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빈자일등(貧者一燈)과 무재칠시(無財七施)

難勝 2011. 4. 23. 19:40

 

 

 

貧者一燈 長者萬燈(빈자일등 장자만등)

 

"가난한 사람이 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으로 올린 소박한 공양의 등불하나가 부자들이 바치는 무수한 등불보다 더 큰 공덕이다"

 

현우경의 빈녀난타품에 나오는 말입니다.

'빈자일등(貧者一燈)' 또는 '빈녀일등(貧女一燈)'이라고도 합니다.

*가난한(貧) 여인(女)의 최상의 등불(일등)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 기원정사에 계실 때 국왕 등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등공양을 하였습니다.

이를 본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은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모처럼 부처님을 뵙게 되었는데 이러히 빈천하여 아무 것도 공양할 것이 없구나"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온종일 먹지도 않고 겨우 한 푼을 구걸하여 부처님께 등공양을 올리기 위해 기름가게로 갔습니다. 기름 가게 주인은 그 사연을 듣고 감동하여 두배의 기름을 주었습니다. 기름을 사서 조그마한 잔등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하였습니다.

 

밤이 깊자 부처님의 시자 아난은 등불의 위험 때문에 부처님께서 주무시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자정이 되어 각각의 등불을 다 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등은 모두 꺼졌는데, 난타의 등은 아무리 끄려고 하였지만, 오히려 더 밝아져 더욱 밝게 빛났습니다.

 

이는 비록 가난하지만 진실하여 착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밝힌 등불이 불가사의한 염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그만두어라, 아난아. 그 등불은 한 가난한 여인이 간절한 정성으로 켠 것이어서 너의 힘으로 그 불을 끌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여인은 지금은 비록 가난한 모습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어 수미등광 여래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일러 '빈녀일등(貧女一燈)' 또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고 합니다.

'부자의 만 등보다 빈자의 한 등이 낫다'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부자란 재물의 보시를 통해 공덕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빈자란 형편에 따른 바른 정성과 깨끗하여 장애가 없는 보시를 해도 된다는 가르침을 주는 현우경의 설화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간절한 발원으로 부처님께 보시의 공양을 이루고저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형편에 따라 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해 행하는 보시가 진정 의미있는 공덕이 될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공덕을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중생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공덕은 보시 입니다.

보시에는 재시, 법시, 무외시가 있습니다.

 

재시란 재물을 통해 부처님께 공양하거나 어려운 이웃이나 중생을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 올린 공양도 결국은 다 중생에게 회향되기 때문에 중생을 위한 보시입니다.

법시란 부처님의 진리의 법을 전해 깨달음을 통해 중생에게 이익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법시를 행하기는 우리가 부족함이 많습니다.

무외시란 중생의 생사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고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입니다.

이는 부처님과 대승보살님들 같은 성현이 중생을 위해 행하는 보시 입니다.

 

그러니 우리 중생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보시란 결국 물질적 보시인 재시 밖에 없습니다.

다음으로 중생이 행할 수 있는 최상의 공덕으로는 살신성인의 덕을 통한 자기 희생입니다.

그러나 재물이 없어도 행할 수 있는 보시가 있으니 무재칠시라고 합니다.

 

무재칠시(無財七施)

무엇을 베푼다고 할때 거기에는 당연히 어떤 물질적인 것이 상상 됩니다.

하지만 물질을 가지지 않고도 7가지를 베풀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재물을 갖지 않고 베푸는 일곱가지 보시"라는 뜻의 무재칠시(無財七施)입니다.

 

1.안시(眼施)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드럽고 안온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시가 됩니다.

 

2.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도 안시와 비슷한 개념 입니다. 하지만 얼굴에 화기애애하고 기쁨으로 가득찬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소중한 보시가 되는것입니다.

 

3. 언사시(言辭施)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험악한 말들을 쉽게 합니다.

일상생활이나 인터넷 게시판 대화방 같은 곳을 가보면 정말 눈뜨고는 못 볼 지경입니다.

언사시는 삼업(三業)가운데 구업(口嶪)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우리가 몸으로 짓는 열가지 업중에 입으로 짓는 업이 무려 네가지나 된다는 점을 상기해 봐도 우리의 언어생활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부드럽고 친절하며 예의바른 말 한마디, 그것은 자신의 인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보시행이 되는 것입니다.

 

4. 신시(身施)

예의 바르게 친절하게 다른사람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몸으로 베푸는 보시행으로 삼업 가운데 신업(身嶪)에 해당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공손한 자세로 반갑게 인사하고, 어른을 만나면 머리 숙여 인사할줄 알고,

몸으로 남을돕는 이런 행위들이 바로 몸으로 베푸는 보시행입니다.

이렇게 공손하고 예의 바른 몸가짐은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훈훈한 마음을 안겨 주는 보시행입니다.

 

5. 심시(心施)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베푸는 보시행으로 삼업 가운데 심업(心嶪)에 해당됩니다. 마음가짐을 항상 따뜻하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한다면 우리사회는 한결 아름다운 사회가 될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착하게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것도 하나의 소중한 보시행입니다.

 

6. 상좌시(床座施)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요즘 같은때 얼마나 필요한 보시행인지 모릅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탓을때 젊은이들이 노약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자는 척 하는 광경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노약자들에게나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얼마나 소중한 보시행인 것을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7. 방사시(房舍施)

사람을 방에 재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같이 부동산을 재산의 중요한 목록으로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엄격하게 말해서 무재시라고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있는 집에 사람을 재워주는 것이 돈 드는 일도 아니므로 무재시로 분류 했다고 생각 됩니다.

요즘처럼 어려워 거리에 노숙자들이 많은 시절이라면 이것도 크고 아름다운 보시행이겠지요.

 

 

부처님의 전생담을 통해서도 부처님께서는 보살수행시 수많은 살신성인의 덕으로 몸을 받쳐 보시를 행하시고 인욕선인의 몸일때는 가리왕에게 온몸이 절제되는 고통을 이기시며 인욕을 실천하셨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살신성인의 덕은 중생이 쉽게 행할 수 없는 공덕이기에...

중생이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덕이 재시라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물질적 풍요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잘살고 있는 이웃과 비교 하게 됩니다. 이웃과 비교할 때 자신이 잘 살지 못하는 빈자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빈자의 일등도 그렇게 공덕이 되거늘 하물며 내처지에 이정도 하면 됐지? "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빈자일등에서 말하는 빈자의 처지와 우리의 처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보시인가? 가 중요한 것일 것입니다.

 

빈자일등을 통해 자신의 소극적인 보시를 정당화하려는 마음을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보시의 공덕을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중생이 물질에 집착하여 탐욕을 일으키는 탐진치 삼독심의 근본 원인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시의 방편을 통해 중생의 마음이 물질에 집착하려는 강한 유혹을 버리라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 됩니다.

 

마음을 비워라 !

보시를 통해 물질로 향한 내 마음을 버리고 비우라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물질적 욕망이니까요.

 

도를 닦는 많은 분들도 이 물질적 경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진보가 더뎌지는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물질적 욕망으로 부터 멀어져 가는것이 지혜를 밝혀 가는 길이요. 높은 공덕을 이뤄 도에 나아가는 길입니다.

 

현우경(賢愚經)이란 어진이의 이야기와 어리석은 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이라 하여 현우경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