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오! 든든한 아내의 치마폭(모 신문에서 펌)

難勝 2008. 3. 18. 05:19

영어 시험에 자주 나오던 것 중에 명사의 성(性)이라는 것이 있었다. 전쟁(war)과 같이 터프한 건 남성이고, 봄(spring)처럼 나긋나긋한 건 여성이다.


학생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영어 얘는 참 남성 중심적이다. 불어도 마찬가지. 역시 '사맛디(통하지)' 아니한 남녀를 동등하게 대우한 한글 만만세다.


그러나 우리말도 호신의 차원에서 성의 구별을 둬야 할 때가 있다. '든든하다' 혹은 '듬직하다'는 주로 남성에게 하는 말이다. 처음 보는 처자에게 "참 듬직하네요"라고 말하면 뺨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남편은 아내에게 '바위 같은 듬직함'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 듬직함은 아내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농도 깊은 존경의 염(念)이다.


#1


외국계 회사 한국 지점장 홍량씨. 실적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이 생겨도 가족들에게 내색 한번 한 적 없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날 TV를 보는데 귀농한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더란다. 그래서 포도씨 뱉듯 툭 하고 내뱉었다. "우리도 시골 내려가 살까?"


말해놓고 아차 싶었다. '아이들 커 나가는데 무슨 무책임한 소리냐'는 면박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아내가 하는 말, "다 행복하자고 사는 건데 어디라고 못살겠어요? 강화도는 어때요?"


설령 아내의 대꾸가 빈말이었다 해도 무조건 자기를 지지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에 홍량씨 감동 먹었다.

#2


자기 사업을 하는 용석씨. 믿었던 사람에게 어처구니없는 배신을 당했다. 소주 두어 병을 비우고, 갑자기 몰려드는 서러움과 외로움에 집으로 문자를 쐈다. '어떤 나쁜 인간이 나를 가지고 놀았어.' 역시나 보내놓고 나서 후회했다. '그러게 사람 너무 믿지 말랬잖아' 하는 타박이 돌아올 게 뻔해서다. 그런데 잠시 후 '띵똥' 하고 전송된 문자. '어떤 미친 놈이야? 속 많이 상했겠네. 그래도 술 많이 마시지 마.' 바퀴벌레 한 마리 못 잡는 여자에게서 온 과격한 문자를 보고 용석씨는 인삼, 산삼 먹은 것보다 더 큰 힘을 얻었단다. 이 세상에 누군가를 함께 욕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무한한 동지감을 느꼈단다.


사회생활과 관계 맺음은 고차원의 방정식을 푸는 일이다. 상관의 방귀 소리에도 의미를 파악하려 들고, 부하 직원의 하품에도 별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이 이 땅의 남편들이다. 이제는 해법을 좀 알 것도 같은데 인간이라는 함수는 점점 더 해독할 수 없는 난수표란 느낌에 절망도 한다.


그럴 때 보여주는 아내들의 단순 명료 해법은 듬직함을 넘어 위대함마저 느끼게 한다. 점점 더 여성 호르몬이 증가하는 남자들은 그럴 때 우주보다 넓은 아내의 치마에 파묻혀 자장자장 꿀잠 한숨 자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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