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시작되는 저녁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쇼파에 대자로
누워있다.
아내가 이시간에 쇼파에 대자로 누워 있다는것은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소리다. 베개와 이불까지 덮고 있다는 것은 잠깐 나가신게 아니라 멀리
나가셨다는 것
아내는 들어 왔냐는 눈인사만 한다.
"어디 가셧냐?"
"두 내외분 집 나가셨어 ㅎㅎ"
아마도 연휴를 맞아 누님댁에 다니러 가셨나보다.
두달만에 주말을 비우신거 같다. 직장일 하랴, 부모님 모시랴, 애들
챙기랴, 고단함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만끽하며 퍼져 있는 아내의
모습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자, 지금부터 난 계산된 행동을 해야한다. 기분에 들떠 외식을 한다든지
하면 안된다. 아이들 입을 통해 부모님에게 전해지면 괜한 오해를 살수있다.
일단 씻고 나와서 냉장고에 얼려져 있던 삼겹살을 꺼내 해동을 시키고
소주까지 한잔 준비해서 술상을 본다. 물론 부산하지 않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설겆이도 말끔하게 정리한다. 오랜만에 고무장갑을
껴보는것 같다.
그리고 늦은 시간이지만 아내가 좋아하는 블랙커피를 연하게 타서 쇼파
앞까지 대령한다.
이쯤되면 아내의 입은 귀에 걸려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마지막 한방을 먹여야 하다.
"무릎 베개하고 누워라 새치 뽑아줄게"
아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킨쉽이다. 이쯤되면 입이 귀에 걸리다 못해 찢어진다.
그리고 술한잔에 발그래한 얼굴로 설잠이 든다.
이로써 난 남은 이틀을 맘편히 지낼수 있다. ㅎㅎ
10살 딸아기가 아까부터 내 주위를 어슬렁 거린다. 그러고 보니 퇴근하고
계속 내 주위를 맴 돌았던거 같다.
"너 아까부터 왜 자꾸 아빠뒤 따라 다니냐?"
딸아이는 아내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다
"엄마 잠들었어 닌텐도 하고 싶어? 조금만 해라"
딸아이는 다시 머뭇거리더니
"아니, 그게 아니라...."
"뭐?"
"혹시 아빠 바람 펴?"
"뭐... 담배 피냐고?"
"아니 아니 바람 피냐고?"
"가시나가 자다가 봉창도 아니고 뭔소리야?"
딸아이는 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아빠 오늘 행동이 이상하잖어, 엄마한테 갑자기 너무 잘해주잖어"
"남자가 갑자기 여자한테 잘해주면 바람 피는 거잖어"
참나, 이녀석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걸까
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송이야 만약에 아빠가 진짜 바람 피면 넌 어떻게 할래?"
"음.. 엄마랑 같이 가서 그여자 혼내 줘야지"
확실이 이녀석 드라마 첨부터 끝까지 많이도 본거다.
옆에서 멍때리고 있는 아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돌아온 아들의 대답은
"아빠 맘대로해"
확실이 저녀석은 역시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다.
딸아이의 어이 없은 상상에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할지
"송이야 넌 드라마좀 그만 봐라, 넌 항상 아빠가 말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어, 그리고 형우야, 넌 드라마 같은 거좀 보고 생각이란 걸좀 해라"
대략 딸아이에게 아빠의 행동을 설명하고 거실로 나와서 쇼파에 잠들어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속삭였습니다.
"넌 좋겠다. 남편 바람 피면 머리 끄댕이 같이 잡아줄 든든한 딸 있어서"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