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은 신라 제 27대 임금으로 부처님에 대한 신심이 아주 돈독하여 국사를 돌보는 바쁜 중에서도 매일 조석으로 황룡사에 가서 예불 올리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합니다.
어느날 저녁 여왕이 예불을 드리러 가는 도중에 난데없이 어떤 남자가 여왕의 행차에 뛰어들어 소란을 피우기에 여왕은 시종을 시켜 그 남자에게 연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소란을 피운 남자가 말하기를,
"소인은 지귀(志鬼)라고 하는데 평소부터 여왕님을 남몰래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여왕님의 예불 행차를 몰래 지켜보기 여러날이었습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왕이 재차 묻기를,"행차를 늘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냐?"
하니 지귀가, "예,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여왕마마께 제 연모하는 마음을 하소연하려고 행차에 뛰어든 것입니다."
원래 자비로운 품성의 소유자인 선덕여왕은 그를 참으로 가엽게 생각하여 황룡사까지 동행하게 하였습니다.
이윽고 황룡사에 도착하여 절문 앞의 9층탑 곁에 이르자 여왕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지귀에게 말하기를.
"내가 부처님께 예불을 마치고 그대를 궁으로 데리고 갈 것이니 이곳에서 잠깐만 기다리거라"
그러나 밖에 남게 된 지귀는 일각이 여삼추라 예불 시간도 채 기다리지 못하고, 마음에 심화(心火)가 끊어올라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참, 지귀란 양반 성미도 급하지.
그 후에 죽은 지귀는 그야말로 사랑에 한을 품고 죽은 몽달귀신이 되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니 신라의 방방 곡곡에는 이 지귀의 행패가 심하여 많은 사람이 해를 입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에 이 지귀 귀신의 달래주기 위한 방편으로 해마다 동짓날이 되면 팥죽을 끓여 집집마다 대문에 뿌리고 길에도 뿌렸더니 귀신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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