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곡리(龍谷里) |
[위치] 용곡리는 면소재지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고산리, 서쪽과 북쪽은 횡성군 서원면, 남쪽은 산현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유래] 용골을 한자로 표기하여 용곡이 되었다. [연혁] 용곡리는 원래 횡성군 서원면 압곡1리였는데,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호저면에 편입되면서 용곡리라 개칭되고, 압곡리는 횡성군 서원면으로 속하게 되었다. [특이사항] 마을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자연부락은 상용곡, 하용곡이 있으며 신라말 또는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용운사지 석조비로자나 불좌상과 용운사지 3층석탑이 있다. 앵당산을 중심으로 아주 깊은 산골이므로 임란과 6.25 때도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옛날에 이 지역은 이씨촌이었다고 하며 백석부자가 3-4집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 이 마을의 주민에게 꿈에 용운사의 부처가 나타나 내 떨어진 머리가 밑에 어디에 있는데 그를 붙여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찾아본 결과 과연 용운사지 석탑 밑에 부처머리가 있어서 이를 갖다 붙였다 한다. 이후로 이 마을에는 전염병이 돌지도 않았고 전란에도 안전했다고 한다. 부처가 있어서 이 마을이 안전했으므로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이 부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명] ▲가는골산 [산] [위치] 하용곡 뒷 편의 낮은 산을 말한다. [유래] 골짜기가 가늘다고 하여 가는골산이라고 한다. ▲가래등이 [산] [위치] 용곡리 뒷산 줄바우골 우측 능선을 말한다. ▲까막재산 [산] [위치] 하용곡리 뒤에 있는 뾰족한 산을 말한다. ▲개미재 [고개] [위치] 상용곡교와 용곡교 사이 동남쪽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유래] 개미허리처럼 가운데가 잘룩하게 생겨서 유래되었다. [내용] 옥산으로 넘어가는 주 교통로로서 마을사람과 상인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10리 길이라 한다. ▲개미재들 [들] [위치] 의현교 남쪽, 댐재보와 오재교에 있는 들을 말한다. ▲개미재보(洑) [보] [위치] 개미재 서쪽에 있는 보를 말한다. ▲남산 [산] [위치] 용곡리 앞에 있는 산을 말한다. [유래] 동네 남쪽에 있어서 남산이라 한다. ▲넘은뒷골 [골] [위치] 뒷골 우측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뒷골 너머에 있어서 넘은뒷골이라 한다. ▲당부리산 [산] [위치] 상용곡리 앞에 있는 산을 말한다. [유래] 옛날에 제사 지내던 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당부리산이라 한다. ▲대바우골 [골] [위치] 먼골산의 세 번째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큰 바위가 있어서 대바우골이라고 한다. ▲대현(大峴) [고개] → 큰고개 ▲댐재보(洑) [보] [위치] 개미재들 서쪽에 있는 보를 말한다. ▲떨껑바우 [바위] [위치] 행가리 골짜기 안에 있다. [내용] 능선벼랑을 우뚝 막고 서 있는 큰 바위이다. ▲독바우 [바위] [위치] 산뒷골 위에 있다. [유래] 마고할머니가 가져다 둔 물레돌이라고도 한다. [내용] 큰 바위가 밑에는 넓적하고 위에는 쭈삣 서 있어서 마치 물레와 같이 생겼다고 한다. 그 바위 밑 벼랑에는 석이버섯이 난다고 한다. ▲돌보들 [들] [위치] 돌보에 있는 들을 말한다. ▲된양지골 [골] [위치] 행가리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양쪽 골짜기 사이라 아주 따뜻하므로 된양지라 부른다. ▲뒤밀골 [골] [위치] 하용곡들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뒤밀재 [고개] [위치] 하용곡 동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뒷골 [골] [위치] 용곡리 뒤, 독바우 우측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만타골 [골] [위치] 상용곡 남쪽 고개너머에 있다. 만택골(萬宅-)이라고도 한다. [유래] 넓은 집터가 있었다고 해서 만타골이라 한다. ▲만택골(萬宅-) [골] → 만타골 ▲말바우등 [산] [위치] 화채봉에서 내려오는 산등성이를 말한다. [유래] 능선이 말등처럼 생겨서 말바우등이라고 한다. ▲먼골 [골] [위치] 하용곡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문골이라고도 한다. [유래] 마을에서 멀리 있다고 하여 먼골이라고 한다. ▲먼골산 [산] [위치] 하용곡 북서쪽 먼골에 있는 산을 말한다. ▲문골 [골] → 먼골 ▲문앞들 [들] [위치] 앞들 동남쪽, 의현교 북쪽에 이어지는 들을 말한다. ▲바른골 [골] [위치] 산뒷골 오른쪽 옆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용곡에서 바로 보이므로 바른골이라고 한다. ▲버덩마을 [마을] [위치] 상용곡 마을입구에 있다. [특이사항] 얼마 전 이곳에 길을 낼 때 가마터 자리와 구들 흔적이 나와서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용곡리는 절만 있었고 이곳이 마을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베루골 [골] [위치] 먼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골짜기에 벼랑이 있어서 베루골이라고 한다. [풀이] '베루'는 벼랑의 방언이다. ▲산뒷골 [골] [위치] 상용곡 줄바우골 오른쪽 옆에 있는 골짜기이다. [유래] 마을 뒤에 있어서 산뒷골이라 한다. ▲산현교 [다리] [위치] 산현리와 용곡리의 사이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폭 6m, 길이 90m로 1988,년에 준공하였다. ▲상용곡(上龍谷) [마을] → 웃용곡 ▲상용곡교 [다리] [위치] 상용곡 입구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45m, 폭 8.5m로 1993년에 가설하였다. ▲서낭나무 [나무] [위치] 상용곡 마을입구 장승터에 있는 나무를 말한다. → 장승터 ▲수무동골 [골] [위치] 개미재보 동쪽으로 나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승수교 [다리] → 중순나다리 ▲아래뒤밀골 [골] [위치] 뒤밀골 동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아래용곡 [마을] [위치] 용곡리 중 아래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하용곡이라고도 한다. ▲아래지찻골 [골] [위치] 먼골산 아래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아차월들 [들] [위치] 아차월보 남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아차월보(洑) [보] [위치] 용곡교 남쪽에 있는 보를 말한다. ▲앞들 [들] [위치] 상용곡 앞에 있는 들을 말한다. ▲앵당산(鸚堂山) [산] [위치] 용곡리 뒤에 있는 가장 큰 산으로 높이 370m이다. [내용] 앵당산의 동쪽이 행가리이고 서쪽이 큰고개이다. [유래] 앵무새 집이 있었다고 해서 앵당산이라 부른다. ▲오용골 [골] [위치] 큰고개 동쪽 골짜기를 말한다. [유래] 이 골짜기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오용골이라 하며 용골(용곡)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오재교 [다리] [위치] 개미재보 남쪽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오채 [바위] [위치] 개미재보 동쪽 벼랑을 말한다. ▲용곡교 [다리] [위치] 칠봉과 하용곡 사이에 있다. [내용] 길이 51m, 너비 8.9m로 1998년에 준공하였다. ▲용곡리 느티나무 [나무] [위치] 상용곡에서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로 넘어가는 큰고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내용] 수령 약 500년이며, 높이는 20m, 둘레는 660㎝이다. 1984년에 도나무로 지정되었다. 느티나무 앞쪽에 석탑과 석불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용운사 사찰내에 있던 나무로 추정된다. ▲용곡2교 [다리] [위치] 상용곡과 하용곡 사이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30m, 너비 6.6m로 1993년에 가설하였다. ▲용곡1교 [다리] [위치] 하용곡 남쪽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4m, 너비 5.6m로 1988년에 가설하였다. ▲용곡천 [내] [위치] 횡성군 압곡리에서 시작하여 호저면 용곡리 앵당산 동쪽 행가리를 거치고 용곡리, 산현리를 지나 섬강으로 들어가는 내를 말한다. ▲용골 [마을] → 용곡리 ▲용운사지(龍雲寺址) [터] [위치] 상용곡 마을 앞에 있는 절터를 말한다. [유래] 상용곡 부락의 넓직한 경작지 일대가 옛 절터인데, 용운사지 삼층석탑과 함께 비로자나불좌상이 위치한 곳에서 '龍雲寺' 라 적혀 있는 기와조각이 출토되어 절이름을 알게 되었다. 주위에는 축대 등이 남아 있다. [특이사항] 용운사터 불상은 현 위치에 있었고 탑은 그 앞에 있는 것을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고려말 큰 수해로 용운사라는 절이 유실되고 탑과 석불이 토사에 묻힌 뒤 각종 괴질과 재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부처님의 계시로 석불을 흙 속에서 꺼내자 괴질과 재앙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용운사지 삼층석탑 [탑] [위치] 용운사지에 있는 탑을 말한다. [유래] 용운사지 삼층석탑은 화강암재질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높이는 4.8m이며 1973년 7월 31일에 유형문화재 제 43호로 지정되었다. 상용곡 마을의 밭 가운데 석탑과 석불이 남향으로 일선상에 남아 있는데, '龍雲寺'라 적힌 기와조각이 출토되어 절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용운사지 삼층석탑은 기반의 불균형 등의 이유로 탑이 기울어 1997년 7월 원주시에서 해체, 복원 작업을 하였다. ▲용운사지석조비로자나불 [불상] [위치] 용운사지 삼층석탑 옆에 있다. [유래] 1973년 7월 31일에 유형문화재 제 42호로 지정된 화강암 재질의 고려초기 좌불상이다. ▲용천정사 [절] [위치] 용곡리 435번지, 상용곡교 위에 있는 태고종 절을 말한다. ▲외기들 [들] [위치] 아차월들 개울 서쪽 너머에 있는 들을 말한다. ▲웃용곡 [마을] [위치] 용곡리의 위쪽 마을을 말한다. 상용곡이라고도 한다. [내용] 큰고개를 두고 횡성군 서원면 압곡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지금도 몇 가구가 농장을 경영하고 있다. ▲윗지찻골 [골] [위치] 먼골산 위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의현교 [다리] → 상용곡교 ▲작은문골 [골] [위치] 먼골산에 있다. [유래] 지찻골보다 작아서 작은문골이라 한다. ▲작은용곡골 [골] [위치] 상용곡 서쪽, 큰용곡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작은 행가리들 [들] [위치] 행가리들 남쪽에 있는 작은 들을 말한다. ▲장승터 [터] [위치] 상용곡 마을 입구에 장승이 있었는데 지금은 소나무와 전나무가 있는 곳을 말한다. [특이사항] 1985년까지도 있었다가 그 뒤에 없어졌는데 지금 길을 내면서도 우회하여 그 지역은 거의 보존되고 있다. ▲줄바우골 [골] [위치] 용곡리 뒷산, 큰고개 우측에 있다. [유래] 바위가 줄을 지어 서 있는 것 같아 줄바우라 한다. ▲중순나다리 [다리] [위치] 용곡리 마을입구에 있다. [유래] 옛날에 중이 빠져 죽어서 중순나다리라고 했는데 나중에 승수교(僧水橋)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리에 이름이 없다. [풀이] '나다리'는 너덜에서 온 말이다. ▲징겁들 [들] [위치] 하용곡리 앞 징겁산 뒷편 개울에 형성된 들을 말한다. ▲징겁산 [산] [위치] 하용곡리 앞 칠봉 뒷산을 말한다. ▲쪽도리바우 [바위] [위치] 행가리 골짜기 개울 한복판에 있는 바위를 말한다. [유래] 모양이 족도리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쪽도리바우라 한다. ▲천급보(洑) [위치] 하용곡 서쪽에 있는 보를 말한다. ▲칠봉교 [다리] [위치] 칠봉 앞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65m, 너비 8m로 1991년에 가설하였다. ▲큰고개 [고개] [위치] 상용곡에서 횡성 압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대현(大峴)이라고도 한다. [유래] 고개가 크다고 해서 큰고개라 한다. ▲큰용곡골 [골] [위치] 큰고개 서쪽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하룡곡(下龍谷) [마을] → 아래용곡 ▲하용곡교 [다리] [위치] 하용곡 마을 아래에 있다. [내용] 길이 28m, 너비 6m로 1991년에 가설하였다. ▲하용곡들 [들] [위치] 하용곡 남쪽에 있는 들을 말한다. ▲행가리 [골] [위치] 큰고개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화채봉과 앵당산 사이에 있다. ▲행가리 [마을] [위치] 행가리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화채봉 [산] [위치] 앵당산 동쪽에 있는 459m의 큰 산으로서 횡성 압곡리와 고산, 용곡의 경계가 된다. [유래] 산모양이 화채(상여)처럼 생겨서 화채봉이라 한다. ▲흰머루골 [골] [위치] 먼골산 대바우골 다음에 있는 골짜기를 말한다. [유물 유적] [용운사지 삼층석탑] 이 삼층석탑은 이중기단에 각각 탱주가 하나씩 표현된 전형적인 신라말기 석탑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것이다. 상대 갑석 위에 마련된 연화무늬의 괴임돌은 고려 초기부터 유행한 독특한 것으로 연화무늬는 불상 대좌와 동일한 수법이다. 3층으로 구성된 탑신과 옥개석은 신라 말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2.3층 탑신의 급격한 체감과 4단의 옥개석받침과 더불어 고려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 보륜 등이 남아 있다. 이처럼 석불상과 석탑은 신라 말기의 섬세하고 단아한 불교의 이상적 미를 계승하여 자연주의적이고 화려한 고려의 불교미를 완성한 작품이다. 이 탑에서 주목되는 것은 감석(甲石) 위에 끼워진 연화별석(蓮花別石)의 괴임석으로 이러한 예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전대보다 유행된 것이다. [용운사지석조비로자나불] 좌대는 각 부분이 깨진 상태이며 광배는 없다. 방형(方形)의 좌대 위에는 좌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전체높이 1.65m, 좌상 높이는 94㎝의 중간크기이다. 머리 부분은 손상되었으며 목이 완전히 금이 간 것으로 보아 절단되었던 불두를 제자리에 올려 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석불좌상은 광배만 없어졌을 뿐 대좌와 불상이 완전히 남아 있는데 현실적인 부처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귀는 다른 불상보다 작은 편이고, 얼굴은 통통하면서 광대뼈가 나왔다. 코끝은 깨졌고, 입의 크기는 알맞으며, 전체적인 인상은 근엄하다. 육계가 불분명한 머리, 큼직큼직한 나발, 자연스럽게 미소짓는 현실적인 얼굴, 다소 움추린 듯한 상체, 결가부좌한 통통한 하체, 통견의 불의에 표현된 빚은 듯한 계단식 옷주름이나 구불구불한 주름선 등에서 신라 말기 불상의 특징을 계승해서 조성한 고려 초기의 불상특징이 보인다. 지권인을 짓고 있는 통통한 두 손, 사각형으로 구성된 3단의 대좌와 여기에 나타낸 큼직한 연꽃무늬와 중대의 안상무늬 역시 신라말에 유행된 비로자나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계승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창작된 고려 초기의 작품임을 말한다. 조각이 우수하지는 않으나 전반적으로 우아한 느낌을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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