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가 불교에 귀의하게된 일화
중국 당나라 시대에 8대문장가로 이름을 날리던 소동파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시로도 이름 났지만 서화에도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재승박덕이라는 말이 있듯이 재주는 뛰어났지만
벼슬길은 순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안 중에는 세상이 자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없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 소동파가 형주 고을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옥천사로 승호선사를 찾아갔습니다.
선사가 "대관의 존함은 어떻게 되십니까?"하고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동파는 "나는 칭(秤)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칭가라니요" 승호선사는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소동파는 오만불손한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천하 선지식을 저울질하는 칭가란 말이요."
칭이란 한자로 저울이란 뜻인데 자기가 선지식들의 법력을
달아보는 저울이라는
아주 거만하기 짝이 없는 말을 서슴없이 한 것입니다.
그러자 승호선사는 "으악"하고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그렇다면 이것이 몇 근이나 되지"하고 물었습니다.
여기에서 소동파의 콧대는 여지없이 꺽이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으악" 소리가 몇 근인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의 자존심은 크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또 한번은 상총이라는 스님을 찾아가 설법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상총스님은 "어찌 무정설법은 듣지 못하고 유정설법만
들으려고 하느냐"하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무정설법이란 산이나 나무와 같은 무정물이 설법을 한다는 말인데,
소동파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말을 타고 한없이 달렸습니다.
자기가 잘났다는 오만한 생각도 이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오직 텅빈 마음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말을 달리던 동파는 마침 웅장한 폭포 밑에 이르자
귀가 번쩍 열렸습니다.
비로소 마음의 눈, 마음의 귀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감격의 시를 한 수 지었습니다.
계성변시장광설 (溪聲便是長廣舌) 이요,
산색기비청정신 (山色豈非淸淨身) 이리오.
"계곡 물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 분명하고,
산의 모습이 바로 부처님의 청정한 법신이 아닌가!"하는 뜻입니다.
소동파는 비록 출가수도를 한 수행승은 아니지만 아상과 아만을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돌아가서 바로 자연에서
부처님의 모습과 부처님의 음성을 보고 들은 것입니다.
이처럼 깨닫고 보면 세상 어느 곳에나 부처님이 계시므로
부처님의 모습을 뵙고, 부처님의 음성을 듣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렇지 못한 우리같은 범부중생들은 산색은 그냥 산이요,
계곡물소리는 한낮 물소리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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