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공(空)

難勝 2009. 10. 27. 04:55

            부처님의 말씀 공 (空)

 

           온갖 겉모양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양이 모양 아닌 줄 알면

                 바로 여래를 보리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 諸相非相 卽見如來[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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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공空을 뜻하는 슈나타shunyata를 크게 오해합니다.

공이라고 하면 '허무'라는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부정적인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이 말하는 공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긍정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충만함'보다도 더 긍정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空의 경지에서야말로 완전한 자유自由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비워 냈기 때문에 걸림이 없습니다.

모든 경계境界가 사라졌습니다. 공속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이렇게 경계가 없는 공간에서만 진정한 자유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공空은

보이는 것의 부재不在이면서 보이지 않는 것의 현존現存입니다.


                [오쇼 라즈니쉬 강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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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것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마지막도 좋으며(初善中善後善)

좋은 뜻과 좋은 의미로서 순수하고 하나같다.

 

원만하고 깨끗하여 범행이 청정한 것이다.

그래서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이라고 한다.

 

제일의 空이란 무엇인가?

눈(眼)은 생길 때에도 온 곳이 없고, 멸할 때에도 간 곳이 없다.

이와 같이 눈은 진실이 아니면서 생기고, 생겼다가는

다 소멸하나니 업보(業報)는 있지만 지은 자가 없느니라.


이 쌓임이 소멸 하고 나면 다른 쌓임이 이어 받나니 세속의

범주와는 다르다.

귀, 코, 혀, 몸, 뜻에서도 마찬 가지이다.

세속의 범주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위가 있고, 행위를 인연하여 의식이 있다.

이렇게 전개되어 고통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는 것이니,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위가 없고,

행위가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도 소멸한다.

이렇게 전개되어 고통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第一義空經이라 한다.


                          [잡아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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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아(自我)가 없음을 발견했다!"


내 존재의 핵심에 있던,

자아처럼 보이는 고정된 실재(實在)를 투과하면서

나는 자아가 없음을 보았다.


그러나 이것이 나를 파멸시키지는 않았다.

오직 나의 고통(苦痛)만을 파괴했다.

나는 해방(解放)을 완성했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한 말을 믿을 필요는 없다.

너희 스스로 자기의 본성(本性)을 깨달아야만

무아에 이를 수 있다.


너희 스스로 진리를 찾아라.

너희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자아를

온 힘을 다해 찾고 증명하고 설명하라.

그리고 자아를 찾았다면 내가 틀렸다고 말하라.

나의 말들은 무시하라.


자아의 핵(核)을 찾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것마다

녹아버려도 포기하지 말고 점점 더 깊이 찾아들어 가라.

 

마지막에 도달한 순수의식(無心)의 정점에서도,

내가 그랬듯, 극소로 영속하는 핵으로 된 자아를

못 찾는다 해도 두려워 마라.


그 공(空)을 대면하라.

그것이 궁극에 이르는 발판임을 잊지 마라 !


순수의식으로 된 자아를 집중해서 보라.

그러면 자아가 너를 놓아 주리라.

 

그때 비로소 너희는 다른 모든 존재와 서로 긴밀히

연결된 무한한 망(網)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된다.


그러고 난 후 너희는 상대적인 자아(空의 實顯)로서

행복 안에서 살아갈 것이다.

다른 존재들이 스스로의 복된 자유와 행복을 찾도록

도와줄 정도로 자유로워질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실제의 문[實相]을 열 수 있는 열쇠로 제시하셨습니다.


'무상'은 시간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고,

'무아'는 공간의 관점에서 하는 말입니다.


'무상'을 깊게 살펴보면,

사물은 원인과 조건이 변함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무아'를 깊게 살펴보면,

우리는 우리가 아닌 요소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물은 무상하고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물은 생과 사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철저하게 접해보아야만

생사, 영원과 무상 그리고 자아와 무아를

벗어난 존재의 근거를 접할 수 있습니다.


바다를 보면

각각의 파도에는 시작과 끝이 있음을 압니다.


하나의 파도는 높고 낮음, 시작과 끝,

그리고

미추(美醜)라는 표시를 통해 다른 것과 구분됩니다.

그러나 바다의 세계에는 표시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상대적인 진리의 세계에 있는 파도는 솟아오를 때는

행복을 느끼고 부셔져 내릴 때는 슬픔을 느낍니다.


파도는 "나는 높은 파도다"

또는 "나는 낮은 파도다."라고 생각하고는

우월감 또는 열등감을 가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파도가 자신의 참된 본성,

즉 자기가 곧 바다라는 것을 알면,

모든 강박관념을 멈추게 될 것이고

파도는 생사를 초월하게 될 것입니다.


       [탁닛한 스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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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우주 안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봅니다.

자아(自我)가 원래부터 고유하게 존재한다는 잘못된 믿음에

그 뿌리를 둔 망상은 카르마(業)적 행동을 낳으며,

이는 윤회계(輪廻界) 안에서 계속 고통을 받도록 우리를 얽어맵니다.


자아가 독립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본능적인 태도는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게 되며,

이것은 욕망과 미움을 불러 일으켜

쉽사리 부정적인 행동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아가 대체 어디에 있는지 찾고자 하면,

그것은 우리를 현혹시키면서 숨어 버립니다.


부처님은 그러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독립적인 자아가 있다는 우리의 믿음이

바로 모든 괴로움(苦)의 뿌리라고 가르칩니다.


즉, 다스려지지 않은 마음 때문에 일어난 망상(妄想)과

카르마(業)적인 행동으로 생긴 고(苦)의 근원은

바로 무지(無智)에서 비롯된 것이며,

현상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자신을 하나의 실재하는 자아로 잘못 이해해서 생기는 것 인만큼,

 

우리 마음속에 본래부터

자아는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지혜를 불러 일으킴으로써

무지를 제거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깊은 명상과 집중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어야 하고[定]

둘째로,

순수한 도덕적 계율을 지켜 부정적인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며[戒]

셋째로,

자아가 없음을 깨닫는 수행,

 

즉 지혜를 닦는 수행[慧]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부처님은 가르치십니다.


              [달라이라마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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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갖 유위(有爲)의 법은

          꿈같고, 그림자 같고

          꼭두각시 같고 ,거품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이러한 것임을 관찰하여라.

        一切 有爲法이 如夢幻泡影하며

        如露亦如電이니 應作如是觀이니라.

                  [금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