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불교TV에서 대학생 불자들이 불교교리로 실력을 겨루는 퀴즈 프로그램을 방영한 일이 있습니다. 가장 월등한 실력으로 지혜를 겨룬 젊은이 한 명을 뽑아 상을 주는데 그 상 이름이 사리불 상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자에게 주는 사리불 상,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승패와 관계없이 가장 지혜롭게 문제를 풀어간 젊은이에게 준 상 이름으론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리불 존자에게 뒤따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바로 "지혜제일"의 스님이기때문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사라푸트라(Sariputra)라고 합니다.
그는 마가다국 왕사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습이 단정하고 기예에 능했다고 전하는데요. 젊어서는 이웃 마을의 구율타(목건련 존자)와 함께 부처님과 동시대의 유명한 사상가였던 산자야의 문하생으로 출가합니다.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에서 두 사람은 이내 스승의 가르침을완벽하게 이해해 버렸다고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그것만으로 마음의 평안을 흡족하게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부처님 법을 만나 인연은 각별하기만 합니다.
하루는 사리불 존자가 왕사성의 거리에서 탁발중인 수행자를 보게 됩니다. 소탈하면서도 청정해 보이는 그 수행자의 모습에 반한 사리불 존자는 다가가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의 청정한 태도에 매혹되었습니다.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이면 그 스승은 무엇을 가르치고 계십니까?"
<남전대장경>을 보면, 부처님 제자임을 밝힌 그 수행자는 부처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법은 인연에서 생겨난다고 부처님께선 그 인연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존재가원인을 끊고 자유로움을 얻는 방법을 부처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사리불은 부처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가를 납득합니다. 그래서 친구인 목건련에게 이소식을 전하지요. 그리고 둘은 자신의 스승 산자야를 설득하다가 휘하의 2백 50여 명 제자들을 이끌고 부처님께 귀의해 버립니다. 떠나는 제자의 무리를 지켜보면서 산자야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던가요.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와 함께 산자야의 제자를 이끌고 부처님께 귀의한 것은 당시 교단으로서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이 저마다 교단의 주요한 위치를 점하면서 교화에임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사리불 존자가 한눈에 반했던 스님은 누구였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는 녹야원에서 부처님의 첫 제자가 되었던 다섯 분 비구 중에 한 분, 앗사지스님이셨습니다.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킬 만큼 깊이 있는 수행을 이루신 분이었나 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묻는 의도에서 참으로 겸허하고 쉽게 불법을 전하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닮아야 할 점이 아닐까요.
사리불 존자는 교단에 들어온 이후에 그 앗사지스님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 결코 앗사지스님이 있는 방향으로 발을 뻗고 자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는듯한 그 모습이 여간 존경스럽지 않습니다. 사제간의 도가 타락한 오늘의 시점에선 더욱 그러합니다.
<법화경>방편품에 보면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께 수기받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사리불이 오는 세상에
정변지이신 부처 이루어
그 이름은 화광여래로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수없는 부처님 공양하면서
보살의 행과
열 가직 공덕 갖추고
더없는 도 증득하리라...... .
사리불 존자는 어떤 문제든 즉시 해결했다고 합니다. 특히 외도를에 의해 교단이 시련을 당할 때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가 보여준 사태 수습과정은 가히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항상 부처님을 보필했구요. 그 총명함도 수승했던 것 같습니다. 말년에 피로 때문에 설법을중단하신 부처님을 대신해서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가 대신 설법을 받아 이어가는 일도있었습니다. 특히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을 대신해서 교리를 설하면 부처님께서 이를 추인하는 광경이 경전에서 더러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처님께서는 사리불 존자를 부르실 때 "나의 장자(長子)"라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 제자 가운데 상수제자로서 칭송받던 사리불 존자는 그러나 애석하게도 목건련 존자와함께 부처님 생전에 입적하게 됩니다.
목건련 존자가 외도들에게 맞아서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께 "목건련과 함께 입멸을 맞고 싶다"고 허락을 청했습니다. 사랑하는 두 제자를 떠나보내는 일은 분명 슬픈 일이었을 터입니다. 그러나 세상 인연이 다함을 보신 부처님께서 사리불의 청을 기꺼이 허락하십니다. 부처님께 작별을 고한 사리불은 고향인 나아란다로 가서 마지막 가르침을 설하다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자신보다 앞서 떠나간 제자의 부보를 접한 부처님의 슬픔은 남달랐다고 전합니다. 제자의 입적을 슬퍼하는 부처님, 이 역시 부처님의 인간적인 매력을 더해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요.
사리불 존자의 유골은 탑으로 세웠졌으며, 2백 년 뒤에 아쇼카왕이 불적을 순례할 적에 기원정사에서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고 10만 금을 희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도의 불교가 흥성하던 시기에 무려 1만여 명의 스님들이 불교학을 연구했다고 하는 나란다 대학 유적지에는 현재 사리불스님의 토굴이 목건련 존자의 수행처와 함께 남아 전하고 있습니다.
사리불 존자의 저작으로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舍利弗阿毘曇論>30권이 남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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