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와노고소
태종대는 강림면 치악산 국립공원 매표소 위에 위치한 곳으로 태종 이방원과 스승이었던 운곡 원천석에 대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고려말 4천사의 한 사람이었던 운곡 원천석은 조선조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다.
운곡은 태조가 고려를 전복시키고 조선을 세우고 또한 그의 아들들의 피비린내 나는 왕권다툼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 나머지 모든 관직을 거부하고 개성을 떠나 이곳 강림리에 은거하고 있었다.
험한 산골이었던 이곳에 이방원이 임금으로 등극하기 전인 1415년 옛 스승인 운곡을 찾아 다시 관직에 앉히고 정사를 의논하고자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강직하고 절개가 곧았던 운곡은 방원과의 만남을 꺼려 일부러 치악산 골짜기로 몸을 숨겨 만나주지 않았다.
방원이 자기를 찾는다는 것을 안 운곡은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는 노파에게 자신을 찾는 사람이 오거든 횡지암쪽으로 자신이 갔다고 일러 주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는 반대방향으로 피신했다.
방원은 노파가 가르쳐주는 곳으로 스승인 운곡을 찾았으나 끝내 운곡을 찾지 못하고 돌아갔다.
그 당시 방원이 머물던 곳을 ‘주필대’라고 불러오다가 나중에 방원이 태종으로 등극하자 ‘태종대’로 부르게 되었다.
태종이 임금이 되어 다시 운곡을 부르자 차마 어명을 어길 수 없었던 그는 상주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고는 대궐에 들어가 태종의 형제간살육의 비인도적인 처사에 대해 무언의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임금인 줄 모르고 거짓을 아뢰었다가 나중에 그분이 지엄하신 임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노파는 죄책감에 자신이 빨래하던 바위 아래 소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이 노파가 빠져 죽은 소를 사람들은 ‘노고소’라고 불렀으며 이곳 마을에서는 매년 이 노파에 대한 제를 올렸다고 한다.
부근에는 이방원이 만나지 못한 스승을 향해 돌아가면서 예를 갖춰 절을 했다는 ‘배향산’이 있고 임금님의 수레가 넘었다는 ‘수레넘이’ 고개가 있다.
선계마을 전설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반해 선비들이 자주 찾았다는 마을 강림 1리 앞개울에는 깊은 소가 있고 그 위에는 넓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 바위에는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돼 신선들이 가끔 내려와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어느 날 이 바위에 하늘에서 한 쌍의 신선남녀가 내려와 사랑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때 마귀가 이들 남녀를 시기한 나머지 두 신선남녀를 몰살시켰다고 하며, 그러자 천추의 한을 품은 두 남녀는 죽어서 바위가 되었는데 남자는 죽어서 거북바위가 되고 여자는 죽어서 정암(고요히 누워 별을 바라본다는 뜻)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암자를 지어 두 남녀의 영혼을 추앙했으며 그 절에는 두 마리의 호랑이가 절터를 지켰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절도 쇠락해 없어지고 호랑이마저 수명이 다하자 두 남녀의 바위옆에는 호랑이 바위 두 개가 나란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이 그 바위를 깨려고 하다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며, 그 후에도 이 바위에 손을 댈려고 하면 꿈에 신선이 나타나 말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 마을의 이름을 선계(신선들이 사는 곳)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