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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지정면 안창리(安昌里)

難勝 2011. 6. 24. 05:14

안창리(安昌里)

 
[위치]
안창리는 지정면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간현리, 남서쪽으로는 문막면 동화리·취병리, 북쪽으로는 판대리와 연접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경기도 양동면과 연결되며 현재 안창 1, 2리의 행정리로 되어있다.

[유래]
조선시대 한양과 북원을 연결하는 파발제도로 안창역이 있어 역꾼들이 말을 바꿔 타곤 하였는데 따라서 안창리는 안창역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혁]
본래 원주군 지향곡면의 지역으로, 조선시대 안창역이 있었으므로 안창, 또는 일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운동, 능동, 창촌, 송원동, 이운동, 수청동, 흥법을 병합하여 안창리라 하여 지정면에 편입시켰다.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로 되었다.

[특이사항]
총가구수는 111호로 400명(남 188명, 여 212명)이 살고 있으며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주 농산물로는 쌀, 원예, 특용작물로 수박, 오이, 엽연초, 인삼 등을 재배한다. 부업으로 일부 농가(8호 90군)에서 토종꿀을 생산하고 있다.
이곳은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가 태어난 곳이고 연흥부원군의 묘 및 사당, 신도비가 있다. 또한 유서 깊은 흥법사지가 있고 한양으로 올라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지명]
▲간현봉 [산]
[위치] 두멍골 남서쪽에 있는 높이 387m의 산을 말한다.

▲갈매울 [마을]
[위치] 안창리 월운동 남쪽 도로 옆 마을을 말한다.
[어원] '갈+매+울'로 추정된다. '갈'은 나누다(分)의 뜻이고 '매'는 산의 고어 '뫼', '울'은 '골, 굴'에서 'ㄱ'음이 탈락한 것이다. 그러므로 갈매울은 산이 갈래진 곳의 골짜기, 마을을 뜻한다.

▲갈매울골 [골]
[위치] 갈매울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갈밭골 [골]
[위치] 수청동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강께 [들]
[위치] 능촌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유래] 강 옆의 강물이 이루어 놓은 들이라고 해서 강께라 한다.

▲건너말 [마을]
[위치] 수청동에서 개울 건너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검생이 고개 [고개]
[위치] 송내에서 문막 쪽으로 넘는 고개를 말한다.

▲경막골 [골]
[위치] 수청동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고래들 [들]
[위치] 수청동에서 북쪽으로 솔치 아래까지 이어지는 들을 말한다.

▲고마니숲 [숲]
[위치] 마라우에 있는 숲 이름이다.

▲곰말 [마을]
[위치] 흥법 마을에서 취병리 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 '곰말', '곰골(공골)'은   계통으로서 대체로 '큰 마을', '큰 골짜기'의 뜻을 가지고 있다.
[특이사항] 옛날 고관대작을 지내고 천석의 쌀을 수확하는 집이 세 집이나 있었는데 지금도 이들 집터에서 기왓장이 나온다고 한다.

▲괴골산 [산]
[위치] 자작골 서쪽에 있는 산을 말한다.

▲굴바우 [바위]
[위치] 덕가산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바위 가운데 불이 있어서 굴바우라 부른다.

▲금강소 [소]
[위치] 흥법 앞에 있는 소를 말한다.

▲김제남(金悌男) 묘소 [묘]
[위치] 지정면 안창리 능촌 도로변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있다.
[내용]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의 아버지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 김제남의 묘이다.

▲김제남 사당 [당]
[위치] 안창리 능촌 김제남 묘 아래에 있다.
[내용] 선조의 장인인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신위를 모셔 놓은 곳이다.
[특이사항] 강원감사들이 지날 때는 반드시 예를 올리고 지나갔다 한다.

▲김제남 신도비(神道碑) [비]
[위치] 지정면 안창 1리 능촌 도로변 김제남 사당에서 서남쪽으로 50m 떨어진 곳에 있다.
[내용] 김제남(1562-1613)의 자는 공언(恭彦), 시호는 의민(懿愍),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영의정을 지낸 전(詮)의 증손자로 안창리에서 태어났다. 1597년(선조 30년) 급제하여 이조좌랑에 이르렀고 인목대비의 아버지가 된 연후로 연흥부원군(延興府院君)에 책봉되었으나, 1613년(광해군 5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추대하려 했다는 이이첨 등의 무고로 사사(賜死)되었다. 다시 1616년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했던 그는 인조반정 후 관직이 복구되고 사당과 신도비가 세워졌다. 이 비는 가로 225cm, 세로 165cm, 높이 34cm의 귀부와 이수가 있는 거대한 화강암 비석이다. 바닥은 거북, 개석은 용 두 마리가 서로 바라보는 형상으로 육중함을 자아낸다. 이수의 조각은 정교하고 섬세하며 거목의 느티나무 아래에 서있다. 연안 김씨 문중인 김세영씨가 관리자이다.

▲김천석(金天錫) 묘 [묘]
[위치] 지정면 안창리 산 67-1에 있다.
[유래] 김제남의 사사(賜死)와 함께 세아들도 멸문의 화를 당하였지만, 다행히 자부(子婦) 초계 정씨와 손자 천석, 군석 형제는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나 한양서는 온전히 보전할 길이 없자, 정씨는 급사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관속에 넣어 선영인 원주까지 피신시킨 후, 외조부 정묵은 치악산 영원사 주지에게 부탁하여 영원사에서 10년 동안 남의 눈을 피하여 자라게 하였다. 그 후 천석은 인조반정으로 대왕대비가 된 인목대비의 찾음으로 돈영부 참봉을 거쳐 홍천, 금성 등의 수령까지도 역임하였다. 그러나 동생인 군석의 행방은 알 수 없으며 천석은 사후에 안창리에 묻혔다.
[특이사항] 1979년 원주문화원에서 연안 김씨 문중의 후원으로 판부면 금대리 일론에 천석과 군석의 어린 시절 유적비를 세우기도 했다.

▲나무골 [골]
[위치] 어루니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넘말 [마을]
[위치] 능촌에서 조그마한 잔등을 넘어 있는 마을이다. 월촌이라고도 한다.
[유래] 잔등 너머에 있다고 해서 넘이말>넘말이 되었다.

▲높은덕골 [골]
[위치] 동막골 위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능촌(陵村) [마을]
[위치] 창촌 뒤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 선조의 장인 연흥부원군 김제남의 묘가 있어 능촌이라 한다.
[풀이] 능골은 전국 어디서나 고르게 분포되어 있고 대체로 그 지역의 능과 결부시켜 풀이하고 있으나 원래는 는골(連谷, 長谷)에서 능골로 변천한 경우가 많다. '는'은 주로 산줄기나 마을이 길게 이어져 있거나 야트막하게 늘어진 지형에 많이 붙는다.

▲능촌우물 [샘]
[위치] 능촌에 있는 샘을 말한다.
[내용] 물이 풍부하여 하루 약 24톤의 물이 나온다.

▲능촌저수지 [저수지]
[위치] 능촌 앞에 있는 작은 저수지를 말한다.

▲다랑골 [골]
[위치] 능촌 뒤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달'은 '닫'이 뿌리말인데 산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닫안골>달안골>다란골>다랑골로 변한 것으로 본다. 그 뜻은 산의 안쪽에 있는 골짜기가 된다.

▲다랑골들 [들]
[위치] 능촌 뒤에 있는 들을 말한다.

▲당고개 [고개]
[위치] 이운이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당고개골 [골]
[위치] 작달막골 서쪽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당산(塘山) [산]
[위치] 수정골 동쪽에 있는 높이 545m의 산을 말한다.
[내용] 지정면과 경기도 여주군, 양평군과 경계가 되는 산이다.

▲대송치(大松峙) [고개] → 솔치고개

▲덕가산(德加山) [산]
[위치] 능촌 북서쪽에 있는 높이 322m의 산을 말한다. 간현봉 남쪽에 있다.

▲도천서원지(陶川書院址) [터]
[위치] 안창리 흥법사지터 부근을 말한다.
[연혁] 숙종 19년(1639) 세워져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관설 허후를 모셨던 곳이라 한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규모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특이사항] 서원터 표지석이 흥법사지 북동쪽 산기슭 2-300m지점에 세워져 있다.

▲동막골 [골]
[위치] 이운이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동막골 [마을]
[위치] 이운이 건너편 동막골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두멍골 [골]
[위치] 두멍소가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두멍소 [소]
[위치] 두멍폭포에 있는 소를 말한다.
[유래] 폭포가 떨어져서 두멍처럼 소가 패어서 두멍소라 한다.
[풀이] '두멍'은 물을 길어 붓고 쓰는 큰 가마나 독을 말하므로 '넓고 우묵한 소'를 뜻한다.

▲두멍소골 [골]
[위치] 두멍폭포로 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두멍폭포 [폭포]
[위치] 간현에서 지정대교를 건너 우측으로 2km 들어간 두멍골에 있다. 두몽폭포라고 한다.
[유래] 옛날 물을 길어다 붓는 큰 그릇인 두멍처럼 생긴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용] 간현 유원지에 왔던 관광객들이 여름에는 많이 찾는다. 옛날에는 이 폭포의 두멍소가 깊어 명주꾸러미가 하나 다 들어갔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다 메워졌다고 한다.

▲두몽폭포 [폭포] → 두멍폭포

▲등너머들 [들]
[위치] 어루니 남쪽 갈매울 북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마라우 [바위]
[위치] 마라우 마을에 있다. 마암이라고도 한다.
[유래] 모양이 말과 같아서 마라우라 한다. 말바우>말 우>말아우>마라우로 변천하였다.
[풀이] 대체로 말바우는 모양과 상관없이 큰 바위에 붙는다. 이 때 '말'은 '크다, 처음'을 뜻하는 '맏'에서 변한 것이다. 즉 맏바우>말바우>말 우>말아우>마라우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라우소 [소]
[위치] 마라우 앞에 있는 소를 말한다. 마암소라고도 한다.

▲마암(馬岩) [바위] → 마라우

▲마암소(馬岩沼) [소] → 마라우소

▲망재봉 [산]
[위치] 월운동에 있는 산봉우리를 말한다.

▲매상골 [골]
[위치] 흥법 마을에서 매상골산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매상골들 [들]
[위치] 흥법과 능골 사이, 능촌 저수지 밑에 있는 들을 말한다.

▲매상골산 [산]
[위치] 흥법 마을 뒤에 있는 산을 말한다.

▲명동들 [들] → 몽댕이들

▲목동 [마을]
[위치] 월운동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몽댕이들 [들]
[위치] 능촌 뒤에 있는 들을 말한다.

▲문앞들 [들]
[위치] 창촌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밀미봉 [산]
[위치] 흥법 마을의 산을 말한다.

▲방아울고개 [고개]
[위치] 이운이에서 문막 취병리 작달막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배나무골 [골]
[위치] 이운이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버덩골 [골]
[위치] 흥법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버덩들 [들]
[위치] 버덩골 남쪽 섬감변에 길게 나 있는 들을 말한다.

▲버덩이들 [들]
[위치] 갈매울 동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버선바위 [바위]
[위치] 일봉산 안에 있는 바위로 일명 상투바위라고도 한다.
[유래] 모양이 버선처럼 생겨서 버선바위라 한다.

▲베틀바위 [바위]
[위치] 월운동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모양이 베틀처럼 생겨서 베틀바위라 한다.

▲부도탑(浮屠塔) [탑] → 흥법사염거화상탑

▲불천지고개 [고개]
[위치] 일봉산 줄기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유래] 부처를 옮긴 고개란 뜻이라 한다.

▲삼산골 [골]
[위치] 이운이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삼산들 [들]
[위치] 새질내기들 동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상투바위 [바위] → 버선바위

▲새질내기들 [들]
[위치] 이운이 남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새터말 [마을]
[위치] 수청동 개울 거너 새로 생긴 마을을 말한다.

▲서낭골 [골]
[위치] 어루니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옛날에 이 꼴짜기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하여 서낭골이라 한다.

▲석재골 [골]
[위치] 두멍소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선녀바우 [바위]
[위치] 지정면 안창리, 욕바위 건너편 영경산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여계바우라고도 한다.
[유래] 선녀들이 바위에 내려와 놀았다 해서 선녀바위라 한다.

▲솔안동 [마을] → 솔원

▲솔원 [마을]
[위치] 능촌에서 이운동, 수정동, 솔치를 거쳐 양동으로 가는 길에 있다. 장지고개 남쪽이다. 솔안동, 송내동, 송원동이라고도 한다.
[유래] 옛날 소나무 정자가 있었고 조선시대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는 송원(松院)이 있었다 한다.

▲솔치 [고개]
[위치] 수정골 위에 있는 고개로 수정골에서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로 넘어간다. 송치라고도 한다.
[유래] 소나무 정자가 있어서 솔치고개라 한다. 또는 그와 상관없이 '좁은 고개'를 뜻하기도 한다.

▲송내개천 [내]
[위치] 송원동에서 섬강으로 흐르는 내를 말한다.

▲송내동(松內洞) [마을] → 솔원

▲송원동(松院洞) [마을] → 솔원

▲송치(松峙) [고개] → 솔치고개

▲쇠밀 [마을]
[위치] 흥법의 서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은선사란 암자가 있다고 한다.

▲수정골 [골]
[위치] 수정동에서 수리봉으로 이어지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옛날에 이 골짜기에서 수정이 많이 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정골 [마을]
[위치] 이운이 북서쪽, 수정골 앞에서 솔치고개로 가는 길에 있다. 수청동이라고도 한다.

▲수청동(水淸洞) [마을] → 수정골

▲순대 골짜기 [골]
[위치] 욕바위 앞, 위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숯가마골 [골]
[위치] 수정골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전에 숯을 굽던 가마가 있어서 숯가마라 한다.

▲아가바위 [바위]
[위치] 일봉산 안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아가바위는 모양과 상관없이 '작다'는 뜻의 '아, 앗'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아섬'은 작은 섬이란 뜻이며 '솔섬'으로도 불린다. '솔고개'나 '솔치'도 작다는 뜻이 들어있다. '아이고개', '애고개', '아차산', '아시고개' 등은 모두 '아, 앗'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아기바위', '아가바위'는 작은 바위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강봉 [산]
[위치] 일봉산 아가바위가 있는 제일 오른 쪽 봉우리를 말한다.
[유래] 작은 봉우리를 뜻하는 '아가봉'에서 변한 것이다.

▲아랫말 [마을]
[위치] 흥법 마을의 아래에 있다.

▲아랫말 [마을]
[위치] 수정골 아래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안쟁이골 [골]
[위치] 솔치에 있는 골을 말한다.
[유래] 안에 있는 재를 뜻한다.

▲안창 [마을] → 안창리

▲안창광산 [광산]
[위치] 순대 골짜기에 있던 광산을 말한다.

▲안창교회 [교회]
[위치] 안창1리에 있는 장로교 교회를 말한다.

▲안창리 느티나무 [나무]
[위치] 안창 1리 김제남 신도비 옆에 있다
[유래] 인목대비가 태어난 이 곳이 경관이 좋아서 저수지를 만들고 주변에 나무를 심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이것이라 한다.
[내용] 높이 35m, 둘레 6m, 수령 400년 이상 된 거목이다. 1982년에 도나무로 지정되었다.

▲안창역터 [터]
[위치] 지정면 안창리 역말에 있다.
[유래] 조선시대 강원 감영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인 이곳에서 역마를 쉬어가거나 갈아타던 곳이다. 역사 1명이 주재하고 있었고 큰말 1필, 복마(卜馬) 2필, 노비 21명이 있었다고 한다. 원주에서 양평으로 이어지는 노선의 역이었다.

▲안창창지(安昌倉址) [터]
[위치] 창말 앞에 있다. 섬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으로 지금은 논이 되어 있다.
[유래] 조선시대 원주의 주요 관창은 읍내에 있는 사창(司倉)과 별창(別倉)을 제외하고 북창(안창), 서창(흥원), 동창(주천) 등 세 개의 창고가 있었는데 북창이 안창에 있었다.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수로의 이용은 줄어들게 되었고 1910년경에 폐지되었다. 이곳에서 과거에는 주춧돌이나 기와조각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안창터널 [굴]
[위치] 섬강 철교 지나 간현 터널과 원재 터널 사이에 있는 중앙선 기차 터널을 말한다.

▲앞들1 [들]
[위치] 송원동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앞들2 [들]
[위치] 이운이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어루니 [마을] → 월운

▲얼룬리 [마을] → 월운

▲여계바우 [바위] → 선녀 바위

▲여계바우골 [골]
[위치] 여계바위가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역말 [마을]
[위치] 조선시대 안창역이 있었던 마을로 능촌과 흥법 마을 사이에 있다. 영말이라고도 한다.

▲역말들 [들]
[위치] 역말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역촌 [마을] → 역말

▲영경산 [산] →일봉산

▲영말 [마을] → 역말

▲영산(靈山) [산] → 일봉산

▲영월봉 [산]
[위치] 역촌 뒷산을 말한다.

▲오형제암(五兄弟岩) [바위] → 오형제바우

▲옥대산(玉帶山) [산]
[위치] 안창 1리의 산을 말한다.

▲왕십리교회 [교회]
[위치] 안창2리에 있는 장로교 교회를 말한다.

▲욕바우 [바위]
[위치] 능촌 서쪽 덕가산 모퉁이 중턱에 있다.
[유래] → [전설]

▲욕바우골 [골]
[위치] 욕바위가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우묵골 [골]
[위치] 흥법 마을에서 이운리쪽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골짜기가 우묵하게 들어가 있어서 우묵골이라고 한다.
[특이사항] 옛날 최명길 자손들이 여기에 묘지를 팠을 때 금 까마귀가 날아간 길지라 한다.

▲웃말1 [마을]
[위치] 흥법 위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웃말2 [마을]
[위치] 수청동 북서쪽으로 위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월운(月雲) [마을]
[위치] 능촌 북쪽에 있는 마을로 어루니, 얼룬리라고도 한다.
[유래] 월운리>얼운리>어룬리>어루니로 변천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 지도에는 언론리(言論里)라 적고 있어 오히려 우리말 어룬, 어루니가 먼저 생기고 한자어로 정착된 듯하다. 정확한 유래는 찾기 어렵다.

▲월운이 공동묘지 [묘]
[위치] 월운 뒤에 있는 공동묘지를 말한다.

▲월운이들 [들]
[위치] 월운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월촌(越村) [마을] → 넘말

▲윗말 [마을]
[위치] 흥법 마을의 위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의민공사우(懿愍公祠宇) [당]
[위치] 안창리 능촌에 있는 김제남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말한다.
[유래] 이 사당은 건립 후 두 차례의 화재를 당하였고 1965년에 사우를 건립하였다가 1997년에 신축하였다. 김제남의 묘 아래에 있으며 신도비는 70m 남쪽에 있다.

▲이우골 [골]
[위치] 이운이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이운동(伊雲洞) [마을] → 이운이

▲이운이 [마을]
[위치] 솔원 서쪽, 양동으로 가는데 있는 마을이다. 이운동이라고도 한다.

▲이토골 [골]
[위치] 이운이에 있는 골짜기로 배나무골 북쪽에 있다.

▲일당산 [산]
[위치] 수청동에 있는 낮은 산을 말한다.

▲일봉산 [산]
[위치] 법흥 마을 뒤의 높이 410m 산으로 영산, 영경산이라고도 한다.
[유래] 유서 깊은 흥법사지를 품고 있는 신령스런 산이라 해서 영산(靈山)이라고도 한다. 주 봉우리 세개가 양산을 펴 놓은 모양인데 여기에 치마바위, 아가바위, 버선바위 등이 있고 아가바위가 있는 맨 오른쪽 봉을 아강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일리(一里) [마을] → 안창리

▲자작골 [골]
[위치] 점말 서쪽으로 난 골짜기를 말한다.

▲작달막 [고개] → 작달매기

▲작달매기 [고개]
[위치] 이운이 앞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이운이에서 문막면 취병리로 넘어가는 지름길이다. 작달막이라고도 한다.

▲작은 갈밭골 [골]
[위치] 갈밭골에 있는 작은 골짜기를 말한다.

▲장지고개 [고개]
[위치] 솔원에서 판대리 장지동으로 넘어가는 긴 고개를 말한다.
[유래] 고개가 길다고 하여 장지라 한다.

▲장신골 [골]
[위치] 수정동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절너머골 [골]
[위치] 능촌 뒤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정감 [마을]
[위치] 갈매울과 능촌 사이의 마을을 말한다. 정잠이라고도 한다.

▲정잠 [마을] → 정감

▲중다래미 바위 [바위]
[위치] 지정면 안창리 영경산 기슭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 [전설]

▲중방바위골 [골]
[위치] 일봉산 안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지산목장 [목장]
[위치] 월운동 남쪽 목동 안에 있는 목장을 말한다.

▲지정초등학교 안창분교 [학교]
[위치] 지정면 안창리 81번지에 있다.
[내용] 1948년 9월 1일 분교장 인가가 나고 1952년 12월 17일에 학교로 승격하였다가 1989년 3원 1일에 안창분교로 격하되었다. 1993년에 폐교되었다. 건물 2동이 있다.

▲진공대사탑 부석관(眞空大師塔 附石棺) [유물]
[위치] 원래 흥법사지에 있었으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보물 365호이다.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眞空大師塔碑 龜趺 및  首) [비]
[위치] 흥법사지에 있다. 보물 463호이다.
[유래] 진공대사(855-937)는 강원도 양양군 진전사(陳田寺)에서 수도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신라말 고려초의 선승이다. 고려 태조가 진공대사의 설법에 감화받아 왕사로 머물기를 바랬으나 사양하고 소백산 수도암으로 갔다고 한다. 대사가 세상을 떠난 뒤 태조 23년(940)에 태조가 손수 글을 짓고 당대 명필인 최광정(崔光鼎)이 당태종의 서법을 본받아 글씨를 써 비를 세웠다. 글과 글씨가 천하의 보물이라고 이제현이 칭찬한 바 있다. 탑비의 받침돌인 귀부와 머리 장식돌인 이수는 남아 있지만 몸돌인 비신과 부도는 1931년 일본인에 의해 경복궁으로 옮겨지고 귀부 및 이수만 남았다.
[내용] 귀부는 용머리를 한 거북이 입에 여의주를 물고 네발로 대석(臺石)을 힘차게 딛고 있다. 이수에는 '진공대사' 란 네 자가 전서로 새겨져 있고 구름무늬 속에 생동하는 용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당대 예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창말 [마을]
[위치] 흥법 북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창촌이라고도 한다.
[유래] 조선 시대 창고가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창말이라고 한다.

▲창촌(倉村) [마을] → 창말

▲청금산(淸金山) [산]
[위치] 두멍폭포 동북쪽에 있는 산을 말한다.
[유래] 옛날에 여기에 청금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거문고 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거문고 소리를 듣는 산이라 하여 청금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치마바위 [바위]
[위치] 일봉산 안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모양이 치마처럼 생겨서 치마바위라 한다.

▲큰골 [골]
[위치] 송원에 있는 큰 골을 말한다.

▲큰갈밭골 [골]
[위치] 수청동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평나무쟁이 [마을]
[위치] 갈밭골 건너편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포토골 [골]
[위치] 송원에 있는 골을 말한다.

▲흥법(興法) [마을]
[위치] 능촌 서남쪽의 흥법사가 있던 마을을 말한다.
[유래] 흥법사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흥법이라 하였다.

▲흥법교 [다리]
[위치] 흥법 북쪽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20m, 너비 6.5m로 1987년에 가설하였다.

▲흥법 버덩 [들]
[위치] 흥법 마을에서 강가 쪽으로 있는 들을 말한다.

▲흥법사 미륵 [불상]
[위치] 흥법사터에 있었다고 한다.

▲흥법사염거화상탑(興法寺廉居和尙塔) [탑]
[위치] 흥법사에 있던 탑으로 국보 104호이며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에 있다.

▲흥법사지(興法寺址) [터]
[위치] 지정면 안창리 흥법 마을 517-2번지이다.
[연혁] 신라말 진공대사(眞空大師)가 창건하였는데, 남아있는 비석 받침에 '眞空大師' 넉자가 새겨져 있다.
[특이사항] 3층 석탑외에 흥법사염거화상탑(興法寺廉居和尙塔), 진공대사탑 부석관(眞空大師塔 附石棺),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眞空大師塔碑 龜趺 및  首), 흥법사지진공대사탑비(興法寺址眞空大師塔碑) 등이 있다. 1984년에 문화재 자료 45호로 지정되었다.

▲흥법사지 삼층석탑 [탑]
[위치] 지정면 안창리 흥법마을 흥법사 절터에 있다.
[내용] 높이 369cm ,폭 215cm, 화강암재로 된 3층 석탑으로 보물 제 464호이다. 이 탑은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탑이다. 하층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 기둥인 우주와 버팀 기둥인 탱주가 없이 각면에 3구씩의 안상만 조각되어 있다. 기단에 비하여 탑신이 아주 작아졌으며, 지붕돌 옥개석의 물매인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다. 상륜부 윗쪽의 장식물은 모두 없어지고 아랫쪽 노반만 남아 있다. 이 탑은 크기와 비례 등으로 볼 때 고려시대 전반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흥법사지진공대사탑비(興法寺址眞空大師塔碑) [탑]
[위치] 원래 흥법사에 있던 탑비로 보물 463호이며 현재 국립박물관에 있다.

▲흥법사터 [터] → 흥법사지


[인물]
[김제남]
김제남의 본관은 연안이며, 조선 선조의 장인으로 영의정 전(詮)의 증손자이다. 인목왕비의 아버지로 연흥부원군에 봉해졌었으나 1613년 이이첨 등으로부터 영창대군을 추대하려고 한다는 무고를 받아 죽음을 당하였으며, 그의 세 아들도 모두 화를 당하였다. 오직 부인 정씨와 어린 천석(天錫)만이 화를 면하고 살아 남았다. 인조반정 후 제주도에 유배중이던 정씨는 석방되었으며 특명으로 김제남의 사당을 만들도록 하였다.

[전설]
[욕바위]
안창리 덕가산 골짜기에 욕바위가 있다.
옛날 이 마을에는 서당 훈장까지 지낸 성질이 괄괄하고 참을성이 없는 괴퍅한 선비가 있었다. 가슴에 치미는 울분은 한바탕 욕으로 퍼부어야만 직성이 풀리곤 하였다. 이러한 황보선비는 새로 부임해온 원주 목사에 대해 못마땅한 감정을 갖고 있었으나, 상대가 원님인지라 겉으로 욕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다 결국 병으로 앓아 눕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님이 한양으로 영전되어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떤 식으로든 욕을 실컷 해야겠다고 생각한 욕선비는 궁리 끝에 하인을 시켜 긴 사다리를 만들게 하였다. 그리고 원님이 지나가는 길 옆 높은 바위 벼랑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원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원님의 일행이 다가오자 선비는 차마 입에 못 담을 욕을 실컷 해댔다. 듣다 못한 원님이 잡아오라고 노발대발 했으나, 까마득한 바위를 쳐다만 볼 뿐 어찌할 수가 없었다. 갈 길이 바쁜 원님은 결국 그냥 지나갔는데, 그 후 이 바위를 욕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맞은 편 영산 기슭에도 '여계바우'니 '중다래미 바우'니 하여 바위와 전설이 많다. 하마비도 있었다 하나 지금은 없어졌다.

[중다래미바위]
옛날 영경산 앞 덕가산에 살고 있는 산신령을 만나러 오는 한 선녀가 있었다. 그 선녀는 구름을 타고 내려와 산신을 만나기에 앞서 언제나 영경산 바위 밑에 흐르는 맑은 물에 목욕을 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런 기미를 알아챈 장난을 좋아하는 한 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선녀가 목욕할 때마다 주위의 층암절벽을 나막신을 신고 오르내리며 선녀가 벗어 놓은 옷에 돌을 던져 물방울을 튀기는 장난을 하곤 하였다. 이 사실을 안 산신령은 대노해서 주문을 외워 스님의 몸을 꽁꽁 묶어 벼랑에 거꾸로 매달아 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스님의 몸은 점점 굳어져 그만 바위가 되었는데 후세 사람들은 중을 달아맨 바위라 하여 '중다래미바위'라 불렀다.
인근에는 선녀가 놀았다는 선녀바위도 있고, 이 중다래미바위는 실제 형상이 중을 거꾸로 매달아 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 편 이 바위 위에는 세 갈래로 얼음이 어는데, 각각 경기도, 그리고 충청도, 강원도를 뜻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제일 두껍게 어는 쪽으로 풍년이 든다는 고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