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불법(佛法)을 사상(思想)이라 하는가?
“스님, 불교의 위대한 사상(思想) 4가지 있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글쎄요, 저는 불교의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저는 잘 알지 못하니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친절하게 불교의 위대한 사상 4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분의 불교 사상 4가지는 <공, 무아, 중도, 연기 >라는 것이었다. 그 분은 불교의 위대한 4가지 사상도 모르는 사람이 불법 수행자라는 것이 한심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공, 무아, 중도, 연기>를 어떤 사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당연히 모르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공, 무아, 중도, 연기>는 사상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인 진리인 것이다. 진리란 결코 사상이 아니다. 깨달은 도인에게는 사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씀은 곧 진리이며 진리란 중생의 업장을 녹여주는 하나의 빛이다. 진리의 빛, 진리의 빛이 어찌 사상인가?
사상이라는 것은 자아완성의 단계이다. 부처의 경지가 아니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자아가 완성된 사람들이다. 완성된 자아의 힘으로 새로운 작품을 창조 하는 것이다. 그 창조의 힘이 바로 자신만의 사상인 것이다.
부처님 말씀은 사상이 아니다. 불법을 수행하여 어느 경지에 오른 후에, 자신만의 견해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드러낸다면 바로 그것이 자신만의 사상인 것이다. 공(空)사상이니, 반야사상이니 하는 것도 수행자가 공이나 반야의 도리를 어느 정도 맛을 본 후에 그 맛본 것을 자신 스스로 어떤 체계를 세우는 것을 자신만의 사상이라고 말할 수는 것이다. <이 또한 나의 사상일 뿐이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말은 데카르트의 사상이다. 철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만의 사상을 완성한 것이다. 이 사상의 완성이 바로 자신의 자아를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사상인하여 자신의 자아를 완성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자신의 지적인 <에고>일 뿐이다.<금강경에서 말하는 사상(四相)>의 극치에 도달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불법은 사상의 극치가 아니다. 그 사상을 넘어 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자신의 사상,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자아완성을 노래할 때 깨달은 도인들은 철학자에게 묻는다.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는데 그 생각하는 그 자는 진정 <누구인가?> 이 도인의 물음이 바로 화두인 것이다. 이 물음의 화두가 어찌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깊이 생각하고 또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화두에는 엄청난 에너지의 힘이 있다. 그 힘은 바로 이 사상(思想), 자아완성을 부셔버리는 에너지 힘 말이다. 그래서 이 말법시대의 화두참선을 제대로 하고 싶거든 우선 자아완성, 다시 말하면 자신만의 사상체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 사상체계의 힘을 또 다른 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화두라는 강력한 에너지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이 화두의 에너지 힘을 알고 싶거든 우선 자아완성을 해보라. 그런 후에 진정한 스승을 만난다면 화두, 활구의 강력한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그대가 화두를 들고 있다면
그 화두를 그대의 <누가?> 들고 있는가?
본래 주인공은 화두를 들지 않는다.**
- 무명스님과의 문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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