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군에 심원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 절 주지에 묘심이라는 스님 이 있었는데 절이 너무 낡아 묘심은 절을 중수코자 부처님께 기도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끝마치던 날 부처님께서 꿈에 나타나 하시는 말씀이,
"네가 내 일 아침 일찌기 일어나 동구 밖에 나가다가 제일 먼저 보는
사람에게 시주를 청하라" 하시었다.
묘심은 꿈을 꾸고 마음이 기뻐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처님께 예불하고 권선문을 들고 동구밖에 나갔다.
그런데 맨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아랫마을 조부자집 사는 머슴이라, 꼴에 돈이 있을것 같지 않아 망설이다가 부처님 말씀을 생각하고 다가서서 사정하였더니, 머슴은 반가워하며 "절을 중수하려면 돈이 얼마나 듭니까?" 하고 물었다.
"약 백냥만 가지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권선문을 내놓으라 하였다.
묘심은 하도 허망하여 "당신에게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있습니까? "
"예, 저는 조부자집에서 사십년간 머슴을 살았는데 장가를 들기 위해서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았으나, 이제 나이 오십삼세가 되었으니 이제사
장가를 간들 무슨 재미를 보겠습니까?"
"그렇다면 고맙습니다."하고 권선문에 백냥을 적고 조부자 집에 가서 곧 돈 백냥을 주어 절 중수를 곧 시작하였다.
동네 사람들은 머슴보고 미쳤다고 비방하고 또 묘심이 그를 꼬여 뜯어 냈다고 헛 소문을 퍼뜨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머슴은 시주한 뒤 며칠 안 있다가 병(重風)이 나 일도 못하고 돈도 없으니, 하루는 조부자집에서 사람을 시켜 업혀서 절로 보냈다.
묘심은 하는 수 없이 방 하나를 정해 주고 정성껏 간호를 하면서 시주 한 공덕이 헛되지 않다면 결정코 나으리라 믿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백일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도를 시작한지 몇일이 되지 않아 머슴은 병이 더하여 그만 죽고 말았다. 하도 허망한 일이라 기가 막혀 말도 못하고 정성껏 화장하여 장례를 잘 치루어 주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처님이 너무나도 야속한 것 같았다.
"그 머슴이 평생동안 번 돈을 다 절에다 바쳤는데 병을 낫게하여 주지는 않고 병이 더하여 죽고 말았으니 부처님은 영험이 없다." 하고 도끼를 가지고 법당 에 들어가 부처님을 원망하면서 부처님 이마를 도끼로 내려쳤다. 그랬더니 도끼가 이마에 박혀 빠지지 않는 지라 묘심은 그를 빼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하다가 민망하여 그대로 놓아두고 걸망을 싸서 짊어지고 절을 떠났다.
이산 저산 이절 저절 유랑하기 이십오년, 공부를 많이 하였으나 항상 심원사 부처님 생각이 나서 마음이 개운치가 않았다.
"지금쯤은 절이 완전히 폐허되었으리라. 아니 혹 누가 들어가 도끼를 빼고 시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이렇게 여러 갈래로 생각하다가 한번 찾아가 참배나 드리고 와야겠다하고 절을 찾아 왔다.
그런데 그 날 산청군에 새로 박정재라는 원님이 부임하여 심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럴리가 있느냐? 내가 한번 가서 빼 보리라."하고 종자들 몇과 같이 절을 찾아 왔다.
과연 부처님 이마에 꽂힌 도끼를 보고 "이상도 하다" 하며 손으로 잡으니 그만 도끼가 쑥 빠지는데 "화주시주상봉" 이라고 푸른 글자가 도끼날에 쓰여 있었다.
그 때야 묘심이 원님앞에 나아가 절을 하고 그 도끼의 내력을 이야기 하니, "참으로 신기하다."하며 원님은 더욱 신심을 내어 절했다.
얼마 뒤 다시 부처님을 쳐다보니 도끼가 빠진 곳에 상처가 금방 없어지고 더욱 이마에서 백호광명이 빛났다.
원님은 묘심을 붙들고 "나는 전생에 시주한 공덕으로 일자무식이었지만 좋은 곳에 태어나 이런 벼슬을 하게 되었으니 스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저와 함께 공부하게 해주세요" 하고 사정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라 놀래며 부처님을 받들기를 옛보다 배는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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