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종이 高麗紙
중국 사람들은 고려지를 종이 가운데 최고의 종이로 평가하였다. 그래서 붙인 별명이 '금령지(金齡紙)'라는 호칭이다. '황금과 같이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종이'라는 뜻이다.
서양의 고서들은 200년이 채 못 되어도 손으로 만지면 바스라져서 책장을 넘기기 힘들다. 반면에 우리 고려지(高麗紙)는 1000년이 지나도 유지가 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1000년 세월을 견디는 종이는 세계에서 고려지뿐이라고 한다. 이번에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들은 '초주지(草注紙)'로 되어 있어서, 200년이 지났지만 변색도 되지 않고 성성하다고 한다.
북송의 이름난 서예가였던 황정견(黃庭堅·1045~1105)은 자신의 문집인 '산곡집(山谷集)'에서 고려의 '성성필(猩猩筆·성성이 털로 만든 붓)'이 좋고, 고려지의 일종인 '백추지(百錘紙·추로 100번 두드려서 만든 종이)'가 아주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송나라 문인 진원룡(陳元龍)도 역시 '고려지는 비단을 만드는 누에고치실로 만들어 색깔도 비단과 같고, 질기기도 비단과 같다. 글, 그림에 사용하면 먹의 번짐이 아주 좋다. 중국에는 이런 종이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고려에서 만든 견사지(絹紗紙) 또는 잠사지(蠶絲紙)가 이것이다.
근래에 대만 고궁박물관의 수장고에서 소동파와 황정견의 서예 작품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감정해 본 전북대 김병기(58) 교수에 의하면 이들이 쓴 종이는 대부분 '고려지'임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작년에 경매에 나와 최고가인 770억원대에 팔린 황정견의 작품 '지주명(砥柱銘)'도 종이는 '고려지'라는 것이다.
청나라 건륭황제도 명말의 화가 동기창(董其昌)이 그린 '강산추제도(江山秋霽圖)'의 우상단에 '그림도 좋지만 종이도 아주 좋다'는 발문을 적어놓을 정도였다. 이 종이는 조선 왕실에서 중국 황제에게 선물로 보냈던 종이였다.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핵심인 시(詩)·서(書)·화(畵)를 떠받치고 있는 최고의 종이는 모두 한지(고려지)였던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는 우리나라 한지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던 '전주한지'의 이야기이다. 임실을 비롯한 전주 일대에서 자라는 닥나무는 그 껍질이 아주 단단하고 하천의 물이 좋아서 1920년대까지 최고급 한지의 주 생산지였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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