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의 「주사거배(酒肆擧盃)」
이 그림은 신윤복이 활동했던 18세기 말의 서울 술집, 곧 주막 술청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림의 제목은 「선술집」 혹은 「주사거배」라고 붙어 있는데, 뜻을 풀이해 보면 ‘술집에서 술잔을 들다'라는 뜻이다. 당시 주막의 풍경은 물론 손님들과 주모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조선시대 술집 내부의 모습을 이처럼 상세하게 표현한 그림은 드물다.
그림 속에는 여자 1명, 남자 6명이 등장한다. 중앙에서 왼쪽에 있는 주모는 남색 치마를 입은 채 쪼그리고 앉아 술 국자로 술을 뜨고 있다. 마당에 설치해 놓은 부뚜막과 솥과 그 주변의 그릇 등이 당시 주막의 살림살이다. 그 옆으로 붉은 옷에 초립을 쓴 채 허리를 굽혀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으려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이 사람은 별감(別監)이다. 조선 후기 별감은 왕명의 전달과 알현 및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궐문 자물쇠와 열쇠의 관리, 궁궐 정원 설비 등의 임무를 맡은 관청인 액정서에 소속된 이들이었다. 이들은 술집이나 기생집에 자주 드나드는 주 고객층이었다. 마당에 서 있는 오른쪽 두 사람은, 술 취한 모습으로 아직도 아쉬운 듯 부뚜막 옆을 맴도는 왼편의 나머지 두 사람을 재촉하고 있다. 맨 오른쪽에 검은색 격자무늬 옷에 깔때기 모양의 모자를 쓴 사람은 나장(의금부 ? 병조 등에 속해 죄인을 문초할 때 매질이나 압송을 맡았다)이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선비인 듯 보인다. 다들 얼굴이 불그레하다.
사실 이 그림에는 이상한 모습이 참 많다. 우선 양반으로 보이는 세 명의 흑립을 쓴 사람과 중인으로 보이는 별감, 나장이 함께 술을 마셨다. 비교적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에 이렇게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이 함께 어울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그리고 나장과 선비 하나가 빨리 가자고 일행을 재촉하는 모습이 마치 무엇엔가 쫓기는 듯하다. 혜원이 그림의 왼쪽 위 귀퉁이에 썼듯이 “달이 환하게 밝고 바람도 시원한 밤에 술잔을 들고” 호기롭게 술 마시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볼까 걱정스러운 표정들이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혜원이 성인이 된 정조(1777~1800) 혹은 순조(1801~1834) 때 그렸을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순조 14년(1814)에 금주령을 실행하기가 어려우니 화주(火酒, 소주)만 금하자고 상소한 형조판서가 파면된 사건이 있었다. 술을 파는 것은 물론 마시는 것도 금지하는 금주령이 내려져 있을 때, 술집에 들러 몰래 술 마시는 형조 관원들의 모습을 혜원이 풍자해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
'사람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초(伐草)의 의미와 금초, 사초 (0) | 2011.09.02 |
---|---|
새 표준어 추가되다 (0) | 2011.09.02 |
한여름 짚신삼기 - 성하직리 (盛夏織履) (0) | 2011.08.30 |
승무란? (0) | 2011.08.29 |
탈모 관리는 이렇게 (0) | 2011.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