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찾아 가는 길

[스크랩] 양양 낙산사 또 하나의 전설

難勝 2007. 8. 3. 10:49
 

중국 태화 연간(827∼835) 당나라 명주의 개국사 낙성법회에는 중국은 물론 신라의 고승대덕 수만 명이 참석했다. 이날 법회가 끝날 무렵 맨 말석에 앉아 있던 한 스님이 범일 스님 곁으로 다가왔다.

『대사님께선 혹시 해동에서 오시지 않으셨는지요?』

『예, 신라 땅에서 왔습니다.』

『그럼 부탁 말씀을 드려도 될는지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

『소승은 신라와 접경지대인 명주계익령현(지금의 평양) 덕기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탁이란 스님께서 귀국하시면 저를 꼭 좀 찾아주십사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부탁이라고….』

『감사합니다. 그곳에 오시면 좋은 불연이 있어 말세 중생의 복전이 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꼭 들르겠습니다.』

범일 스님은 그 스님이 비록 왼쪽 귀가 없을망정 자비스런 보살의 모습인 데다 이국땅에서 고향 승려를 만나니 한층 더 기뻤다.

「귀국하면 꼭 찾아가 봐야지.」

범일 스님은 재회를 굳게 다짐했다.

범일 스님은 여러 조사와 스승을 찾아 공부하다가 임관(중국 제안선사)에게서 법을 얻고 회장 7년(847) 신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귀국 후 굴산사를 창건하고 중생교화에 여념이 없었던 범일 스님은 당나라에서 만난 왼쪽 귀가 없는 스님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후 대중 12년(858) 2월 보름날 밤. 범일 스님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중국에서 만난 왼쪽 귀가 없는 스님이 창문 앞에 와서 말하는 것이었다.

『스님, 저를 잊으셨습니까?』

『아, 중국에서 만난 스님이시군요. 찾아뵙지 못해 정말 죄송하옵니다.』

『절을 창건하시고 중생을 제도하시느라 지난날 중국 개국사에서 다짐한 소승과의 약속을 잊으신 것 같아 이렇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덕기방에서 꼭 뵈올 수 있는 인연을 지어 주십시오.』

『스님, 죄송하옵니다. 불사에 쫓기다 보니 그만』

『불사도 중요하시겠지만 승려와 승려의 약속이 어떤 인과인지 스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죄송할 뿐입니다. 빠른 시일내에 찾아뵙도록 하지요.』

『그럼 조속한 시일내에 뵙길 바라면서 소승 이만 물러가옵니다.』

범일 스님은 꿈을 깨고도 마치 현실인 양 어리둥절했다. 그리고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허물을 참회하면서 그날로 시자와 함께 덕기방으로 향했다.

일행이 낙산 밑 어느 마을에 이르러 마을 사람들에게 덕기방의 위치를 묻기 위해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한 여인이 일행 앞을 지나가니 그들은 여인에게 물었다.

『부인, 말 좀 물읍시다.』

『지나던 여인은 걸음을 멈추고 합장한 채 공손히 스님들 앞에 섰다. 』

『여기서 덕기방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덕기방이라는 고장은 없는데요. 그런데 참 이상한 마을 이름도 다 있네요?』

『이상하다니요?』

『우리 딸아이의 이름이 덕기인데 스님들이 찾고 계신 고장 이름과 꼭 같으니 말입니다.』

범일 스님은 참으로 기이한 일도 있구나 싶어 여인에게 이 고장의 지리, 풍속, 생활환경과 이름이 같다는 딸아이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저의 딸은 올해 여덟 살이옵니다. 그 애는 이상하게도 동네 아이들과는 전혀 어울려 놀지를 않고 항상 남촌에 있는 시냇가에서 혼자 놀다 돌아오곤 해요. 시냇가에서 무얼하고 놀았느냐고 물으면 늘 이상한 이야기만 늘어놓아요.』

『이상한 얘기라니요?』

『예,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요. 혼자 시냇가에 가서 무슨 재미로 뭘하고 노느냐고 물으면 금색동자하고 논다고 대답해요. 그 금색동자는 몸이 황금으로 된 남자이래요.』

『허-.』

범일 스님은 신기한 이야기를 듣고 뭔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고 여인은 말을 계속했다.

『우리 딸아이는 매일 그 금색동자와 놀면서 글을 배운다고 합니다.』

『부인, 부인의 딸을 좀 만나게 해주십시오.』

범일 스님은 뭔가 감지한 듯 걸음을 재촉했다.

부인의 딸은 아주 귀엽게 생겼다. 범일 스님이 다시 자세히 물어보니 소녀는 자기와 함께 노는 아이는 금빛 나는 남자아이라고 답했다. 범일 스님은 기뻐하며 그녀를 앞세워 남촌 시냇가로 갔다. 시냇가에 가서 돌다리 밑을 찾아보니 물 속에 황금빛 나는 부처님이 계셨다. 일행이 부처님을 물 속에서 모셔 내어 보니 황옥속의 돌부처였다. 자세히 살펴보던 범일 스님은 크게 놀랐다.

그 돌부처님은 왼쪽 귀가 떨어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중국 당나라 개국사 낙성식에서 만난 스님 얼굴과 꼭 닮은 것이 아닌가. 일행은 부처님께 수없이 절을 하고, 어디로 모셔야 할지 몰라 걱정을 하고 있는데 물 속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취보살이다. 낙산사로 가면 내가 안치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느니라. 오늘에야 인연을 만나 거처할 장소로 가는구나.』

이 소리에 일행은 또 한번 놀라면서 정취보살의 원력에 감격하고 찬미했다.

범일 스님이 돌부처님을 모시고 낙산사에 이르니 관세음보살님 옆에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빈 대좌에 안치시키니 미리 만들어 놓은 듯 한 치 어긋남없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보살상이 안치되자 법당 안에는 오색 서기가 어리면서 성스러운 향기가 가득하였다. 의상대사가 관음굴에서 들은 관음보살의 말씀대로 정취보살이 오신 것이다.

범일 스님은 신라 문성왕대(839∼856) 활약하신 스님으로 일명 품목이라고도 한다. 태화 연간(827∼835)에 입당(入唐)하여 명주 개국사 등에서 선법을 수련하였고 문성왕 9년(847)에 귀국했다. 스님은 그 당시로서는 처음으로 교외별전 현극지지(敎外別傳玄極之旨)의 선취(禪趣)를 신라 땅에 전했다.

후에 굴산사의 개조가 되어 굴산조사라는 명칭을 얻었고 도굴산에 근거를 두고 활약했다 하여 스님의 문하를 통털어 도굴산문이라고 했다.

《삼국유사》 권3에는 「고본에는 범일의 사적이 앞에 적혀 있고 의상과 원효 두 법사의 사적이 뒤에 적혀 있으나 살펴보면 의상, 원효 스님의 일은 당고종 때 있었고 범일 조사의 일은 회창 후에 있었으니 연대가 떨어지기 120년이나 된다.」 고 밝혀져 있다.



출처 : 원주불교대학 제7기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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