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식 스트라이크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는 속담이 있다.
성품이 온화하고 원만해서 쉽게 희노애락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참으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분이었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누가 모함을 하거나 모욕을 주어도 빙그레 웃거나 묵빈대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부처님도 인간이라면 분명히 화나는 일, 억울한 일, 속상하는 일이 있었을텐데 그때마다 부처님은 한결같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세속적인 명리나 다툼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달은 분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부처님이지만 말년에 이르러 딱 두 번, 시위에 가까운 의사표시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머리디를 두르거나 큰소리로 했던 것이 아니고 조용한 행동으로 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부처님식의 스트라이크라고나 할까.
거룩한 부처님이 범부들이나 하는 시위나 농성을 했다면 믿어 지지 않겠지만 이는 사실이다.
첫번째 사건은 노년의 부처님이 코삼비에 머물고 계실 때 일어났다.
어떤 비구가 계를 파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과연 파계인가 아닌가로 비구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두패로 나뉜 비구들은 마침내 부처님이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이에 부처님은 '이들의 어리석음은 나도 어쩔 수 없다'고 탄식을 하며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사밧티로 떠났다.
이는 명백하게 부처님이 말썽꾸러기 제자들을 향해 보이신 무언의 시위였다.
두번째 사건은 샤카족의 멸명과 관련된 정치적 색깔이 강한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아버지를 축출하고 코살라의 새 왕이 된 비두다바왕은 부처님의 동족인 샤카족을 멸망시키려고 했다.
마침 고향인 카필라바수투 교외에 있던 부처님은 이 소식을 듣고 비두다바가 출정하는 길목의 고목나무 밑에 앉아서 왕을 기다렸다.
일종의 전쟁반대 농성이었다.
젊은 왕은 늙은 부처님이 왜 뙤약볕 아래에 앉아 있는가를 알아차리고 회군을 했다.
두 번 세 번은 이렇게 해서 동족의 멸망을 저지했으나 네번째는 부처님도 어쩔 수 없었다.
부처님 말년에 있었던 이 두 사건은 부처님을 무척 슬프게 했음이 분명하다.
부처님은 이 두 사건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그야말로 무언의 시위를 벌였음에도 미련한 중생들은 끝내 부처님의 의견을 묵살해 버렸다.
그러니 아무리 부처님인들 그 속이 어떠했을까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어떤 불가피한 일을 당했을 때 부처님이 취한 의사표시 방법이다.
이 때 부처님은 결코 우리들처럼 주먹을 쥐고 큰소리를 치거나 핏대를 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당신의 의사표시를 할 뿐이었다.
앞의 두 사건에서 부처님의 의사표시는 분명히 시위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결코 큰소리가 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부처님의 방법이었다.
불자들의 삶의 典範이 부처님이라 할 때, 부처님의 이 같은 의사표시 방법은 우리도 본받을 필요가 있다. 아무리 옳고 선한 목적을 위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 표현방법은 어디까지나 불자다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이 좋다고 보기에 민망한 수단마저 용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의 일이란 부처님이라도 벌떡 일어나 소리지를 일이 참으로 많다.
그렇지만 불자는 역시 불자다운 데가 있을 때 그 주장이나 시위가 더욱 설득력이 있어진다.
불자의 이름을 내걸고 보통사람들처럼 머리띠 두르고 주먹 불끈 쥐고 목에 핏대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떤 명분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또 어떤 이해관계 때문에 하는 집단행동에도 불자로서의 襟度가 있어야 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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