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선이는 인물도 곱고 글도 많이 배운 데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해서 평양에서는 제일가는 기생이었다. 그래서 모은 돈이 수십 만금이었다. 돈을 벌어 잘 살다보니, 아무도 넘보지 못했다.
월선이는 돈을 벌 만큼 벌자 기생 노릇도 그만두고 남편이나 얻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지 알 수 없었다. 궁리 끝에 광고를 내기로 했다. 광고 끝에다가, "이 글의 짝을 채우는 사람에게 내 몸과 재산을 모두 바치겠다." 고 했다. 그 글은 이런 것이었다.
吾家有一酒 오가유일주 大甁小甁 二十四甁 대병소병 이십사병 金氏飮許之 李氏飮許之 김씨음허지 이씨음허지 飮之以後 醉不醉 吾不關之 음지이후 취불취 오불관지
내 집에 술이 있는데, 큰 병, 작은 병이 스물네 병이다. 김씨가 먹겠다고 해도, 이씨가 먹겠다고 해도 다 허락하는데 그 사람이 취하고 안 취하고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어째든 이 글귀의 짝을 채우면 몸과 재산을 다 바친다는 소리에, 글깨나 한다는 사람은 물론이고 온갖 천하 건달들이 월선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별별 재주를 다 부려보았으나 어느 누구도 그 짝을 채우는 자가 없었다. 이윽고 글 잘 짓기로 유명한 어떤 선생이 이런 글을 지었다.
吾家有一書 오가유일서 大冊小冊 二十四冊 대책소책 이십사책 金氏學敎之 李氏學敎之 김씨학교지 이씨학교지 敎之以後 通不通 吾不關之 교지이후 통불통 오불관지
내 집에 책이 있는데 큰 책과 작은 책이 스물네 책이라. 김씨가 배우겠다고 해도, 이씨가 배우겠다고 해도 다 가르치되 가르치고 난 후에 통하고 못 통하고는 내가 관계할 바가 아니다.
이렇게 하여 선생과 월선이의 글이 짝이 아주 딱 맞게 되었다. 그런데 월선이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째서 안 되느냐?" "선생이 제자에게 글을 가르칠 때는 알게 하려고 가르치는 법인데, 제자가 알지 못하는 것에 어째서 선생이 관계가 없단 말이오? 이래서 선생은 쫓겨나고 말았다. 다시 숱한 놈들이 덤벼들었다 가는 실패하고 한 의원이 들어가게 되었다. 의원이 들어가서 그 짝을 채우는데 아주 그럴 듯했다.
吾家有一藥 오가유일약 大貼小貼 二十四貼 대첩소첩 이십사첩 金氏病服之 李氏病服之 김씨병복지 이씨병복지 服之以後 效不效 吾不關之 복지이후 효불효 오불관지
내 집에 약이 있으니 큰 첩과 작은 첩이 스물네 첩이라. 김씨의 병에도, 이씨의 병에도 다 먹이되 먹고 난 후에 효험이 있고 없고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짝은 잘 맞았으나 역시 월선이 안 된다며 이유를 말했다. "의원이 약을 지을 때는, 이 약을 먹고 병이 낫겠지 하고 짓지, 낫지 않을 텐데 하고 지었겠소? 효험이 없는 것이 어째서 의원과 관계가 없단 말이오? 의원도 별 수 없이 쫓겨났다. 그뒤로 다시 별놈들이 숱하게 왔다갔지만 누구 하나 합격하지 못하고, 이번에는 스님이 하나 들어갔다. 스님이 들어가서 그 짝을 이렇게 채웠다.
吾家有一佛 오가유일불 大佛小佛 二十四佛 대불소불 이십사불 金氏願禱之 李氏願禱之 김씨원도지 이씨원도지 禱之以後 福不福 吾不關之 도지이후 복불복 오불관지
내 집에 부처가 있는데 큰 부처와 작은 부처가 스물넷이라. 김씨의 소원도, 이씨의 소원도 다 빌어주되 기도한 후에 복받고 못 받고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또 월선이가 안 된다고 했다. "부처님한테 빌면 복을 받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와서 비는데, 어째서 복 받고 못 받는 것이 스님과 관계가 없단 말이오?" 그래서 스님도 쫓겨났다. 그럭저럭 시일도 많이 지났는데, 아주 남루한 차림의 거지가 찾아왔다. 들어가서 짝을 채우겠다는 것이었다. 채워 보라고 하자 이렇게 읊었다.
吾家有一瓢 오가유일표 大瓢小瓢 二十四瓢 대표소표 이십사표 金氏宴乞之 李氏宴乞之 김씨연걸지 이씨연걸지 乞之以後 廢不廢 吾不關之 걸지이후 폐불폐 오불관지
내 집에 바가지가 있는데 큰 것, 작은 것 스물네 개가 있다. 김씨 집 잔치에, 이씨 집 잔치에 가서 다 구걸하되 구걸 후에 그 잔치가 파할지 안 파할지는 내 상관할 바 아니다.
기생이 듣고는 "그렇지. 그 집에 가서 얻어먹었으면 그만이지. 그 집 잔치가 파하고 안 파하는 것은 거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 하며 만족스러워 했다.
그 거지는 기생에게 장가들어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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