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작약(芍藥)을 보면서
입력 : 2009.05.24 22:11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인 5월에 작약이 핀다. 인생을 살면서 춥지도 덥지도 않은 시절이 얼마나 되겠는가. 1년 중 가장 좋은 계절에 작약이 핀다. 하얀색의 꽃잎을 가진 백작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특히 산에서 피는 하얀색의 산작약은 꽃이 홑겹이므로 단출한 느낌을 주는 데다가, 그 꽃잎의 안쪽도 깨끗하다.
언뜻 보면 소박한 듯한데, 한참 보고 있노라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화려하면서도 단정하여, 귀부인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차를 마시는 다인들은 모란과 함께 작약을 최고의 꽃으로 친다. 모란은 '서 있는 미인'이고, 작약은 '앉아 있는 미인'에 비유하기도 한다.
5월에 피는 작약을 볼 때마다 중정(中正)의 인품을 지닌 미인을 보는 것 같다. 인생 살면서 중정의 인품을 지닌다는 것이 쉽지 않다. 적절한 타이밍을 맞춘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 타이밍만을 놓고 말한다면 매화는 성질이 너무 급하다. 이른 봄 차가운 눈 속에서 매화는 핀다. 조금 더 있다가 피면 안 되는가? 조금 더 참고 있으면 날씨가 따뜻해질 것이고, 기다리다 보면 상황이 좋아질 것인데, 그걸 못 참고 추운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약을 보면서 매화의 성질 급함이 느껴진다.
국화는 또 어떤가. 늦가을의 서리를 맞으면서 꽃이 핀다. 꼭 서리를 맞아야만 좋은 것인가! 고생스럽게 피는 꽃인 매화나 국화를 작약보다 더 높이 평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 살다 보면 좋은 일보다는 고통이 더 많다. 중년이 되면 기쁨보다는 걱정과 근심으로 잠이 안 올 때가 훨씬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화나 국화를 더 높이 평가하고 사랑하였다. 퇴계 선생은 매화를 사랑하였고, 도연명은 국화를 사랑하였다. 주렴계는 연꽃을 좋아해서 '애련설(愛蓮說)'을 남겼고, 시인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를 기다렸다.
나는 작약을 보면서 중정을 생각한다. 초조하게 서두르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늦지도 말자. 모든 산이 녹색과 연두색으로 뒤덮이는 5월은 얼마나 좋은 호시절인가! 고생만 하다 죽으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호시절이 주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다 가고 싶다.
(기사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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