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달력 이야기와 초하루

難勝 2010. 8. 9. 06:14

 

 

달력 이야기와 초하루

 

옛날 그리스에는 묘한 직업이 있었다.

돈을 빌려간 사람에게 이자를 갚으라고 매달 통보하는 직업이다. 이들은 돈 빌려간 사람을 매달 불러서 이자를 독촉했다는 것이다.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다.

이 '부른다'는 그리스어 'Kalends'가 로마시대에 들어와서는 매달 초하루를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자를 매달 초하루에 내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빚이 많은 사람들은 매달 초하루만 되면 끔찍했을 것이다.


이 'Kalends'라는 그리스 말에서 'Kalendarium' 또는 'Calendarium'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돈을 빌려준 장부를 의미하는 단어다. 말하자면 '대출 장부'라는 뜻이다.

이 단어가 영국으로 넘어가서 'Calendar', '달력'이라는 뜻으로 변했다.

'시간은 돈'이라며 오로지 돈만 따지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달력=돈'이었다.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은 달력 보기가 무서웠을 것이다.


우리 달력도 돈과 무관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해가 바뀔 때가 되면 관상감에서 이듬해의 달력을 만들어 대궐에 바쳤다. 그러면 임금이 신하들에게 이 달력을 적당하게 나눠줬다. 달력에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임금의 옥새를 찍었다.


신하들은 이 달력을 다시 친척과 친지 등에게 나눠줬다. 그렇지만 달력은 귀했다. 얻지 못하는 집이 많았다. 그런 집에서는 종이를 구해, 달력을 직접 베껴서 걸어놓기도 했다.

약삭빠른 사람에게는 이럴 때가 바로 '기회'였다. 달력을 미리 확보해놓았다가 대감이나, 사대부 집의 유능해 보이는 사람에게 슬그머니 선물하는 것이다. 귀한 달력이라 무척 반가운 선물이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이유도 없이 달력을 바칠 리는 없었다. 달력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잘 풀리면 혹시 무엇인가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선물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반대급부'를 노리는 '뇌물 달력(?)'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희망대로만 풀릴 수는 없었다. 유능한 사람을 '찍었지만' 과거급제도 못하고, 출세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아까운 달력만 날리고 마는 것이다.

달력을 날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뻔했다. 뒤돌아 앉아서 '달력 도둑(曆賊)'이라며 험담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되돌려주지 못하는 사람은 뒤통수가 가려웠을 것이다.


명나라 때 일이다. 어떤 환관이 죄를 짓고 자살해버렸다. 황제가 환관의 집을 뒤져보라고 지시했다. 가택수색을 명령한 것이다. 수색한 결과, 장부 한 권이 발견되었다. 장부에는 '황미(黃米) 몇 백 석, 백미(白米) 몇 천 석' 등의 암호(?)가 적혀 있었다.

장부를 받아본 황제가 "도대체 황미, 백미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물었다. 신하들이 수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황미는 금(金), 백미는 은(銀)을 말하는 것입니다." 황제가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달력과 초하루의 유래가 상쾌하지만은 않은 탓일까.

사찰에서의 초하루 기도가 업(業)을 씻는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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