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삼월 삼짇날과 세시풍속

難勝 2012. 3. 24. 06:22

 

 

 

 

삼짇날

 

음력 3월3일

 

상사(上巳),·중삼(重三),·원사(元巳),·상제(上除)라고도 한다. 3이 3번 겹친 길일로 여기며 봄이 본격적으로 돌아온 절기이다.

 

이날은 강남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는 날이다.

흰나비를 먼저 보면 그해에 상복(喪服)을 입게 되고 색이 있는 나비를 보면 길한 일이 있다고 믿었으며, 이날 약물을 먹으면 연중무병하다고 전해진다.

 

제액(除厄)의 의미로 동천(東天)에 몸을 씻고 교외에 나가 하루를 즐긴다.

 

집에서는 진달래꽃을 찹쌀가루에 넣어 둥근 떡을 만들고 참기름에 지진 화전(花煎)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것을 가늘게 썰어 오미자국과 꿀물에 띄운 뒤 잣을 곁들인 화면(花麵)을 만들어 사당에 올리고 먹는다. 또는 진달래꽃을 녹두가루에 반죽하여 만들기도 하며 붉은색으로 수면(水麵)을 만들기도 한다. 겨우내 집안에 있던 여자들은 음식을 준비하여 오랜만에 집을 벗어나 산과 들로 나가 진달래꽃을 따면서 화전놀이를 즐긴다. 이날의 여흥으로 꽃쌈도 하고 꽃단치기도 끼리끼리 즐기며 젊은 처녀들은 화전을 두고 각기 가사를 지어서 좌상(座上)노인의 평을 받고 장원도 뽑는다. 성원 전체가 돌아가면서 가사 한 구절씩 불러서 장편가사인 〈화수가 花酬歌〉를 짓는다.

 

지역에 따라서는 용왕당(龍王堂)이나 삼신당(三神堂)에 가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기도 하고, 농사가 잘 되게 춘경제(春耕祭)를 지내기도 한다.

 

 

 

 

[고금통의 古今通義] 삼월 삼짇날

 

음력으로 삼월 삼짇날(3월 3일) 치르는 불계라는 의식이 있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묵은 때를 씻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던 의식이다. 원래는 음력 3월 첫째 사일(巳日)인 상사일(上巳日)에 행하던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예의지(禮儀志)’ 불계조에 “이달(3월) 상사일에 관민(官民)이 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묵은 때와 병을 씻어 크게 깨끗하게 해서 재앙을 물리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 차차 삼짇날에만 치르는 의식으로 굳어졌다.

 

 정약용의 시구 중에 “계곡 정자에서 불계를 닦는다”라는 시구가 있는 것은 조선 후기까지 행해졌음을 말해준다. 불계는 계사라고도 하는데, 서예 사상 유명한 왕희지(王羲之)의 ‘난정기(蘭亭記)’도 이 행사의 하나를 기록한 것이다. 진(晉) 목제(穆帝) 영화(永和) 9년(354) 삼월 삼짇날에 사안(謝安), 손작(孫綽) 같은 당대의 명사 42인과 회계(會稽) 산음(山陰)의 난정(蘭亭)에서 계사(?事)를 행하고 곡수(曲水)에 술잔을 띄워 마시면서 즐긴 행사를 기록한 것이 ‘난정기’다.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 잔이 오기 전에 시를 한 수 짓고 술잔을 드는 행사를 곡수(曲水), 곡수연(曲水宴), 또는 유상곡수(流觴曲水)라고 부른다. 『진서(晉書)』 ‘속석(束晳)열전’에는 진(晉) 무제(武帝)가 삼월 삼짇날 곡수(曲水)하는 뜻을 묻자 속석이 “옛날 주공(周公)이 낙읍(洛邑: 낙양)에 성을 쌓고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웠으므로 일시(逸詩)에 ‘술잔은 물결 따라 흐르네(羽觴隨波)’라는 구절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는 주(周)나라 주공이 시작한 행사가 습속(習俗)이 된 것이다.

 

 이 무렵 산에는 진달래가 만개해서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꽃을 붙여 지져 먹는 화전(花煎)이 유행했다. 조선의 미식가였던 허균(許筠)은 음식비평서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썼는데, 푸줏간(屠門) 앞을 지나가면서 입맛을 크게 다신다(大嚼)는 일화에서 나온 제목이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서울에서 철 따라 먹는 음식으로 봄에는 쑥떡·송편·괴엽병(槐葉餠)·두견화전(杜鵑花煎)·이화전(梨花煎)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두견화전이 진달래꽃전이다. 이 무렵에는 화면(花麵)도 유행한다. 녹두가루를 반죽해 익힌 다음 가늘게 썰어 오미자(五味子)국에 띄우고 잣도 띄운 다음에 꿀을 탄 국수다.

 

 

 봄은 누구나 오래 머무르기를 바라지만 인간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두보(杜甫)는 시 ‘가석(可惜)’에서 “꽃잎은 무엇이 급해 저리 빨리 날리는가/ 늙어가니 봄은 더디기를 바라는데(花飛有底急/老去願春遲)”라고 노래했다. 

 

 

- 이덕일 역사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