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 위봉선원
10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비구니 선원의 중흥을 이끌고 있는 위봉선원.
간혹 일하며 웃음꽃을 피우며 화두를 잡는데 따르는 긴장감을 푸는 독특한 선방이다.
절 공양은 저잣거리의 음식을 먹는 행위와는 같으나 태도는 아주 다르다. 공양할 때마다 수행자들이 마음속으로 외는 ‘공양발원문’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음식으로 이 몸을 길러 몸과 마음을 바로 하고 청정하게 살겠습니다.
수고한 모든 이들이 선정 삼매로 밥을 삼아 법의 즐거움이 가득하여지이다.
오관게(五觀偈)라 하여 절마다 해석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 기본 정신은 몸과 마음을 바로 하고 청정한 법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공양간 벽에 ‘공양발원문’이 걸린 탓인지 담백하고 정갈한 음식이어서 더 먹고 싶기도 하지만 식탐이 싹 가시고 만다.
저잣거리의 식당마다 '공양발원문'을 붙여 두면 지나치게 먹고 마셔대는 사람들의 숟가락과 젓가락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까. 그러나 매상에만 신경쓰는 업주들이 찬성할 리 없다.
공양을 마치고 나오니 위봉사 법중(法中) 주지스님이 종무소에서 기다리고 있다.
비구니 선객의 외호(外護)를 잘 한다고 소문난 바로 그 스님이다. 법중 스님의 선객 외호는 송담(松潭)스님과의 약속에서 비롯된다.
호남의 비구니 둥지 위봉사
"도봉산 원효사에서 살고 있을 때 송담 큰스님께 가르침을 부탁하자, 선객 외호를 잘 하라고 당부하시며 절을 찾아와 지도해 주셨습니다."
법중 스님은 3년을 원효사에서 보내고 다시 위봉사로 내려와 현재 입승 소임을 맡고 있는 선영(禪英)스님과 1년 뒤 합류한 설엽(雪葉)스님과 위봉선원(圍鳳禪院)을 이끌었다.
개설한 지 10년째인 위봉선원은 선방으로서의 역사는 짧지만 호남 비구니 선원의 중흥에 불을 댕겼으며, 일년 내내 안거를 받는 곳 중의 하나다.
"저희들은 특별 정진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평상심이 도다' 하는 선어(禪語)처럼 사철 동안 안거하고 있습니다."
위봉선원에 상주하는 큰스님은 없지만 해제 때는 조실로 계시는 송담 스님을 찾아가 지도를 받고, 정진 중에는 대중들이 전강(田岡), 송담 스님의 법문 테이프를 틀어놓고 수행 의지를 다진다. 입승 스님의 얘기다.
"비록 녹음 테이프이긴 하지만 선지식의 법문은 수행 분위기를 여일하게 이끌어 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위봉선원 30여 명의 대중이 즐겨 보는 법어집은 전강 큰스님의 '언하대오(言下大悟)'와 경허스님 이래 역대 선사들이 참고한 선 수행서 '몽산법어(夢山法語)'입니다."
'언하대오'에 나오는 전강 스님의 법문을 들어보자. 이른바 안수정등(岸樹井藤)이란 화두를 가지고 법문하는 내용이다.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코끼리가 쫓아와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다.
쫓기던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잡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이 입을 벌리고 있고, 우물 중턱에는 사방에 네 마리의 뱀이 혀를 날름거린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고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는데 두 팔은 빠지려 하고 흰쥐와 검은쥐가 나타나 등나무 넝쿨을 쏠고 있다.
그때 머리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에 붙은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입 속으로 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의 모습이다. 급박한 상황에 놓여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꿀 방울에 애착해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내려갈 수도 없는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생사해탈을 할 수 있는가.
선방은 긴장감이 돌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방이 화두만을 향해 질주하는 곳은 아니다. 그곳도 사람 사는 세상으로 웃음이 넘쳐나고 눈물이 있다.
위봉선원의 웃음보따리는 채소밭을 담당하는 도감 설엽 스님의 몫이다. 65세의 노장이지만 유머는 젊고 독보적이다.
60세 되던 해부터 관절이 나빠져 오토바이에 소쿠리 대신 자장면 배달원처럼 채소를 담은 철가방을 달고 경내 안팎을 붕붕 다니곤 했는데, 법당에서 법문이 있는 날이면 통행금지를 시킬 정도라고 한다.
또한 설엽스님은 모자를 스무 개쯤 가지고 있다. 아침에는 털모자를 쓰고 낮에는 챙이 긴 모자로 바꾼다.
오토바이 탈 때의 모자는 전투모처럼 모양이 바뀌고, 모자의 패션은 계절 따라 달라진다.
"노장님, 모자는 왜 자꾸 바꾸어 씁니까."
"중노릇 재미없는데 모자라도 바꾸어 써야지요."
"노장님, 20년 묵언은 왜 하셨습니까."
"제가 원래 수다스러워서요. 말을 좀 줄이면 좋잖아요."
절에 있는 개가 모자를 바꾸어 쓴 스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짓자, 스님 왈 "개 시력이 심각하니 안경을 맞춰줘야겠어요" 라고 말해 선방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일도 있고, 최근에는 색다른 모자만 보면 '내것'이라고 우기는 스님 때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위봉사 갈 때는 모자를 조심하라'. '모자스님' 하면 전국의 비구니 선방에서 모르는 수행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니 모자 한개쯤 선물해도 위봉사 선방의 유머를 위해 좋은 보시일 듯싶다.
- 정찬주(소설가)의 선방을 찾아서 -
'절 찾아 가는 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산 통도사 극락암 호국선원 (0) | 2011.04.18 |
---|---|
윤장대 돌아 업장이 소멸하는 예천 용문사 (0) | 2011.04.16 |
숲과 계곡이 절경인 양평 사나사(舍那寺) (0) | 2011.04.12 |
속리산 법주사 탈골암 대휴선원 (0) | 2011.04.05 |
치악산 구룡사에 봄이 오는 소리 (0) | 2011.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