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찾아 가는 길

[스크랩] 전북 김제 금산사와 진표율사

難勝 2007. 8. 3. 10:53
 

때는 신라 성덕왕대. 전주 벽골군 산촌대정 마을(지금의 김제군 만경면 대정리) 어부 정씨 집에 오색구름과 서기가 서리면서 아기 울음 소리가 울렸다.

이 상서로운 광경을 목격한 마을 사람들은 장차 크게 될 인물이 태어났다고 기뻐하며 축하했으니 이 아기가 바로 유명한 진표율사다.

아버지 진내말과 어머니 길보랑 사이에서 태어난 진표는 자라면서 주위 사람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

율사가 11세 되던 어느 봄날.

친구들과 산에 놀러간 소년은 개구리 10마리를 잡아 끈에 꿰어 물속에 담가 두고는 그만 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봄 다시 산에 가게 된 소년은 작년에 두고온 개구리 생각이 나서 가보니 개구리 10마리가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순간 소년의 가슴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개구리를 풀어 준 소년은 친구들과 떨어져 조용한 곳에서 생각에 잠겼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왜 태어나서 죽는 것일까?」하는 생각에 골똘하다 문득 먼 산을 바라본 그는 그곳에 가보고픈 충동을 느꼈다. 어떻게 산을 넘고 내를 건넜는지 자신도 모르게 달려 어두워서 당도한 곳이 모악산 기슭에 자리한 금산사였다.

『날이 저물었는데 어디서 온 누구냐?』

『예, 대정리에 살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오게 됐습니다.』

『오, 전생의 인연지인 모양이구나. 그래 잘 왔다. 언젠가는 이곳의 주인이 되겠구나.』

노스님은 소년이 기특한 듯 쓰다듬어 주며 반겼다.

이튿날 집에 돌아오니 집에선 소년이 금산사에 다녀온 것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장정도 이틀이 걸리는 먼 거리였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날부터 말이 적어지고 늘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저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공부하기 위해 출가하여 스님이 되겠어요.』

『어, 그래. 장한 생각이구나. 그러나 너는 아직 어리니 3년만 더 집에서 시중들다가 가도록 해라.』

비록 어부였지만 불심이 돈독한 아버지는 아들의 결심을 막지 않았다.

아버지의 이해와 격려 속에 소년은 평생 해야할 효도를 3년간에 다하기 위해 열심히 부모님을 도우며 봉양했다. 어느 날 소년의 아버지는 두 자나 되는 큰 붕어를 낚아 왔다. 그 금붕어는 소년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만 같았다. 소년은 아버지께 금붕어를 자신이 키우겠다며 팔지 못하게 부탁했다.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며 정성껏 돌봐주는 가운데 어느덧 3년이 흘러 소년은 집을 떠나게 됐다. 집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도련님, 이제 저도 인연이 다하여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부디 출가하시거든 성불하시어 많은 중생을 제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간의 은혜에 보답키 위해 제가 살던 곳에 값진 것 하나 놓고 가니 그것을 팔면 부모님께서는 평생 편히 지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꿈에 웬 처녀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 마지막으로 금붕어에게 밥을 주고 작별 인사를 하려고 보니 붕어는 죽어 있었고 항아리 속에는 큰 진주가 하나 있었다. 소년은 부모님께 진주를 드리면서 간밤 꿈 이야기를 하고는 곧장 3년 전에 가 보았던 금산사로 떠났다.

덕 높으신 순제법사 문하에 들어간 소년은 3년간의 행자 수행을 거쳐 진표란 법명을 받았다.

『여기 공양차제비법(供養次第秘法)과 점찰선악업보경(占擦善惡業報經)이 있으니 수지독송하고 정진하여 미륵부처님과 지장보살을 친견, 중생구제의 법을 널리 펴도록 해라. 법을 구함은 쉬운 일이 아니니 큰 인욕과 원을 갖고 공부해야 할 것이니라.』

『예, 명심하여 수행하겠습니다.』

미륵부처님과 지장보살 친견을 서원한 진표 스님은 그 길로 스승께 3배를 올린 후 운수행각에 나섰다.

선지식을 두루 만난 진표 스님은 공부에 자신이 생기자 찐쌀 2말을 가지고 변산 부사의방에 들어갔다. 하루에 쌀 5홉을 양식으로 하고 그중 1홉은 절을 찾는 쥐에게 먹였다. 그렇게 3년간 뼈를 깎는 고행을 하면서 스승이 내리신 두 권의 경을 공부했으나 아무런 감응이 없자 스님은 스스로 절망했다.

진표 스님은 업장이 두터워 평생 공부해도 도를 얻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이 몸 버려 도를 얻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는 높은 절벽 위에서 업장 소멸을 기원하며 몸을 던졌다. 이때였다. 몸이 막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지는데 어디선가 홀연히 청의동자가 나타나 두 손으로 스님을 받아 절벽 위에 올려 놓았다. 이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진표 스님은 다시 생각을 고쳤다.

『이는 필시 부처님의 가피일 게다. 죽은 몸 다시 태어난 셈이니 더욱 참회 정진하리라.』

스님은 바위 위에서 오체투지로 절을 하며 3·7일 기도에 들어갔다.

3일이 지나자 진표 스님의 손과 무릎에선 피가 흘렀다. 7일이 되던날 밤 지장보살이 금장을 흔들며 나타났다.

『오, 착하고 착하구나.네 정성이 지극하니 내 친히 가사와 발우를 주노라.』

지장보살의 가호를 받은 진표 스님의 몸은 상처 하나없이 원상태가 되었다.

스님은 이같은 신령스런 감응에 감동하여 남은 기도 기간 동안 더욱 용맹정진했다. 단식을 하여 허기진 상태였으나 날이 갈수록 정신은 또렷해지기만 했다.

3·7일 기도회향일. 진표 스님은 드디어 천안을 얻어 도솔천중이 오는 형상을 보았다. 이때였다.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도솔천 대중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와 스님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계를 구하기 위해 이같이 신명을 다해 참회하다니 과연 장하구나! 이 간자를 줄 터이니 중생을 구제토록 해라.』

지장은 계본을 주고 미륵은 나무간자를 주었다. 간자에는 제8간자와 제9간자라 쓰여 있었다. 미륵보살이 말했다.

『이 간자는 내 새끼손가락 뼈로 만든 것으로 시각(始覺)과 본각(本覺)을 비유한 것이니라. 8자 본각은 성불종자를, 9자 시각은 청정비법을 뜻하니 이들을 점찰 방편에 사용하여 중생을 제도하면 되느니라.』

수기를 준 미륵과 지장보살은 꽃비와 풍악이 울리는 가운데 오색 구름을 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지장과 미륵 두 보살로부터 수계를 받은 진표 스님은 산에서 내려와 금산사로 갔다. 때는 경덕왕 21년(762) 4월이었다.

스님은 금산사를 대가람으로 중창할 원력을 세웠다.

『옳지, 저 연못을 메꾸고 거기다 미륵전을 세우자.』

경내를 둘러보던 스님은 사방 둘레가 1km나 되는 큰 호수에 눈이 머물렀다. 불사는 바로 시작됐다. 돌과 흙을 운반하여 못을 메꾸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바위를 굴려 넣어도 어찌 된 영문인지 연못은 메꿔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더이상 인력과 비용을 댈 수가 없게 되자 진표 스님은 지장보살과 미륵불의 가호 없이는 불사가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님은 곧 백일기도에 들어갔다.

『미륵부처님 그리고 지장보살님 제게 힘을 주옵소서.』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이었다.

『이 호수는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곳이므로 바위나 흙으로 호수를 메꾸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숯으로 메꾸도록 해라. 또 이 호숫물을 마시거나 목욕을 하는 사람에게는 만병통치의 영험을 내릴 것이니 중생의 아픔을 치유하고 불사를 원만 성취토록 해라.』

미륵불과 지장보살은 진표 스님 앞에 강림하시어 이렇게 계시했다.

진표 스님은 신도들에게 말했다.

『누구든지 병이 있는 사람은 금산사 호숫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 무슨 병이든 완치될 것입니다. 그 대신 반드시 숯을 양껏 가져다 호수에 넣고 자신의 업장을 참회하여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신도들은 수군대기 시작했다.

『스님이 백일기도를 마치고 나서 좀 이상해지셨나 봐요.』

『아녀, 절을 세울 수가 없으니까 이젠 별소릴 다하는군.』

그러던 어느 날.

경상도에서 한 문둥병자가 숯을 한 짐 지고 금산사에 도착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스님, 저는 기쁜 마음으로 미륵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왔습니다. 설사 스님께서 절을 세우기 위해 거짓말을 하셨다 하더라도 불사를 위해 하신 말씀이니 기꺼이 동참할 것입니다.』

문둥병 환자는 지고 온 숯을 호수에 넣고 발원했다.

『부처님이시여! 이 호수의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한 후 제 몸의 병이 낫지 않더라도 저는 스님이나 부처님을 원망치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저의 이 작은 보시공덕으로 불사가 원만히 이뤄지고 다음 생에는 좋은 인연받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마친 문둥병자는 호숫물을 마시고 막 목욕을 끝내는 순간 자신의 눈을 씻고 또 씻었다.

분명 못가에 서기가 피어 오르면서 미륵부처님이 나타나시더니 자기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 착하고 착하구나. 과연 장한 불심이로구나.』

미륵부처님은 문둥병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스님! 제 몸이 씻은듯이 깨끗해졌습니다.』

문둥병자는 가뻐 어쩔 줄 몰라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흉칙하던 몸이 말끔해지다니. 너무도 신통한 부처님의 가피였다.

『오! 미륵부처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신도들은 잠시나마 진표 스님을 의심한 것을 참회하며 너도나도 숯을 지게에 가득히 지고 금산사 호수로 모여들었다.

소문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졌다. 금산사 호수에는 하루에도 수천명의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호숫물은 며칠 안가서 반으로 줄었다. 그렇게 수 주일이 지나자 호수는 아주 메워져 반듯한 터를 이루었다.

호수가 다 메꾸어지던 날 해질녘, 한 청년이 새로 다져진 절터에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청년은 어인 일로 이곳에서 울고 있는가?』

『예, 저는 남해에서 어머님의 병환을 고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호수가…….』

『참으로 장한 효심이로구나. 자네의 효성을 미륵부처님께서 알고 계실 테니 너무 상심치 말고 여기 연화좌대에 손을 얹고 기도해 보게나.』

진표 스님은 청년을 위로하면서 미륵부처님의 가피력을 함께 빌었다.

청년은 스님이 시키는 대로 쇠로 된 연화좌대에 손을 얹고서 모친의 병이 완쾌되길 간곡히 염원했다. 1주일 정진을 마친 청년은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고향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그 청년은 어머니를 모시고 금산사를 찾았다.

『스님, 부처님 가피로 건강을 회복하신 저의 어머님께서는 남은 여생 스님들 시중을 들며 불사를 돕고자 하십니다. 저의 어머님 청을 들어 공양주 보살로 허락하여 주십시오.』

진표 스님은 청년의 노모를 금산사 공양주로 있게 했다.

이 소문이 다시 곳곳에 퍼져 갖가지 소원을 지닌 사람들이 또 금산사로 모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연화좌대에 손을 얹고 소원을 기원하여 가피를 입었으나 불효자나 또는 옳지 않은 일을 기도한 사람들은 손이 좌대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전국에서 모여드는 신도 수는 날로 증가하여 금산사 불사는 쉽게 이뤄졌다. 혜공왕 2년 미륵전이 낙성됐고, 다시 2년 후에는 거대한 청동 미륵불상과 양대 보살을 조성하여 봉안했다. 미륵불이 봉안되자 전국에서 신도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친경 예경했다. 그리고는 금당 건립을 발원, 진표 스님은 776년 대적광전을 왕성하고 자신이 미륵부처님께 수기받던 형상을 법당 남쪽 벽에 그려 봉안했다.

신도들이 기도하던 연화좌대는 30년 전까지 둥그런 기도처였는데 요즘은 붕괴될 우려가 있다 하여 미륵부처님 불단 밑으로 통로를 만들고 기도하도록 되어 있다.

출처 : 원주불교대학 제7기 학생회
글쓴이 : 難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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