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거문고 이야기와 풍입송(風入松)

難勝 2010. 11. 9. 08:05

 

 

조선시대 선비와 거문고 이야기

 

거문고의 '검다'는 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국문학자인 양주동 박사는 '검다'는 말은 감(玄), 墨(검)이고 이는 우리 나라 옛 말에서 신(神)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면 신 또는 하늘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천자문>의 첫 구절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도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고 한다. 하늘의 색깔이 검다는 것은 밤하늘을 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따라서 '검' 이라는 말은 하늘을 나타내는 말이다.

 

선비 사회에서 거문고를 귀중하게 여기다 보니 거문고에 대한 일화나 거문고를 남달리 사랑한 선비의 이야기도 많이 전해진다. 이 가운데 <악학궤범>을 쓴 성현의 수필집인 <용재총화>에 실린 이야기 한 토막.

권 아무개라는 선비가 자기가 음악을 배운 이야기를 하였다.

"어렸을때 밤중에 친구 집으로 가는데 마침 길가에 있는 집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창 밖에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남자와 여자가 이불을 끼고 앉아 있었다. 남자는 나이가 젊고 준수하게 생겼으며 여자는 아름답기가 비길 데 없었다. 여자가 일어나 시렁 위에서 작은 광주리를 가져 왔다. 그리고 광주리를 열더니 육포와 밤을 벌여 놓고는 은그릇에 술을 데워서 각각 서너 잔씩 마셨다. 남자가 거문고를 당겨 줄을 고르니 여자가 '풍입송'을 곡을 타세요' 하고 청하였다. 남자가 줄을 고르고 천천히 타니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가 구슬을 굴리는 듯하였다. 나는 아름다운 광경에 부러운 생각이 그칠 줄 몰랐다. 세상에 어찌 이러한 사람이 있겠는가? 그들은 신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음악을 배웠는데 풍입송부터 먼저 배우고 여러 곡을 배웠다. 그리고는 첩을 얻어서 늙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다.

 

신선 같던 남녀가 연주하고 노래하던 '풍입송'은 어떤 곡일까.

고려속요 가운데 하나였던 풍입송은 사실 왕덕을 송축하는 내용의 중국계 음악이었다. 조선 시대에 와서 궁중 연희 음악으로 연주되기도 했는데, 선비들이 즐기는 격조 높은 예술 음악 가운데 하나였다. 선비들이 이 곡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여러 문헌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선조 때의 문인 송강 정철(1536~93년)은 친구 김성원을 위하여 성산별곡을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거문고를 노래하였다.

 

거믄고 시옭 언저 風入松(풍입송) 이야고야

손인동 主人(주인)인동 다니져 버려셰라

長空(장공)의 나난 鶴(학)이 이 골의 眞仙(진선)이라

 

(거문고에 시를 얹으니 풍입송이로구나

누가 손님인지 주인인지 다 잊어 버릴 지경이로다

이 골짜기에서 하늘 높이 나는 학처럼 신선이 되었구나)

 

농현, 마음을 담은 연주법

 

거문고는 줄을 밀고 당겨서 이런 기교를 내는데, 아쟁이나 가야금은 줄을 왼손으로 누르거나 들어서, 피리는 서를 깊이 또는 얕게 물거나, 혀 또는 목젖으로 조절한다. 그리고 대금은 악기 자체를 엎었다 젖혔다 하거나 공기를 강하게 혹은 약하게 불어넣어서 표현한다.

 

이러한 시김새는 손끝의 기교라기보다는 마음속에 담긴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다. 같은 선생을 사사해도 음악이 전혀 다르게 나오는 것은 바로 연주자 마음마다 다르게 자리 잡은 이 시김새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거문고 음악도 역시 정신적인 마음가짐이 음악에 나타난다고 생각하여 기교 연습보다 연주자의 정신적인 수양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선비가 거문고를 각별히 사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바쁜 세상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속에 기계처럼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지금의 우리가 정갈한 거문고 음악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지금보다는 좀더 바르고 살 만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