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시치미

難勝 2011. 3. 28. 19:24

 

시치미를 떼다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은 매 사냥에서 생겨난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에 이미 매 사냥을 하였다고 합니다.

고려 때 몽고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사냥매인 ‘해동청’을 공물로 바치게 하였다고 합니다. 고려에서는 공물로 바칠 매를 잡아 기르기 위하여 사냥매 사육 담당 부서인 ‘웅방’이라는 관청을 두었고, 이러한 까닭으로 매 사냥은 귀족들에게까지 매우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매 사냥은 주로 북쪽 지방에서 많이 하였는데, 사냥매의 주인을 ‘수알치’라고 합니다. ‘수알치’는 사냥매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자기 매의 꼬리 쪽에다 쇠뿔을 얇게 깎아 만든 이름표를 달았는데, 이 이름표를 평안북도 말로 ‘시치미’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인을 잃은 매를 잡으면 이 시치미를 떼어 버리고 슬쩍 가로채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처럼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된다고 하여 ‘시치미를 떼다’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사람들이 매사냥을 나섰어요.

우리 조상들은 야생의 매를 길들여 사냥에 이용하곤 했어요.

"앗, 꿩이다!"

그 순간, 날쌘 매 한 마리가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꿩을 향해 발톱을 내리꽂았어요.

꿩은 날카로운 매의 발톱에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어요.

 

매의 주인이 축 늘어진 꿩을 주우려 하자 얌체 같은 사람 하나가 불쑥 나섰어요.

"이건 내 매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이건 내 매라구!"

 

둘 사이에는 한동안 실랑이가 벌어졌어요. 매 주인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매들의 생김새가 비슷했기 때문에 남의 매를 탐내 자기 매라고 우겨도 뾰족히 할 말이 없었어요.

 

"그러지 말고 매와 꿩 중에서 하나씩 고르게. 그리고 앞으론 시치미를 꼭 달게나."

"시치미라구요?"

"그렇다네. 시치미란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매의 꽁지에 달아 놓은 이름표지. 그러면 이런 일로 아옹다옹 다툴 일이 없을 것 아닌가?"

 

그 날 노인 덕분에 매 주인은 매를 찾을 수 있었어요.

 

며칠이 지난 뒤, 마을사람들은 또다시 매사냥을 나왔어요.

물론 이번에는 쇠뿔로 얇게 만든 이름표를 매의 꽁지에 하나씩 붙들어 매고서 말이에요.

"시치미만 보면 누구 매인지 쉽게 알 수 있겠지? 이젠 싸울 일이 없겠구나!"

 

매의 주인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매를 쓰다듬었어요.

그러나 그날 역시 매 주인과 얌체 사이에는 또 싸움이 벌어졌어요.

"이 매는 내 거야!"

"시치미를 뗀다구 모를 줄 알고? 이건 내 매라구!"

 

매 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소리를 질렀어요. 이번에도 매를 탐낸 얌체가 매의 시치미를 떼고서 자기 매라고 우기고 나선 것이지요.

 

노인도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내저었어요.

 

우리 주변에도 얌체처럼 시치미를 떼는 뻔뻔스런 사람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을 속이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속여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남을 속이는 일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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