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산사(山寺)에서
얼굴 잊겠다던 스님께 햇차를 대접받던 날
마주하신 맑은 얼굴이
두 번째 찻 물 속에서 나를 향해 파르스름 피어난다.
풍경소린 아니 들리고
또르르 차 따르는 소리만 방안에서 눕는데
옷깃을 풀어헤친 비구름이
지리산을 껴안으며 나로 하여금 눈감게 한다
속세 손으로 받았지만
무량가슴으로 이어지는 한없는 이 따스함
세 번째 찻 물 따르는 소리가
무욕으로 다가온 산의 순수가 되어 탁한 유혹들을 씻어내고
회한(悔恨)으로 드는 차 한잔
눈가엔 이슬 한 방울 밖에는 비가 오는데....
앞으로 차 한잔 하시면서
이방에서 행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차를 끓이는 마음
햇살이 따사로운 정오
소나무가지에 대발 걸어 놓고
너른 잔디 돗자리삼아
다판을 벌여요
천년 샘에서 물을 길어와
솔가지를 주워 다가 찻물 끓이고
공양간에서 거둬온 누룽지 꺼내놓고
화사한 웃음으로 좀 기다리라 하지요.
살랑살랑 부채질 하며 물을 끓이는 동안
도반은 나를 위해 시를 읊어주고요
또 한 도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춰요.
하늘하늘 토끼풀꽃 코러스도 기막히네요.
햇빛을 조금 섞을까요.
계곡의 물소리 한큰술
솔잎 향기 두어 숟가락
맑은 바람 즙 약간
멀리 가는 진한 향기보다
오래가는 은은한 향기이고 싶어요.
뚜껑 꼬옥 닫아 흔들기 전에
내 마음도 담뿍 넣어야지.
詩 원성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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