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명품 가방

難勝 2011. 9. 15. 05:01

 

 

 

가방

 

조선시대에 여행을 가장 자유스럽게 할 수 있었던 계층은 승려들이었다.

사회적으로는 천민(賤民)에 속하였지만, 전국의 좋다는 명산은 다 가볼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운수행각(雲水行脚)의 필수품이 바로 어깨에 멜 수 있는 바랑이다.

 

 

 

 

바랑은 조선시대 여행가방의 대표였다.

재질은 먹물을 들인 두꺼운 천이었다. 천이라 가벼웠다. 바랑 속에는 밥 먹을 때 필요한 발우와 예불할 때 필요한 목탁이 있었고, 비상식량으로는 말린 누룽지와 오이를 가지고 다녔다. 말린 누룽지야말로 최고의 비상식량이었다. 황정(黃精), 숙지황(熟地黃), 도라지, 더덕과 같은 약초도 말려 가지고 다니면서 유사시에 대비하였다. 바랑은 너무 커도 안 되었다. '바랑이 크면 공부가 안 된다'는 말이 그것이다.

바랑이 커진다는 것은 소유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요즘 한 개에 400만~500만원씩 하는 명품가방을 신고하지 않고 인천공항에 들여오다가 적발되는 여행객이 많다고 한다. 인천공항 신라 면세점에서 루이비통 가방에만 과도한 특혜를 주었다고 섭섭하게 여겨 구찌, 샤넬이 철수한다는 뉴스도 있다. 왜 명품 가방 때문에 북새통인가? 유럽 명품업체의 상술에 철없는 아시아가 걸려든 탓인가? 이는 한국 사람들이 조선시대 승려들 이상으로 전 세계에 걸쳐 운수행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행의 필수품은 가방인데, 바랑에서 루이비통으로 외형만 바뀐 셈이다.

 

여러 가지 명품 중에서도 가방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21세기가 지닌 유목민적 환경 때문이다. 휴대폰, 인터넷, 신용카드와 함께 가방은 21세기 유목민의 필수품이다. 외국여행이 되었든 국내여행이 되었든지 간에 여행이 일상화된 시대가 역사상 처음 도래한 것이다.

 

명품가방이 불티가 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여권신장이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명품가방에 상대적으로 더 관심이 많다. 옛날에는 여자들이 보통 5∼6명의 자식을 낳아 기르느라고 집에 묶여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이제는 저출산이 대세를 이루면서 대외활동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대외활동에는 가방이 필수품 아닌가. 삼성가의 딸인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명품가방 사업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