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결혼은 성불(成佛)의 장애물인가(펌)

難勝 2010. 11. 1. 04:44

 

 

결혼은 성불(成佛)의 장애물인가

 

인간 사회가 아주 없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결혼이라는 관습 때문이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된 생활이다. 이것은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존립하는 기본적인 조건에 비해 훨씬 뒤에 오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결혼은 인간의 본래 모습, 본래 자유를 찾는 일에 장애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에게는 장애물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기도 하는 것일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결혼을 하여 자식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는 한 여인의 남편이었고,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부모의 자식이었다. 이런 '관계'를 일단 끊고 세속에서의 굴레를 떠나 치열한 자기 탐험, 자기 극복의 고행길로 떠났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수행자에게 육체적.생체적 관습들은 큰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장애물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일상 생활의 되풀이 속에 침잠해 있는 동안에는 참된 자기, 본래의 자기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수행자들이 그토록 큰 고통을 부릅쓰고 인연지어진 모든 것을 끊고 산사에 파묻히거나 토굴의 어둠 속으로 찾아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미 했더라도 인연을 끊고 떠난 비구들이 반드시 큰 깨달음에 이른 것은 아니며,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 즉 가족이 없다는 홀가분한 상태가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 주기는커녕 더 많은 업을 짓고 평생 동안 욕망에 끄달리는 경우가 더러 있다. 더러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비구들이 인연 아닌 인연으로 속세인들과 마찬가지의 고통 속에 빠져 있는 경우를 본다.

 

사정이 그렇다면 그들은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것이 없고, 더 많은 죄를 짓게 된다면 결혼을 하는 것만 못한 일이다. 이것을 허용한다면 조계종단은 지난날 한때 그랬던 것처럼 비구.대처의 통합종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이미 여러 번 계획상으로 시도해 보았던 것처럼 비구, 즉 수행승과 대처, 즉 포교승으로 승단을 이원화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법을 모색하든지 승려의 세계는 투명해야 한다. 청정비구를 자처하는 승려 중 상당수가 은처를 거느리고 있고, 또 이 같은 사정을 세상 사람들이나 신도들이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있는 일을 없는 척 덮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옳지 못하다. 승려, 성직자라는 이름의 세계가 이처럼 불투명하고 거짓투성이어서 도대체 누구의 스승이 되며 누구를 제도하겠는가. 투명해야 한다. 거울 속 같이 투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불교는 이 점에서 매우 어둡다.

 

나는 사춘기 시절에 입산하여 4년이라는 긴 세월을 절집 머슴살이로 고단한 일을 했다. 그 후 사미가 되었고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고 사교과를 이수한 후에 대학에 들어가 동경에서 3년을 공부했다. 그 동안 마음이나 몸이 모두 끓어오르는 청년기를 보냈다. 마음속에 욕구가 솟아나지 않을 리 없었다. 때로는 자제하기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했던 수행자의 길을 포기할 만큼, 삶의 근본 진리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꺾을 만큼 욕망이 나를 사로잡은 일은 없었다. 사로잡힐 위기에 처했을 때도 나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여기까지 승려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

 

한동안 모친의 성화가 있었다.

"다른 스님들은 모두 장가 가서 애들 낳고 잘만 사는데 너만 굳이 독신승으로 살아갈 필요가 어디 있느냐. 다른 스님들이 결혼해서 승려 생활을 잘만 하는 것을 보면 부처님도 장가 가는 것을 말리지 않는 게 틀림없다. 그러니 결혼해라."

 

일제시대의 일이었다. 천지에 대처승만 보이던 시절이었다. 결혼한 스님들이 주지도 하고 절집 살림도 맡으며 유지 대접도 받아 오히려 잘살 때였다. 비구승은 거지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인데 무슨 까닭으로 굳이 비구로 남는거냐, 모친의 이야기는 그런 뜻이었다. 실제로 색시감을 물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저는 이미 불도와 결혼했습니다. 도를 이루기 위해 발심했으니 그게 바로 평생 함께 살아갈 약속이지요. 그러니 다시는 저를 위해 수고하지 마십시오."

하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 후 결혼하지 않아 불편했던 일은 없었다. 마음속의 유혹을 견디기 어려워 고통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피나는 수행의 결과가 이런 육근의 바다로부터 나를 평안의 피안으로 보내 주고 지켜준 것이다. 그러나 스님이 된 후에도 평생 그 고통을 뿌리치지 못하고 살고 잇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인도를 여행하는 중에 이상한 풍습을 보고 들었다. 인도의 어느 지방에서는 남녀의 생식기를 숭배하는 신앙이 있어 사원에 생식기를 만들어 놓거나 남녀 합궁한 모습을 그림 또는 조각으로 비치하여 숭배하는 풍습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였으나 들어 보니 그들에게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었고 뜻도 있었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 생식기라는 것이 그들 생각이었다. 생명을 이어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고, 생명을 창조하는 것 또한 그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몸 중에서 그 어느 것보다 고귀하다는 것이었다. 생식기만 고귀한 것이 아니라 남녀의 합궁 또한 신성한 의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참말이지 그냥 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내외간에 합궁하는 날을 미리 정해 놓고 자손들의 축하를 받으며 의식처럼 행한다고 했다. 돌로 만든 조각들이 워낙 그 의식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그 이야기의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풍습이나 사고에 관해 웃을 필요가 없었다. 그것을 자꾸 감추고 숨기려 하니 더럽고 죄스럽고, 온갖 금기가 생겨나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원래 죄악이며 추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식기라는 것도 코나 손가락처럼 그렇게 무심하게 보면 그만 아니겠는가. 자이나교를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덜렁 거리며 내놓고 다니는데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장한 일이다. 그 사람들은 그것을 숨기고 금기시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죄는 짓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것을 숨기고 죄악시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실제 살아가는 모습은 어떠한가. 생각해 보면 그 대답은 자명해진다.

 

내가 보니 결혼하여 속세에 살지만 신심과 선정(禪定)이 깊어, 수십 년 선방을 들락거리며 수행해 온 선승들보다 더 부처님 세계에 가까이 간 사람들이 많았다. 반대로 머리를 깎고 스님 흉내를 내며 입만 열었다 하면 불법이요, 선문답인데도 그 마음 바탕에 있는 것은 필부의 그것보다 못한 스님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면 결혼 그 자체가 성불의 장애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결혼이 성불의 결정적인 장애물이라면 일반 신도들은 누구도 성불하지 못할 것이고, 그걸 알면서 '당신들도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면 거짓이며 사기일 것이다.

 

불교에서는 "살생하지 말라, 육식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몽고 사람들은 육식이 주식이다. 그들에게 불법을 가르쳐도 육식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다. 지방에 따라 불교 신도들에게도 육식이 허용되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무유정법(無有定法)이 곧 해탈법이다.

 

불법이 본래 이런 것이다. 하고 못을 박으면 그것은 이미 불법이 아니다. 불법은 펄펄 살아서 생동하며 흘러가는 것이지 웅덩이 물처럼 고여 틀에 박힌 것은 아니다. 못을 박아 놓으면 그 법은 죽은 법이다. 검다, 희다, 길다, 짧다고 정할 수 없는 것이 부처님의 법이다. 진리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 나라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것을 인도의 어느 지방 사람들은 아무 부끄러움 없이 오히려 신성시하는 것을 본다. 오히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마음속의 죄악.허위.거짓, 이런 것을 그 부끄러운 부분과 함께 깊이 감추고 있어 더 괴로운 것이 아닐까. 자이나교의 신도들이 신체의 어느 부분을 투명하게 햇빛 속에 내놓고 살듯이 우리의 스님들도 감추어 놓은 허위의 장막을 젖히고 투명하게 살았으면 한다. 깨달음이니, 중생제도니 하는 소리들은 그 다음에 할 소리다.

 

'道가 본시 없는데 내가 무엇을 깨쳤겠나' ㅡ 이청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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