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사찰장식에 등장하는 토끼와 자라

難勝 2011. 6. 15. 03:43

 

 

사찰장식에 등장하는 토끼와 자라

 

사찰 경내에 종종 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조각이나 그림들이 눈에 띈다. 토끼와 자라(거북)가 그런 예에 속한다. 이들은 주로 그림이나 조각 형태로 법당 문이나 평방또는 벽면에 장식되는 경우가 많다.

 

승주 선암사 원통전의 출입문 궁창에는 두 마리의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모습이 새겨져 있다. 금제 금산사 보제루에서는 누운 자세로 건물 부재를 받치고 있는 한쌍의 토끼를 볼 수 있으며, 남원 선원사 칠성각의 외벽과 상주 남장사 극락보전의 내부 창방, 양산 통도사 지장전의 내벽 등에서도 토끼 형상이 눈에 띈다. 또한 여천 흥국사 대웅전축대 위에도 토끼가 조각되어 있다. 이들 가운데 선암사와 금산사의 경우는 토끼만 그려져있으며 선원사와 남정사, 통도사의 경우는 토끼와 자라가 함께 나타난다. 이렇듯 사찰에서자주 볼 수 있는 토끼와 자라는 불교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

 

토끼---헌신과 희생의 상징

토끼는 우리나라 민간설화에서 호랑이를 골탕 먹이는 지혜로운 자(智者)로 묘사되기도 한다. 토끼는 민첩하게 뛰기 때문에 사기(邪氣)로부터 자유로울수 있고, 귀가 커서 장수할 상이며, 갈라진 윗입술이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고 하여 다산할 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찰 장식에 나타나는 토끼는 이와 다른 불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찰 장식에 나타나는 토끼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헌신과 희생의 상징형으로 달에 살고 있는 토끼이고, 또 하나는 부처의 전생설화(前生說話)와 관련된 토끼이다. 토끼가 헌신과 희생의 상징형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제석천과 토끼에 얽힌 불교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어느 날, 여우와 원숭이와 토끼가 불심(佛心)을 터득한 것을 자랑하려고 제석천을 찾아갔다.이들을 시험하기 위해 제석천이 시장기가 돈닫고 하자, 여우는 즉시 잉어를 물어오고 원숭이는 도토리알을 들고 왔으나, 토끼만 어떻게 하지 못하고 빈손으로 왔다. 토끼는 제석천앞에서 모닥불을 피우더니 불 속에 뛰어들며, 내 고기가 익거든 잡수시라고 하였다. 제석천이 토끼의 진심을 가상히 여겨, 중생들이 그 유해나마 길이 우러러보도록 토끼를 달에다 옮겨놓았다. 이렇게 하여 토끼가 달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되는 것이 신암사 원통전의 토끼문양이다. 또한 고창 선운사 영산전의 천장화 가운데 여우가 물고기를 잡아 입에 물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위의 설화에서 제석천을 위하여 물고기를 잡아온 여우를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불전설화 별주부전

남장사 극락보전 내부 창방에 그려진 그림과 통도사 지장전 내벽의 벽화에는 토끼가 자라등에 올라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장면이 있는데, 토끼와 자라 일행이 용궁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하여 수면 위에 기와지붕을 그려놓은 것이 흥미롭다. 남장사의 그림에는 자라 등에 타고 있는 토끼와 함께 육지에서 그들을 환송하는 또 한 마리의 토끼가 있어 만담(漫談)내용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이 그림은 [별주부전]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그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해중 용궁에 사는 용왕이 병이 나자. 도사가 나타나 육지에 있는 토끼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용왕은 수궁 대신들을 모아놓고 육지에 나갈 사자를 고르는데 서로 다투기만 할뿐 결정을 하지 못한다. 이때 별주부 자라가 나타나 자원하여 허락을 받는다. 토끼 화상을가지고 육지에 이른 자라는 동물들의 모임에서 토끼를 만나 수구에 가면 높은 벼슬을 준다고 유혹하면서 지상의 어려움을 말한다. 이에 속은 토끼는 자라를 따라 용궁에 이른다. 용왕이 간을 내라고 하자 속은 것을 안 토끼는 꾀를 내어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한다. 용왕은 토끼를 크게 환대하면서 다시 육지에 가서 간을 가져오라고 한다. 자라와 함께 육지에이른 토끼는 어떻게 간을 내놓고 다니냐고 자라에게 욕을 하면서 숲속으로 도망가버린다.어이없이 하던 자라는 결국 빈손으로 수궁에 돌아간다.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 [별주부전]은 인도에 뿌리를 둔 불전설화(佛典說話)를 근원으로 한다. 불전설화는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본생담(本生譚)으로 원왕본생(猿王本生)과 악본생(鰐本生)이 있다. 이 이야기는 옛날 인도에서 교훈적인 우화로 전해오다가 불교 경전에 포용되면서 종교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원래 인도설화에 등장하는 동물은 원숭이와 악어이고, 물에 사는 악어 아내가 원숭이 간을 먹고 싶어한다는 내용이었다.

 

불교 경전에 삽입된 고대 인도설화가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에 들어와 한자로 번역될 때악어와 원숭이가 자라와 원숭이, 또는 용과 원숭이로 변하였다. 그러나 설화가 지니는 불교적 의미는 같아서 설화속의 원숭이는 석가의 전신(前身)이며, 악어는 변절한 부처의 제자인제바달다(提婆達多)로서, 악어가 원숭이 간을 탐내는 것처럼 제바달다가 석가를 해치려 한다는 내용이 되었다.

 

중국에서 각색된 본생담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그 주인공이 다시 토끼와 거북으로 변하였다. 이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인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조에 삽입된 귀토설화(龜兎說話)의 내용을 보면 그 주인공이 토끼와 거북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용궁--바닷속 불국정토

통도사와 남장사의 귀토도에서 주인공인 토끼와 자라가 찾아가는 곳은 바로 용궁이다. 용왕의 신묘한 능력으로 만들어진 용궁은 불교에서 바닷속에 있는 또 하나의 불국정토로 여겨졌다. 불자들은 현세에 불법이 유행하지 않게 될 때에는 용왕이 용궁에서 경전을 수호한다고믿었으며, [해용왕경] [청불품]에 보면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해용왕이 영축산에 나아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신심이 환희에 차, 부처님께 청하여 대해용궁에 오셔서 공양하시도록 하니, 부처님이 이를 허락하셨다. 용왕이 곧바로 대해에 들어가 조화를 부려 대전을 짓고 무량보주로 갖가지 장식을 하니 장엄이 비길 데가 없었다. 해변으로부터 해저에 이르기까지 통로에 삼보도계를 만드니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으로부터 염부제에 내려올 적과 같았고, 부처님이 모든 비구. 보살들과 더불어 함께 보계를 밟고 용궁에 들어가 용왕을 위하여 대법을 설하였다.

 

통도사에는 해장보각(海藏寶閣)이라 쓴 편액이 달린 전각 한 채가 있다. 전각의 이름을 해장보각이라 한 것은 불경의 보관처를 용궁에 두며, 또 대장경의 진리를 바닷속 수많은 보배에 비유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한 선암사에서 대웅전 지붕의 착고판마다 "海"자가 씌어 있고, 대웅전 옆 요사채의 판벽에는 "海"자와 "水"자가 투각되어 있는데, 이 역시 불전주변의 공간이 바닷속 불국정토, 즉 용궁을 상징하기 위한 묘책이라고 스님들은 말한다.

 

 

자라--용궁으로 향하는 인도자

사찰 장식 중에서 토끼는 보이지 않고 자라만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해남 미사 대웅전 앞쪽의 주춧돌과 설봉당부도를 비롯한 미황사의 많은 부도들, 그리고 흥국사 대웅전 축대 윗면과 선암사 불조전 천장에 있는 자라가 그 예이다. 때로는 자라가 아니라 완연한 거북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도 있는데, 흥국사 대웅전 앞 석등과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 축대 밑,창원 불곡사 일주문 등에서 보이는 거북이 대표적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자라와 거북은 별개의 동물이지만 설화 속에서는 양자를 뚜렷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별주부전]에는 별주부, 즉 자라가 주인공이고,[삼국사기] [열전]의 김유신조에는 자라가 아닌 거북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거북이든 자라든 간에 그것이 사찰 장식물로서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불자들의 관념속에는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정토로 건너갈 때 타고 가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는 상상의 배가 있다. 이러한 관념이 표현된 것이 반야용선도이며, 반야용선의 선수를상징하는 법당 앞의 용두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때 자라와 거북도 현실을떠난 이상 세계인 바닷속 용궁을 향해 가는 탈것의 상징형으로 볼 수 있다.

 

불영사 대웅보전 축대 밑에 커다란 거북석상이 하나 있다. 이 거북석상은 대웅보전 건물을등에 지고 앞으로 헤엄쳐 나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 또 흥국사 대웅전 축대 윗면과 왼쪽 모서리에도 자라가 새겨져 있는데, 머리를 앞으로 두고 있어 대웅전 건물을 인도해 가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불전 앞의 자라나 거북상은 반야용선의 용과 마찬가지로 이를테면 반야귀선(般若龜船)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비석의 귀부를 살펴보자 귀부는 비신(碑身)을 받치는 거북 형태의 돌을 말한다. 귀부에는 경주의 신라태종무열왕릉비처럼 완전한 거북 형태가 있는 반면, 여주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비를 비롯한 대다수의 귀부가 그렇듯이 용두귀신(龍頭龜身)의 형태가 있다.

 

귀부를 자세히 보면 네 발로 땅을 짚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비 귀부의 앞발을 보면 왼발은 땅을 짚고 있고, 오른발은 발바닥이 보이도록 위로 젖히고 있어 앞으로 헤엄쳐 나가는 모습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역력히 보인다.또한 천안 봉선흥경사터 비갈의 귀부는 고개를 심하게 휘젓고 있는데, 이것은 거북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때 취하는 행동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거북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 도교에서 보면 선계가 될 것이고, 불교에서 보면 사후에 안주할 극락정토가 될 것이다.

 

 

 

 

이상향의 조성

자라나 거북은 용궁으로 가기 위한 탈것. 또는 인도자로서뿐만 아니라 사찰의 특정 공간을바닷속 용궁으로 조성하기 위한 상징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찰 건물은 아니지만남원 광한루의 기둥머리와 평방에 토끼가 자라 등에 올라타 앉은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누각뿐만 아니라 경내에 있는 열녀춘향사당 앞쪽 기둥머리에도 똑같은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으며, 광한루 연못가에도 물 속을 향해 큼직한 자라석상이 하나 놓여 있다.

 

광한루라는 이름은 달 속에 있는 가상의 궁전인 광한전(廣寒殿)에서 따온 것이다. 광한전은도교의 이상세계인 월궁을 말하며, 그것은 불교의 용궁과 비견될 수 있다. 월궁은 옛 서민들의 상상 속에 살아 있던 선계요. 이상향이었으며, 서민들은 그런 곳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했다. 그러나 월궁에 가서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현실적인 삶의 공간 속에 월궁을 조성하려 했던 것이다.

 

어떤 공간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하여 상징적인 수법을 쓰는 예는 고래의 풍습과 유물속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우리나라 장례 풍속에 나뭇가지로 문의 형태를 만들고 문설주에다 숭어를 매달아놓는 경우가 있다. 바다와 민물을 넘나들며 사는 속성을 지닌 물고기인 숭어를 달아놓고, 이승과 저승을 드나드는 문임을 상징토록 한 것이다. 또한 중국 한나라 때의 무덤에서 발견된 화상전(畵像塼)을 보면 아래쪽에는 물고기가, 그 위쪽에는 새가 그려져 있다. 여기서 새는 하늘의 상징형이고, 물고기는 물의 상징형이다.

 

사찰 장식에서 볼 수 있는 자라나 게도 현실 공간을 이상적인 공간인 바닷속 용궁으로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흥국사 대웅전 축대 전면에 게를 조각해놓은 것도 대웅전 일대의 공간이용궁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바다로 상징토록 하기 위한 것이며, 미황사 대웅전 주춧돌에 새겨진 여러 마리의 게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찰 장식에 등장하는 토끼와 자라(거북)는 가깝게는 [별주부전]의주인공들이며, 근원적인 의미로는 석가모니의 본생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화현(化現)이자, 반야귀선의 주인공들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또 하나의 불국정토요, 이상향인 용궁을 현실 공간에 조성하기 위한 묘책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마음을 바다에 비유한다. 파도가 잠든 깊은 바다에는 항상 흔들림 없는 심연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일러 해인(海印)이라 한다. 번뇌의 바람이 잠든 마음의 바다, 그것을 또한 해인삼매(海印三昧)라 한다. 이 해인삼매의 바닷속에 잠겨 있는 용궁은 관념상의불국정토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런 불국정토를 지상에 구현해놓고, 그 세계로 향하고자했던 불자들의 마음이 사찰의 토끼와 자라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