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劍堂

부처님의 십대제자(5) - 설법제일 부루나 존자

難勝 2008. 2. 14. 13:18

해상무역왕 하면 으례 장보고를 떠올리게 될 겁니다. 신심 깊은 장자로 불심 하나 들고 세계를 누볐던 자랑스런 신라인 장보고.


우리의 선조 장보고가 재가신자로서 불법을 편 해상왕이었다면 부루나 존자는 해상왕으로 살다가 출가 수행의 길을 떠나 부처님의 10대 제자가 된 경우라 하겠습니다.


범어식 이름은 푸르나(Purna)입니다. 그는 수나이파란타국의 수퍼라카 출신이지요. 그곳은당대에 무역항으로서 번성하던 곳입니다. 장자의 아들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재산을 한푼도 상속받지 못한 채 무일푼으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때마침 행운을 만나 조금 입수했던 향나무를 밑천으로 큰 돈을 모으게 되었고, 급기야 부자가 돼 해상무역에 나서기 시작했다고합니다. 경영 이론에 탁월했던가 봅니다. 당대에 멀리는 메소포타미아 지방까지 찾아가 교역을 했던 기록으로 보아 아마 부루나 존자도 역시 같은 항해무역에 종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거친 바닷바람과 맞싸우면서 결단력과 주위 선원들을 통솔했던 인물이었을 것임엔 틀림없을 겁니다. 그렇게 바다를 오가며 해상무역을 장악하던 그가 불교와 만나게 된 것은 일곱번째의 항해에서였습니다.


그의 배에 동승한 사위성의 상인들이 모여앉아 무엇인가를 합송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합송하는가를 묻자,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일러주는 것이 아닌가요.


"부처님이라니요? 그분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그들과 대화를 나눈 끝에 항해를 마친 부루나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수닷타 장자(기원정사를 시주한 부자)를 찾아가 부처님에 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습니다. 그리고 수닷타의 소개로 부처님을 뵙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부루나 존자를 "설법제일"이라고 부릅니다. 부처님을 따르면서 중생교화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부루나 존자의 설법 때마다 무수한 사람들이 환희심을 느낄 만큼 언변이 탁월했다고 합니다. 뼈를 파고드는 설법으로 사람들 가슴에 가책을 느끼게하고 지혜를전하는데 으뜸이었는 것인데요. 그래서 9만9천 명을 제도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숫자에연연하기보다는 그만큼 무수한 이들을 제도할 만큼 역량이 뛰어난 부처님의 제자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설법으로 재능을 발휘한 바탕엔 불교와 인연 맺기 이전에 많은 문헌을 섭렵해지식이 풍부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설법제일보다는 우리에게 "전법제일"로 더 친근한 분이 부루나 존자입니다. 부루나존자의 전법의지가 담긴 부처님과의 일화는 너무 유명하지요. 불교의 대중화라는 명제가 절박해진 오늘날에 그의 "전법선언"은 많은 불자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연로한 부루나 존자가 부처님께 고향땅으로 가서 전도에 전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고향땅 수나아파란타국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수행에 힘썼으며 합니다. 원하옵건대 제게 명심해야 할 점을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부루나 존자여, 만일 그 지역 사람들이 그대를 비난하고 비방한다면 그대는 어찌하려는가?"


"부처님이시여, 그때에는 이 나라 사람들이 모두 착한 사람들이라서 나를 때리지 않고 비방만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 존자여, 만일 그들이 주먹으로 때린다면 어찌하려는가?"


"부처님이시여, 그 경우에는 이 나라 사람들이 모두 착한 사람들이라서 나를 막대기로 때리지 않고 주먹으로 때리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 존자여, 그렇다면 그들이 막대기를 들고 때린다면 어찌하려는가?"


"부처님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이라 나를 칼로찌르지 않는구나, 라구요."


"그럼, 만일 그들이 칼로 찌른다면 어쩌겠는가?"


"부처님이시여, 그렇다면 그들이 나를 죽이지 않으니 실로 착한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 존자여, 그들이 그대를 죽인다면 어찌하겠는가?"


"부처님이시여, 세상에는 자신의 목슴을 스스로 끊는 이도 있고, 누군가가 자신의 목슴을 없애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 같은 목슴을 그들이 내게 베풀어 준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장하도다, 부루나 존자여, 그대가 그와 같은 마음을 변치 않고 고향으로 간다면 많은 포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루나 존자는 고향으로 가 마침내 5백 명의 사람들을 귀의시킨 뒤에 입적했다고 전합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지역으로 떠나는 부루나 존자에게 거듭 질문을 던지셨던 것일까요. 무역항으로 유명했던 지역인만큼 각종 종교들이 그곳에 만연해 있었을 것입니다. 종교와 철학이 무성한 한복판에서 부처님 법을 전하려는 부루나 존자에게 법을 전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부처님께서 일러주고 싶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부처님 앞에서 당당하게 전법의지를 밝히는 부루나 존자의 모습 앞에 문득 숙연해집니다.


안일하게 도를 전할 생각이 아니라 그 어떠한 고난도 인욕하며 견디고, 목숨까지 버릴 각오하나로 임하겠노라는 그의 정신은 종교계에 온갖 비방이 난무하는 오늘날 우리사회에 참으로 절실한 정신이 아닐까요. 포교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는 정신, 그러나 무모한 포교, 무조건적인 포교가 아니라 상대를 인정하고 참다운 종교심을 싹트게 하는 부루나 존자의 포교법은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후에 그는 "전법제일"이라는 별명을 얻습니다.