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삼천배 - 성철스님 이야기

難勝 2008. 10. 26. 04:01

 성철스님께서 팔공산 금당선원에서 깨치신 후에  6.25한국전쟁으로 통영의 명산 벽발산에 위치한

안정사옆에 위치한 “천제굴”에 계실 때 일이다.


당시 스님은 이미 도인으로 소문이 나 인근 도시 부산, 마산 신도들이 너도 나도 만나 뵙고 할 때였다.


천제굴을 찾은 원명화는 30대 젊은 보살이었는데, 그녀의 남편은 마산에서 큰 배 두 척을 가지고 어업을 하는 사장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바람기가 많고 시도 때도 없이 사냥이나 다니며 집을 비우는 사람이었으므로 원명화의 애간장을 태웠다.

원명화가 보석을 사 모으고 값비싼 옷으로 치장을 하는 것은 남편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울 때마다 옷을 사거나 보석을 새로 사 몸에 걸치며 울분을 삭였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올케 언니인 길상화가 고성 문수암을 갔다가 청담스님에게 성철스님의 얘기를 듣고는

원명화를 데리고 천제굴로 찾아간 것이었다.

불교신도인 길상화의 채근에 못 이겨 마산 집을 나선 원명화는 통영 벽발산 산자락에 있는 조그만 초가집

천제굴을 들어설 때만 해도 양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청담스님이 성철스님을 보기 드문 도인이라고 추켜세운 것은 으레 하는 덕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천제굴을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행자들은 원명화의 화려한 옷차림새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검은 비로도 치마저고리에 손가락에는 커다란 반지를 끼었고,

비취 목걸이에다 머리에는 큰 옥비녀를 꽂고 있었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그녀를 보자마자 화부터 벌컥 냈다


“절에는 기도하러 오는 것이다.

비싼 옷을 입고 다니며 누구를 꼬드길라꼬 그러느냐.”

“큰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여기는 부처님밖에 없다.”

성철스님은 들고 있던 낫으로 갑가지 원영화의 비로드 치마를 찢어버렸다.


예리한 낫에 원명화의 검은 치마는 순식간에 잘려져 버렸다.

길상화는 쩔쩔맸고 원명화는 기가 질려 움찔하지도 못했다.

그러자 성철스님께서 속사포처럼 빠르게 산청 사투리를 쏟아냈다.

“내 시킨 대로 안 하면 니 집 망하고, 니는 거지 되어 길거리 나앉을 끼다.

니 집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성철스님의 단언에 원명화가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큰스님, 어찌 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지금 법당으로 가서 삼천배 하고 오라.”

원명화는 찢긴 치마를 입은 채 법당으로 올라갔다.


원명화가 법당으로 간 사이 성철은 길상화에게 말했다.

“저 보살 눈에 독기가 가득하다.

지 남편이 고기를 많이 잡아 그런다. 죄를 많이 지은 것이야. 안과 병원 가도 저 눈은 못 고친다.”


“큰스님, 말씀해주십시오.”  

“그래, 삼천배는 지금 하고 있고,

또 하나 할 일은 추석 전에 집없는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주라고 그래라.”


훗날 불전 삼천배는 성철스님 하면 떠오르는 기호가 돼버렸는데.

사실은 천제굴 시절 원명화에게 시킨 것이 효시가 된다.


봉암사에서 신도들에게 삼배를 시킨 것은  스님들의 위의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고,

불전 삼천배는 나라고 고집하는 아상(我相)을 뽑아주기 위해서 방편으로 시킨 것이었다.

한나절이 지나 원명화가 섬천배를 마치고 비틀비틀 걸어나오자 성철스님 말씀했다.

“보살 눈의 독기를 풀어야 한데이. 그걸 풀어야 운명이 바뀌어진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원명화는 이미 기가 꺾이고 주눅이 들어 성철스님께서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항복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거든 식모들을 다 불러모아놓고  오늘은 니 손으로 밥을 해서 차려주어라, 알겠느냐.”

“예”

“술을 마시고 싶은 식모가 있거든 오늘은 니가 따라주어라.”

 “예”

“오늘부터는 니 신랑에게 직접 밥을 해주어라. 술도 따라주어라.

그리고 아침마다 신랑 앞에서 부처님에게 하듯 절을 세 번 해라.”

“큰스님.”

“와 그러노, 그러면 니 가슴에 있는 독기가 사라진타카이.”

“큰스님, 차라리 칼로 제 목을 쳐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큰스님께서 이 자리에서 죽으라면 죽겠습니다만 바람피우는 남편에게 어찌 그리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럼 내 말이 옳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도해라.

아상의 뿌리가 쏙 뽑혀질 끼다.”

천제굴을 떠난 원명화는 성철스님과의 약속을 지켰다.

추석 전날이 되자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주었으며,

식모들에게 손수 밥을 해주어 자존심을 헌신짝 버리듯 했다.

또한, 남편에게는 아침마다 부처님에게 하듯 삼배를 했다.

부처님 앞에서 삼천배를 시키어 나라고 고집하는 아상을 뽑은 다음,

모든 이를 부처님 모시듯 행동하도록 제도하고 있는 것이다.


훗날 성철스님은 말한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처럼 섬기라. 그것이 참 불공이다.’

참 불공이란 목탁을 두드리며 불단에 음식을 차려놓은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를 몰래 돕고,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란 말이다.

원망하는 원수까지도 부처님처럼 섬기는 것이 참 불공인 것이다.


출처-자기를 속이지 말라.


(암자에서 만난 성철 스님 이야기 열림원 정찬주著 p12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