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3월11일(음 2.15)이 열반재일입니다.
다른 분의 견해로 열반재일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열반재일의 의미
붓다의 열반은 죽음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육신의 죽음이요, 진리의 몸은 영원하다. 바로 이것이 ≪열반경≫에서 설하는 불신상주(佛身常住)이다. 그러나 소승 불교에서는 유여열반(有餘涅槃), 무여열반(無餘涅槃)으로 나누어 정신적으로 번뇌는 없어졌지만 신체가 남아 있는 상태의 열반을 유여열반이라고 한다. 반면 대승의 입장에서는 깨달음을 열반이라 보고 대열반이라고 하여 법신(法身)과 반야(般若)·해탈(解脫)의 3법으로 파악하고 있다.
여기서 법은, 즉 진리의 몸인 부처님의 몸은 여여(如如)하며 가고옴도 없으며 높고낮음도 없으며, 성 내고 웃고, 좋고나쁨의 구별이 끊어진 자리이며, 이를 진리의 몸, 법신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80세를 일기로 2,600여년 전 인도 땅에서 입멸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입멸한 부처님은 방편으로 중생 교화를 위해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으로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은 물질의 법칙에 따라 입멸하나 법신은 중생 속에 항상 상주(常主)하고 있다. 그래서 ≪열반경≫ 상수품에서는 붓다의 입멸이 시현(示現)임을 설하고, 현병품(現病品)에서는 병 또한 시현임을 설하고 있다. 아울러 ≪열반경≫에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있다는 가르침을 설하고 있다. 즉, 누구나 부처님이 될 가능성이 있는데 부처가 되지 못하는 것은 탐욕·성냄·어리석음 따위의 번뇌의 먹구름이 밝은 불성의 햇빛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번뇌에 덮이고 가리워진 상태의 불성·여래성을 여래장(如來藏)이라고 한다.
이 여래장이 번뇌의 먹구름을 벗어났을 때를 법신이라 한다. 그러므로 법신의 부처님은 특별한 사람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바로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의 가르침인 것이다. 바로 이 점이 불교가 가진 최상의 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교(異敎)에서 아무리 열심히 수행하고 신행을 잘 닦아도 아무도 '예수'나 '마호멧'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불자들은 누구든 잘 수행·정진해 깨달음을 성취하면 그가 머리 깎은 스님이든 재가 불자(在家 佛子)이든 그에 상관없이 붓다의 반열에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붓다의 길을 가기 위한 수행 과정이 육바라밀과 팔정도의 실천이다. 우리 모두는 붓다가 될 성품을 갖고 있으나 자신의 이러한 불성을 소중히 가꾸어나가는 것이 출가와 열반재일을 맞는 불자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열심히 정진하는 것만이 보리심을 증진시키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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