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이야기
달이 변하는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일생과 같다.
초승달로 태어나 상현달로 자라서
보름달 청년 되서 하현달 어른으로
그믐달 노인 되어서 가는 게 인생이네.
나는 이 만월(滿月)로 찾아오는 추석의 달을 앞으로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하늘에 달려 있어 ‘달’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지만, 달을 노래하다가 간 우리 조상들의 작품을 몇 가지 살펴본다.
우선은 정읍에서 행상 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걱정하며 그의 아내가 지은, 현전하는 백제 유일의 노래 '정읍사(井邑詞)'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달님이시어 높이 돋으시어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멀리좀 비추어 주십시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시장에 가 계신가요
어긔야 진 데를 드디롤세라 어긔야 험한 곳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어느이다 놓고시라 어느 곳에서나 짐을 놓고 계십시오
어긔야 내 가논 데 점그랄세라 어긔야 내가 가는 데 저물까 두려워라
달을 노래한 신라의 향가에는 ‘원왕생가(願往生歌)’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가 있는데 아래 글은 신라 충렬왕 때 승려 충담사가 화랑인 기파랑의 생전의 모습을 추모하는 향가다.
열치매 열어 젖히매
나토얀 다리 나타난 달이
핸구름 조초 떠가난 안디하/. 흰구름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닌가?
새파란 나리여해 새파란 냇물에
기랑(耆郞)애 즈시 이슈라. 기파랑의 모습이 있구나.
일로 나리ㅅ 재벽해 이로부터 냇물의 조약돌에
낭(郎)애 디니다샤온 기파랑이 지니시던
마사매 갓할 좇누아져./ 마음의 자취를 따라가고 싶어라
아으 잣ㅅ가지 노파 아아, 잣나무 가지처럼 드높아
서리 몯누올 화반(花判)이여/ 서리에도 굽히지 않을 화랑의 장(長)이여
咽嗚爾處米
露曉邪隱月羅理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
沙是八陵隱汀理也中
耆郞矣貌史是史藪邪
逸烏川理叱積惡尸
郞也持以支如賜烏隱
心未際叱 兮逐內良齊
阿耶 栢史叱枝次高支乎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위에서 보는 것은 한문으로 썼지만 한문이 아니고 향가를 쓴 향찰문자이다. 향찰이란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어 우리말 순서대로 쓴 우리나라(신라) 고유의 문자다.
이조 때 달을 노래한 것으로는 노계 박인로의 시조를 으뜸으로 친다.
기두(磯頭)에 누었다가 깨달으니 달이 밝다
청려장(靑藜仗) 비껴 짚고 옥교를 건너오니
옥교에 맑은 소리를 자는 새만 아놋다.
*기두:여울 돌머리
*명아주대로 만든 지팡이
우리의 민요시인 김소월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도 휘영청 교교히 밝은 달 아래서의 그리움을 토해 낸 시였다.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볼 줄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서름인 줄을
예전엔 미쳐 몰랐어요.
4.4조 민요는 우리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노던 달아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옛날 사람들이 달에게 빌던 소원이 양친 부모를 위해 집을 짓은 것이었는데, 오늘날 남진의 노래에 와서는 사뭇 그 뜻이 달라진다. 그래서 하나만 나서 잘 키우자는 세대가 온 것인가.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평생 살고 싶네
어렸을 때 초등학교 교과서의 달 노래 또한 우리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돌려 주게 한다.
달, 달 무슨 달, 쟁반 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아이들은 유희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노래나 하며 달을 바라보지 않고 달에 직접 가서 노닐기도 하는 시대다.
1969년 7월 21일 미국의 우주비행사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에서 내려 인류 사상 최초로 달에 그 첫발을 내디디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첫 걸음이다.”
해와 달의 이야기
먼 옛날. 어머니가 고개 넘어 어떤 부자 집에 방아 품을 팔러 갔다가 묵을 얻어 가지고 밤에 집으로 돌아왔다. 도중 산중에서 호랑이를 만났다.
『묵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기에 한 개를 주었다.
조금 있다가 또 나와서 여전한 요구를 하였다. 그것이 여러 차례 반복됨을 따라 가졌던 묵은 다 없어졌다.
이번에는,
『옷 벗어 주면 안 잡아먹지.』하므로 치마를 주었다.
이어서 저고리, 바지, 속적삼, 속옷까지 다 주고 나신(裸身)이 되었으므로, 가랑잎으로 음부를 가리고 갔다.
호랑이는 계속하여 나왔다. 팔과 다리를 요구하고 최후에는 몸뚱이까지를 요구하였으므로, 어머니는 마침내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호랑이는 어머니의 옷을 입고 어머니의 집으로 갔다. 집에는 세 아이가 고픈 배를 쥐고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왔다. 문 좀 열어라.』
하므로 아이들은 문을 열고자 하였으나, 말소리가 다르므로 손을 보자고 하였다.
문틈으로 내민 손을 만져보고 아이들은
『어머니 손이 왜 이리 터실, 터실 하오?』하니 호랑이는
『흙일을 하였으므로.』 그렇다고 답하였다. 아이들은 문을 열어 주었다.
『묵을 데워 가지고 올께. 조금만 있거라.』하고 호랑이는 젖먹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에서 뽀도독 뽀도독하는 음식 깨무는 소리가 나므로 무엇을 먹느냐고 아이들은 물었다. 호랑이는 콩을 먹는다고 하였다.
문틈으로 내어다보니, 호랑이는 아기를 먹고 최후에 그 손가락을 먹는 중이었다. 방에 있는 두 아이는 대경하여 뒷문으로 달아나서 뜰 앞에 있는 고목 위에 올라갔다. 호랑이는 아이들을 찾다, 찾다 고목 밑에 있는 우물 속을 내려다보았다.
물 속에 있는 아이들의 그림자를 보고 그것이 정말 아이인가 하여
『요놈들을 낚시로 낚아낼까 조리로 건져낼까.』하므로, 나무 위에 있던 둘째 아이(계집애)가 하하 웃었다.
호랑이는 아이들을 쳐다보고,
『너희들은 어떻게 올라갔니?』하고 물었다.
『뒷집에 가서 참기름을 얻어다 바르고 올라왔다.』 하였다.
호랑이는 참기름을 얻어다 발랐으나 미끄러워서 오르지 못하였다. 또 어떻게 올라갔느냐고 묻자.
『뒷집에 가서 들기름을 얻어 바르고 올라왔다.』
고 하였다. 호랑이는 그래도 오르지 못하였다. 세 번째 호랑이가 물었을 때 계집아이는
『도끼로 찍고 올라왔지요.』하였다. 그러자, 호랑이는 도끼로 나무를 찍어 발 버팀을 만들면서 올라왔다.
아이들은 급한 마음에
『하느님, 하느님, 우리를 살리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 보내주시고, 죽이시려거든 썩은 줄을 내려 주시오.』하였다.
새 줄이 내려왔다. 아이 남매는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호랑이는 제가 악한 줄 알고 하느님을 속이고자
『하느님 저를 살리려거든 썩은 줄을 내려 주시고 죽이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 주시오.』하였다. 호랑이의 원대로 썩은 줄이 내려왔다. 호랑이는 그것을 붙들고 올라가다가 줄이 끊어져 떨어지면서 수수대기에 홍문을 찔려 죽었다.
그 피가 수숫대에 산채 되었으므로 지금도 수숫대는 붉은 점이 있다고 한다.
하느님은 두 남매를 불러다 놓고,
『여기는 놀고 먹지는 못하는 곳이다. 오라비는 해가 되고 누이는 달이 되거라.』하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누이는
『밤에 혼자 다니려니 무서워서 안 되겠습니다. 나하고 바꿉시다.』하여 오라비는 그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누이는 낮에 다니려하니 여러 사람들이 쳐다보아 부끄러우므로 강렬한 광선을 발하여 보는 사람의 눈을 부시게 하였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는 태양을 바로 쳐다볼 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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