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으슬으슬하니 생각나는 건 따끈한 국물.
국물 이야기/문형근
우리의 밥상에는 밥과 함께 국이 주인이다. 봄이면 냉이국이나 쑥국의 향긋한 냄새가 좋고, 여름엔 애호박국이 감미로우며, 가을엔 뭇국이 시원하다. 그리고 겨울이면 시래깃국과 얼큰한 배추 김칫국이 있어서 철따라 우리의 입맛을 돋운다.가을 뭇국은 반드시 간장을 넣고 끓여야 제 맛이 나고, 겨울 시래깃국은 된장을 풀어야 구수한 맛이 돈다. 사람들이 지닌 성품과 애정(愛情)도 이처럼 사계절의 국물맛과 같지 않을까?
조선 시대 왕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 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왕이 친히 선농단까지 나갔던 것이다.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니 백성들도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궁궐에서만 사는 왕을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 있고, 또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도 해서였다. 흉년이 든 다음 해는 백성들이 더 많았는데, 그 까닭은 그 곳에 가면 국물을 얻어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선농단의 국물에는 은혜와 감사, 또는 마음 속 깊은 기원(祈願)이나 따듯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선농단에서 백성들에게 국물을 나누어 주다가 갑자기 사람이 더 늘어나면 물을 더 붓는다. 그리고 간을 다시 맞추어 나누어 먹는다. 물을 더 부으면 그만큼 영양가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디 지난날 우리가 영양가를 따져 가며 먹고 살아왔던가? 가난을 나누듯 인정(人情)을 사이좋게 실어 나르던 고마운 국물이었던 것이다.
엿장수 인심에 '맛보기'라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기분만 나면 맛보기 한 번에다 덤을 주는데, 이 역시 국물 한 대접 같은 인정의 나눔이다.
시장에서 콩나물을 살 때도 값어치만큼의 양은 당연히 준다. 그러나 덤으로 콩나물이 더 얹히지 않을 때 아낙네들은 금방 섭섭한 눈치를 한다. 파는 이가 두꺼비 같은 손잔등을 쫙 펴서 서너 개라도 더 올려놓아야 아낙네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 간다. 그 덤 역시 국물과 같은 끈끈한 인정의 나눔이리라.
그런데 요즈음 우리네 식탁엔 점차 국물이 사라지고 있다. 걸어가면서 아침을 먹고, 차에 흔들리면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바쁜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인가? 아니면, 개척 시대 미국 이주민의 생활(生活)이 부러워 그것을 흉내 내고 싶어서인가? 즉석 요리, 즉석 식품이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다.
내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생선은 굽고, 닭고기는 튀겨야 맛이 있다고 성화인 것만 보아도 그렇다. 나는 그 반대 입장에 서서 국물이 있는 것으로 입맛을 챙기려 하니, 아내는 늘 지혜롭게 식탁을 꾸려갈 수밖에 없다.
기다릴 줄을 모르고, 자기욕심 자기주장이 통할 때까지 고집을 피워 대는 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그런 성격이 서구화(西歐化)된 식탁 문화에서 빚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커진다.
(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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