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찾아 가는 길

[스크랩] 다 아는 얘기지만- 치악산과 상원사

難勝 2007. 8. 3. 10:46
 

옛날 강원도 땅에 사는 한 젊은 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 영월과 원주 사이에 드높이 솟은 험준한 치악산을 넘어야 하는 나그네의 발길은 바쁘기만 했다. 수림이 울창하고 산세가 웅장한 이 산은 대낮에도 호랑이가 나와 사람을 해치고 밤이면 도적떼가 나온다는 무시무시한 곳이기 때문이다.

괴나리봇짐에 활을 꽂고 치악산을 오르던 젊은 과객은 산 중턱에서 잠시 다리를 쉬면서 산의 운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영산이로구나!』

이때였다. 바로 몇 발짝 거리에서 꿩의 울음소리가 절박함을 호소하는 듯 요란하게 들렸다. 청년 과객은 고개를 들어 밭이랑을 보았다. 그곳에는 큰 구렁이 한 마리가 꿩을 향해 혀를 날름대고 있었다.

꿩은 구원을 청하는 듯 더욱 절박하게 「꺽꺽」울어댔다. 깊은 산중에 울려퍼지는 꿩의 울음소리에 청년은 구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청년은 한 번의 화살로 구렁이를 명중시켰다. 그 구렁이가 붉은 피를 쏟으며 힘없이 쓰러지자 꿩은 잠시 머뭇거리며 꺽꺽 울어댔다.

생명의 은인에 대한 감사의 뜻인 듯 좀 전의 울음과는 달랐다. 꿩은 몇 번인가 청년을 향해 울더니 훌쩍 날아가 버렸다.

과객은 땅거미가 지자 걸음을 재촉했으나 산을 넘기엔 아직도 길이 멀었다. 인가가 있을 리도 없고 과객은 나무 밑에 낙엽을 펴고 하룻밤 쉬어 가기로 했다. 막 누우려는데 청년의 눈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이 산중에 웬 불빛일까?』

청년은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의 눈앞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 한 채가 나타났다. 청년은 깊은 산중에 이렇게 큰 기와집이 있다는 것이 내심 의아스러웠으나 혹시 절인지도 모른다 싶어 우선 주인을 찾았다.

『뉘신지요?』

대문 안에서는 뜻밖에 여인의 음성이 들렸다.

『지나가는 나그네올시다. 하룻밤 신세 좀 질까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대문이 열렸다.

『들어오시지요.』

『감사하오.』

청년은 대문을 들어서며 여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절세 미인이었다.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이 산중에 홀로 지내다니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을 거야.」

여인의 미모에 넋을 잃은 청년은 안방으로 안내되었다.

『어떻게 이런 심산유곡에 홀로 오셨나요?』

『서울로 과거보러 가는 길입니다.』

『피곤하시겠군요. 저녁상을 차려 오겠어요.』

잠시 후 밥상이 들어왔다. 밥상에는 먹어본 일이 없는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었다.

청년은 식사를 하면서 궁금증을 풀려는 듯 이일 저일 묻기 시작했다.

여인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녀는 본래 강원도 윤부자로 알려진 윤씨댁 셋째딸입니다. 갑자기 집안에 괴물이 나타나 폐가가 되고 식구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후 저는 이곳에 혼자 숨어 살고 있습니다.』

『거참 딱한 사정이구려.』

『오늘밤도 괴물이 나올까봐 무서워 떨고 있다가 손님이 오셔서 잠을 잘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청년은 안방에 자리하고 잠을 청했다. 밤이 깊어지자 창 밖에선 바람이 불고 멀리서 승냥이 울음이 을씨년스럽게 들려왔다.

그때였다.

『손님.』

문 밖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시오?』

『무서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어요. 웃목에 앉아 날을 샐 테니 들어가게 해 주세요.』

새파랗게 젊은 여자와 한방에서 자다니, 청년은 난감했다.

잠시 망설이던 청년은 여인에게 잠자리를 내주고 웃목으로 옮겼다.

여인은 수줍은 듯 등을 돌리고 옷을 벗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창밖엔 달빛이 휘영청 밝은데 여인은 잠이 들었는지 숨소리조차 없다. 청년은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운 중압감에 눌려 눈을 떴다.

그 순간

『악-.』

청년은 그만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을 징그러운 구렁이가 칭칭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청년은 온 힘을 다해 몸을 빼려 노력했으나 그럴수록 구렁이는 더욱 힘껏 감아대는 듯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구렁이의 음성은 바로 절세미녀의 목소리였다.

『누… 누구냐?』

『네가 낮에 활로 쏘아 죽인 구렁이의 아내다.』

『뭐… 뭐라구!』

『너로 인해 남편을 잃었으니 오늘밤 나는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람으로 둔갑했다. 이제 너를 물어 죽일 것이다.』

『살생을 목격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리 됐으니, 제발 목숨만 좀….』

『만약 범종소리가 네 번 울린다면 목숨을 살려주마.』

바로 그때, 대청마루 쪽에서 「딩」하고 종소리가 울려 왔다.

『아니 저 종소리가?』

종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울려퍼지자 구렁이는 그만 힘이 빠지면서 당황해 했다.

『딩- 딩- 딩-』

종소리는 세 번 더 울렸다.

구렁이는 몇 번 몸을 흔들더니 스르르 몸을 풀어 방 밖으로 나갔다.

청년은 정신을 가다듬어 벌떡 일어나 대청으로 달려갔다.

『아니 이게 웬 꿩들인가?』

대청마루 바닥엔 머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된 꿩 네 마리가 죽어 있었다.

꿩들은 자기들의 은인인 청년에게 보은키 위해 목숨을 던져 청년을 구한 것이다. 그 후 과거에 급제한 청년은 꿩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까치「치」자를 따서 본래 적악산이던 이 산 이름을 치악산이라 불렀다. 그리곤 꿩이 죽은 그 자리에 절을 세워 불도를 닦으니 그 절 이름이 오늘의 강원도 치악산에 위치한 상원사이다.


출처 : 원주불교대학 제7기 학생회
글쓴이 : 難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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