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무시당해 주는 공덕 - 지명스님

難勝 2008. 11. 21. 06:01



무시당해 주는 공덕

                                      

잘난 체 하는 것에 매달리지 말라



한 중년 부인이 상담을 위해 찾아 왔다.
‘따돌림’이라고 해야 할지,
‘무시’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친구들이나 친목 단체 모임에서 자기를
공평하게 대해 주지 않으니, 어떤 기도를 하면
그 액을 면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내놓았다.

나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표면적으로 확연히 드러나는 예를 들었다.
모임에 나가서 친구들끼리 인사를 할 때,
남편이 출세하고 권력과 돈이 많은 다른 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으면서 반갑게 대하는데,
자기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

어떤 행사의 자리나 버스 여행의 경우에
자기는 항상 말석에 앉도록 한다는 것.
여럿이 대화를 할 때,
남편이 잘 나가는 친구가 말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열심히 의견을 주고 받는데, 자기가 제시하는
화제에 대해서는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는 것 등등이다.
무엇보다도 눈빛 자체에서 자기를 무시하는 것이 느껴진단다.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불안.불만스럽고 고통스러워 다른 예도 많다고 했지만,
나는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라고 중단시켰다.

저 부인은 어떤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고,
사회에서의 동화성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시 당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누구나 갖고 있다.
여럿이 모일 때,
좋은 의견을 내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발언하는 경우에 조차도, 그 내면에는
“나의 존재를 알린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자신을 부각시키고 자신의 유용함과
능력을 알리고 싶어하는 의욕과 발언의 양은 정비례한다.
일류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
학생과 부모가 목을 매고 달려드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출세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출세한 사람’, ‘성공한 사람’,
‘떳떳이 남 앞에 설 수 있는 사람’,
‘부끄럽지 않은 사람’, ‘당당한 사람’,
‘세상에 빛을 주는 사람’,
‘보살펴 준 보람을 느끼게 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자식, 남편, 부인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한다.

저 표현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선망의 대상이 되어서 존경 또는
사랑을 받고 무시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금강경]에서
석존은 무시당하는 것이 공덕이 된다고 가르친다.
전생에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이 언젠가는
악도에 떨어져야 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시를 당한다면,
그 공덕으로 전생의 악업이 소멸되고
마침내 궁극의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

“금강경을 수지 독송함에도 불구하고”의 전제는 있지만,
무시당하는 것은 [금강경] 전체의 내용과 일관되게 맥을 같이 한다.
‘상(相)’은 자신의 가치를 높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다.
알아달라는 것이다.
저 ‘상’의 반대는 ‘무상(無相)’
즉 ‘내세우지 않음’을 지나서 ‘무시 당하는 것’이다.


[금강경]뿐 아니라 반야부 전체의 대의 구절이라고 하는
“모든 현상은 허망하니 만약 현상을 보되
그 상을 지우고 볼 수 있으면 바로 여래를 보는 것과 같다”는 말도,
물질위주 잘난 체 위주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불도의 길에 들어간다고 짧게 말한다.

혜능대사가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집착이 없이 불국토를 장엄할 마음을 내라”는 구절도,
‘알아주는 것’, ‘잘난 체하는 것’에 대해
매달리지 말라는 뜻을 내용적으로 품고 있다.

여기서의 ‘응무소주(應無所住)’
즉 ‘무집착’을 뒤집어 말하면
“편안하게 무시당할 수도 있으면서”가 될 것이다.


왜 우리가 불안하고, 불만스럽고, 고통스러운가?
왜 걱정거리가 많고 스트레스가 쌓이는가?

나를 남 앞에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큰 짐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 내려놓아라.
그러면 편안하다.

- 지명스님 / 괴산 각연사 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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