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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반곡동 관설동(盤谷,觀雪洞)

難勝 2011. 3. 23. 21:18

반곡,관설동(盤谷,觀雪洞)

 

원주시조례 제 340호에 의거 과소동 통폐합으로 인하여 1999. 1. 1 13개통 55개 반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반곡관설동이 생성되었으며, 전형적인 농업위주의 집단촌과 도시 형태의 마을단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관지구의 택지개발로 인하여 인구의 급증 및 발전이 예상되고 있다.
 

인구 : 남자 6,462 여자 6,342계 : 12,804  세대수 : 4,623  <2005년>기준
 

[위치]
반곡동은 원주시청에서 동남향으로 4.2km 떨어져 있으며 원주시 개운동, 행구동, 관설동과 접해있고 치악산을 경계로 횡성군 안흥면 부곡리와 인접하여 있다.

[유래]
원래 원주군 부흥사면(富興寺面)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소반처럼 생기었다 하여 반곡, 또는 이리(二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유만동(柳滿洞), 월운정(月雲亭), 후동(後洞), 삼보동(三寶洞), 한가터, 방묘동을 병합하여 반곡리(盤谷里)라 하여 판부면(板富面)에 편입되어 있다가 1973년 원주시로 편입되었다.

[연혁]
반곡동은 1895년 충주부 원주군 반곡리로 설치되어 1896년 8월 4일 강원도 원주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이후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거 반곡 1, 2, 3, 4리가 원주시로 편입되어 반곡동을 설치하였고 1982년 통반 조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이사항]
치악산의 서편을 접경으로 영랑천이 흘러내려 원주천을 이루는 지역에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으며 대부분의 농가는 인삼, 버섯 등의 특용작물과 시설채소등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고 있어서 향후 도시근교 농업의 발전 유망지이다.
또한 구38사단과 종축장의 수십만평 부지가 이 지역발전의 큰 장애요인으로 남아 있는데 앞으로 이전이 예상되어 이 지역에 각급 학교 및 관공서, 주택단지가 유치될 경우 비약적인 개발이 예상되어 크게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명]
▲가래실산 [산]
[위치] 서리실 동북쪽에 위치하는 높이 200m의 산을 말한다.
[유래] 갈라진 골짜기에 있는 산이라서 가래실산이라고 부른다.
[풀이] 가래+실+산>가래실산이다. '가래'는 갈래를 뜻하하고 '실'은 골짜기이다.

▲금두산성(金頭山城) [성]
[위치] 향로봉을 중심으로 행구동 보문사 앞줄기와 반곡동, 판부면 금대리 금두고원에 걸쳐 있는 옛 성을 말한다.
[유래] 이 성의 명칭에는 금대산성(金臺山城), 금두산성, 금후산성(金後山城) 등으로 불리고 있으나 금두산성으로 부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향로봉 남서쪽 아래에는 치악평전이라고 부르는 금두고원이 있고 부곡리 쪽에는 금두골이라는 지명이 있기 때문이다. 해미산성과 기록에서 혼동되어 있으나 이 성을 금대리 뒤에 있다고 하여 금후산성, 금두산성, 또는 금대산성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나 '후'는 '뒤'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내용] 이 성의 축조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축조방식이나 유물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 이전으로 추측하고 있다. 석축이 남아 있으나 대부분은 붕괴되어 있다. 원주시 반곡동 쪽이 잘 내려다 보이는 위치이며 반곡동 한가터 쪽에서 이 성을 출입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에는 물을 막아 수공작전을 썼다고도 하나 지대가 높아 물이 귀하므로 믿을 수 없다. 남쪽으로는 영원산성 쪽이 잘 보인다.

▲뒷골 [마을]
[위치] 삼보골 북쪽, 반곡역 앞에 있는 마을이다.
후동이라고도 한다.
[유래] 반곡동의 먼 뒤쪽에 위치하므로 뒷골이라 한다.

▲반곡(盤谷) [마을]
[위치] 지금의 반곡동 전체지역을 말한다.
반곡동이라고도 한다.
[유래] 지역이 소반처럼 생겼다하여 반곡이라 부른다고 한다.

▲배울 [마을]
[위치] 영냉이 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배마을이라고도 한다.
[유래] 옛날에 거기까지 배가 들어왔기 때문에 배울이라고 한다.

▲뱅이두둑 [마을]
[위치] 반곡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뱅이두둑이라고도 한다.
[유래] 산을 갈아 골을 터서 두두룩한 밭이 둥그렇게 된 둔덕에 있다고 하여 불리워 지게 되었다고 한다. 화전민들이 살던 곳이다.

▲버들만이 [마을]
[위치] 반곡 서남쪽 원주천 상류변에 있는 마을이다. 유만동이라고도 한다.
[유래]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버들만이라 불리게 되었다.

▲봉대(鳳垈) [마을] 
[위치] 오리현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봉대초등학교가 있다.
[유래1] 봉황이 내려앉은 형상이라서 봉대라고 한다.
[유래2] 지형이 봉황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봉두라고도 한다.

▲삼보골 [마을]
[위치] 버들만이 동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유래] 세 가지 보물(좋은 산, 좋은 물, 좋은 인심)이 있다 하여 삼보골이라고 한다.

▲서리실 [마을]
[위치] 반곡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 배나무와 오얏이 많아 瑞李實이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풀이] '서리'는 '사이, 가운데'를 뜻하는 옛말이다. 뒷골과 입춘내 사이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일 것으로 추정된다.

▲월은정(月隱亭) [정자]
[위치] 반곡역 서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자를 말한다.
[유래] 원주군읍지와 관동지에 주의 동쪽 7리 단구천가에 있으며 터만 남아있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판서를 지낸 남영 홍중효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원주에 돌아와서 월은이란 기생에게 이 정자를 지어주고 이름도 월은정이라고 했다 한다. 홍판서와 월은이 죽은 뒤 후손들이 그 집을 헐어 재목으로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단구동 홍유성씨의 집 행랑채라고 한다.

▲입춘내(立春內) [마을]
[위치] 동사무소 서쪽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유래] 지형이 아주 따뜻한 곳이어서 가장 먼저 봄이 찾아오는 곳이라 한다.

▲한가터 [터]
[위치] 봉대 동남쪽 윗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일대(一垈)라고도 한다.
[유래] 예전에 한씨의 집성촌이 형성되고 큰 부자가 살았다고 한다. 6.25 전에는 80여호가 살았다고 하며 곡식이 잘 되어서 '작은 북간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4가구가 살고 있다.
이전글 : 봉산동(鳳山洞) (지적과)

 

[위치]
관설동은 원주시청에서 동남방으로 5.6㎞ 떨어져 있으며 원주-제천간 5번 국도의 관문이고, 원주시 단구동, 반곡동, 무실동과 판부면 금대리, 신촌리와 연접해 있다.


[유래]
[유래1]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 학자인 허후(許厚)의 호를 따서 관설이라 하였다 한다. 허후의 호는 솬설(觀雪)이고 그는 남인의 허목, 허미수선생과 육촌간이라 한다. 그의 학문과 도덕을 흠모하여 문막에 살면서 강원감영에 근무하던 효자 황무진이 수시로 문안을 드리며 학문에 대한 토론을 했으며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후일 허관설이 살던 곳이라 하여 관설의 글자를 따와서 관설동이라 했다고 한다.
[유래2]
관설의 원래 이름은 '벌논' 즉, '벌판의 논'이었다. 벌+논>벌논>벌눈>볼눈으로 변천되었으며 따라서 원래는 들의 이름이었다가 자연부락 이름이 되었고 다시 동 이름이 되었다. 허후가 이 지명 '볼눈'을 호로 삼아 한자어로 관설(觀雪)이라고 하였고 이것이 관설동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안벌눈, 밧벌눈이 있어 유래를 명확히 밝혀주고 있다.


[연혁]
원래 원주군 부흥사면의 지역으로서, 벌논>벌눈이라 하였다. 인조 때 현감 허후가 살면서 그 호를 벌눈의 뜻을 따서 관설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리와 판제면의 본이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관설리라 하여 판부면에 편입되었다. 일제 때 동네 전역을 관설리라 하였고 관설의 발상지인 2통은 바깥 쪽에 위치한다 하여 外觀雪(밖볼눈)이라 하였다. 또 2통 6반 지역은 안쪽에 위치한다 하여 內觀雪(안볼눈)이라 하였다가 1973년도 행정구역개편으로 시에 편입되면서 관설동이라 하였다.


[특이사항]
치악산과 백운산의 지류가 모여 형성된 원주천의 상류에 위치한 관설동은 경남 마산에서 평안북도 중강진으로 이어지는 5번 국도와 중앙선철도가 통과하고 대구에서 춘천을 연결하는 중앙고속도로가 건설중인 원주시의 남쪽 관문이다. 4통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농경지로서 쌀농사와 채소, 과수를 주로 경작하여 생활하고 있으며 축산업도 한 때 성행하였으나 원주천 오염의 방지대책 때문에 최근 점차 줄어들고 있다. 치악산의 전설을 살려 꿩 5만여수를 집단으로 사육하여 분양, 판매하고 있다.
또한 관설동 나옹정, 진등 마을 일대 20만평이 택지로 개발되고 있어서 새로운 주택지로 부각되고 있다.


[지명]
▲갈촌(葛村) [마을]
[위치] 대평교 서쪽에 있는 마을로 5통 1반 지역을 말한다.
[유래] 야산에 칡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 葛(칡갈), 村(마을)으로 부르게 되었다.
[특이사항] 풍수지리설에 갈화낙지(葛花落地) 토지에 명당이 있다는 설이 있다.

▲곳집거리들 [들]
[위치] 초당거리산 남쪽에 인접한 들을 말한다.
[유래] 부근에 곳집이 있어서 곳집거리들이라고 한다.

▲나옹정(懶翁亭) [정자]
[위치] 삼흥아프트 남쪽, 한국통신원주전화건설국 서쪽에 있던 정자를 말한다.
[유래] 동네입구 조그만한 바위동산 앞으로 내가 흘렀는데 그 산 위에 정자가 있어 그곳에서 고려시대 나옹대사가 낚시질을 했다고 한다. 나옹대사는 고기가 물리면 다시 물에 놓아주었다고 하는데 후일 이 곳을 나옹대사의 이름을 따서 懶翁亭이라 부르게 되었다.

▲당둔지 [마을]
[위치] 관설초등학교와 관설교 사이 동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당뚠지라고도 한다.
[유래] 당+둔+지>당둔지인데 당이 있던 마을이라서 당둔지라 한다.

▲대평교(大平橋) [다리]
[위치] 5번 국도와 원주농고 쪽을 잇는 다리이다. 대평다리라고도 한다.
[유래] 원래는 태평교(太平橋)로서 옛날에 전투를 하다가 여기서 太平하게 되었다고 하여 太平橋라 하였다고 한다. 근래에 와서 대평교(大平橋)로 개칭되었다.
[내용] 길이 20.5m, 너비 7.2.m로 1983년에 가설하였다.

▲도래구덩이고개 [고개]
[위치] 귀론 소류지에서 판부면 내남송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유래] 도라지가 많이 난다하여 유래하였다고 한다.

▲동작골 [골]
[위치] 대평소류지 동쪽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작골이라 한다.

▲메기바우 [바위]
[위치] 대평교 앞 개울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바위 밑에 메기가 많이 있어서 메기바우라 한다.

▲밧벌눈 [마을]
[위치] 벌눈 바깥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외관설이라고도 한다.
[유래] 바깥에 있는 벌논>벌눈이라고 하여 밖벌눈>밧벌눈이 되었다.

▲백배미 [골]
[위치] 밧벌눈에 있는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논다랭이가 약 백 개 정도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풀이] 바깥을 뜻하는 '밖'과 논배미를 뜻하는 '배미'가 결합하여 밖배미>백배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보들 [들]
[위치] 관설초등학교에서 봉산천 동쪽에 인접한 들을 말한다.
[유래] 보가 있는 곳에 있는 들이라 보들이라고 한다.

▲봉우재 [산]
[위치] 6통 지역으로 예전 군부대가 있던 자리의 동편 산을 말한다.
[유래] 조선시대 봉화로 신호를 하던 봉우리라 하여 봉우재라 한다. 지금은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봉천(鳳川) [내]
[위치] 금대리 가리파재에서 시작하여 금대리와 관설동, 개운동, 봉산동을 거쳐 흐르는 내를 말한다. 봉산천이라고도 한다.
[유래] 봉천은 봉산동 봉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내용] 대체로 모래기천과 화천이 만나는 봉산동부터는 원주천이라고 한다.

▲산밑말 [마을]
[위치] 대평소류지 동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유래] 산밑에 있다하여 산밑말이라 한다.

▲샘들 [들] → 참산뜬지
[위치] 신촌에서 동쪽의 안쪽 지역에 있는 들을 말한다. 참산뜬지라고도 한다.
[유래] 큰 샘이 있는 들이라서 샘들이라고 부른다.

▲섬바우 [바위]
[위치] 관설동 시내버스 종점에서 동쪽에 있다.
[유래] 서 있는 큰 바위라서 선바우,섬바우 한다.

▲섭성터 [터]
[위치] 성안이 마을에 있는 성터로 성터, 신성터라고도 한다. 지금의 해미산성을 말한다. 지금도 성이 뚜렷이 남아 있다.

▲섭재 [마을]
[위치] 밧벌눈 동쪽 봉천 건너에 있는 마을로 섭성터 밑에 있다. 섭재는 다시 웃섭재와 아래섭재로 나뉘는데 원주천 동쪽 상류에 있는 웃섭재는 버덩섭재, 하류에 있는 아래섭재는 둔덕섭재라고 한다. 섭재를 섶재라고도 쓴다.
[유래] 섭재는 '섭+재'인데 섭은 나무가 많은 숲을 의미하는 섶, 숲의 옛말이고 '재'는 고개를 뜻한다. 한자로 薪(땔나무, 섶신)과 城(재성)을 합해서 薪城이라고 썼다.
[특이사항] 상·하 신성 위쪽에 섭성터, 곧 해미산성(海美山城)이 있다. 섭재에서 이 성을 섭성, 성터라고 부른다거나 성안이, 성내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해미산성은 원래 섭재에서 관할하거나 섭재가 중심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대리 일론 쪽보다는 섭재쪽이 교통이 편리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숯둔 [골]
[위치] 아래섭재 동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수둔이라고도 하며 길아재로 통하는 골짜기이다. 숯든이라고도 한다.
[유래] 예전에 숯을 구웠다고 하여 숯둔이라고 한다.
[풀이] '단, 돈, 둔'은 골짜기나 둔덕을 의미한다.

▲아래섭재 [마을]
[위치] 아래에 있는 섭재마을을 말한다. 밧벌눈 동쪽 건너이다. 하섭재, 하신성이라고도 한다.
[유래] 아래에 있다고 해서 아래섭재라고 한다.

▲안벌눈 [마을]
[위치] 벌눈 안쪽에 있는 마을로 관설교 안쪽에 있고 중앙고속도로가 지난다. 내관설이라고도 한다.
[유래] 안쪽에 있는 벌논>벌눈이라고 하여 안벌눈이 되었다.

▲여우바우 [바위]
[위치] 단구동 구루니에서 판부면 남송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유래] 여우굴이 있어서 여우바우라고 한다.

▲옻물 [샘]
[위치] 봉우재 아래에 있는 샘을 말한다. 약수터라고도 한다.
[유래] 옻 오른 사람이 이 물에 목을 축이면 낫는다 하여 옻물이라고 한다.

▲웃섭재 [마을]
[위치] 섭재 위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상섭재, 상신성이라고도 한다.
[유래] 섭재 위쪽 마을이라 해서 상섭재라 부른다.

▲품무골 [골]
[위치] 덕거리 북쪽 아래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불무골, 풀무골을 땅이름으로 쓰는 곳은 대장간이 있었거나 쇠가 나는 곳에 많다. 풀무골>품무골로 변하였다.

▲학마을 [마을]
[위치] 안벌눈 동쪽 입구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유래] 학이 많이 살아서 학마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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