤 물건을 물고 있는 형식의 귀면이 사찰 장식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사찰 귀면이 일반적인 귀면상과는 다른 계통의 귀면을 조상으로 하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사찰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귀면은 기와지붕 용마루 양쪽의 망와에 새겨진 귀면, 또는 왕릉이나 사대부들 묘의 혼유석(魂遊石)의 고석(鼓石, 북처럼 생긴 것으로 혼유석의 다리 구실을 함)에서 부조된 귀면 등이 있다. 그런데, 왕릉의 것은 사찰 귀면과 비슷한 점이 있기는 하나 입에 무엇을 물고 있는 경우가 전혀 없어 사찰 귀면과 구별된다. 또한 한옥 기와에 보이는 귀면은 대부분 인면에 가까운 형태로 되어 있어 사찰 귀면과의 유사성을 찾아 볼 수 없다. 궁궐 내에 있는 석교 등 석조 건축물, 향로 등 예기(禮器)에서도 귀면을 찾아 볼 수 있으나 이들도 위와 같은 이유에서 사찰 귀면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벽사와 수호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찰의 귀면과 유사성이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한편 우리 민속에 도깨비라는 것이 있다. 도깨비의 도상적 특징은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사람 또는 동물의 형상을 하고 비상한 힘과 괴상한 재주를 가진 귀신의 일종 정도로 알려져 있다. 도깨비와 관련하여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도깨비는 귀면처럼 인간의 편에 서서 벽사의 기능을 수행하는 주체가 아니라 벽사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벽사용 귀면와를 도깨비기와라고 부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찰의 귀면은 도깨비 또는 왕릉, 기와, 예기 등에 보이는 귀면과 그 계통이 어떻게 다른가.

 

인도 아잔타제1석굴사원을 비롯한 인도 고대 불교사원 장식 중에 흔히 보이는 키르티무카라는 귀면이 있다. 키르티무카는 키르티(kirti)와 무카(mukha)의 합성어로서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이 귀면은 힌두교의 시바신의 무서운 측면의 한 표현으로서, 그 기능은 사악한 자를 물리치고 참배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불교가 성립되면서 불교에서는 이를 호법신으로 수용하여 아잔타 석굴사원 등 불교사원 장식에 적용했다. 아잔타 석굴 사원의 제1굴 정면 기둥머리의 키르티무카상을 보면, 정면관의 얼굴에 구슬 다발과 두 사람의 다리를 함께 입에 물고 있다. 이것을 우리나라 사찰 귀면과 비교해 보면, 입에 문 물건이 연꽃이나. 초엽 등으로 대체되어 있을 뿐 기본적인 틀이나 배치 위치에 있어서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찰 귀면이 몸은 없고 얼굴만 남아 있게 된 이유는 아래에 소개하는 인도 신화의 내용에서 찾아진다. 거인 왕 쟐란다라는 세계의 창조자이고 유지자이며 또한 파괴자이기도 한 시바를 굴복시키기 위해 신부가 될 가장 아름다운 처녀를 포기하라는 최후통첩을 라후를 통해 보냈다. 이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시바는 크게 화를 내면서 끔찍스러운 사자 머리 형상을 한 악마의 모습을 취했는데, 그것은 바로 시바가 다른 모습으로 화한 분노의 피조물이었던 것이다. 괴물은 시바에게 자신의 고통을 가라앉혀 줄 몇 가지 희생물을 대신 줄 것을 강요했다. 시바는 괴물에게 자신의 손과 발을 먹으라고 제안했다. 타고난 굶주림으로 정신 빠진 괴물은 정신없이 먹고 또 먹었다. 손과 발을 삼켜버렸을 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를 삼키고도 그칠 줄을 몰랐다. 급기야 그의 이빨은 자신의 배와 가슴과 목까지 삼켜 결국 얼굴만이 남게 되었다.

 

‘벽사’는 적극적으로 잡귀를 제거하여 종교적 공간이나 삶의 공간을 청정하고 복되게 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이고, 사찰에서는 그 기능을 불전 도처에 장식된 귀면이 수행한다. 귀면이 벽사의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공격적인 성향이 극대화된, 특히 귀신이 무서워 할 수 있는 형태를 표출시켜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귀면은 귀신이 놀라 달아날 만큼 공포와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인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경계의 눈초리 속에 관대함이 스며있고, 긴장감 속에 온화함이 베여 있으며, 장엄 속에 인간미가 깃들어 있다. 이것은 한국인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나지 않은 심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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